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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Mar 01. 2022

지금 당장 결제할게요

#5 성격대로 살면 이렇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퇴사 직후 무엇을 할까?



퇴사를 한지 거의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아무 계획 없이 내던진 사직서는 아니었지만 시간은 참 빨리도 사라졌다.


그간의 스트레스를 휴식으로 해소하고 난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앞으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언제까지 백수로만 지낼 수 없는 현실과 의미 있게 살고 싶다는 나의 의지가 만든 결론이었다.


하고 싶던 것은 많았지만 내 머리와 몸은 하나였기에 나는 결정을 해야 했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무작정 노트 가득하고 싶던 것들을 적어봤다.

웹소설 공모전 참여하기, 직무 변환하기, 새로운 취미 갖기, 책상 인테리어 변경하기 등등.

실컷 리스트를 써 내려가다 보니 문득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나는 회사 업무가 아니어도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것을 적고 난 후에는 해야 할 것들도 적어 보았다.

왜 내가 퇴사를 고민하게 되었는지, 다음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그때도 나는 퇴사라는 카드를 사용할 건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인드맵을 그리듯 필터 없이 리스트를 적고 나니 두 가지 주제가 눈에 확 띄었다.






새로움 그리고 감수성 기르기



새로움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의 공통점이었고, 감수성 기르기는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던 부분이자 부족한 점이었다.


하고 싶은 주제를 정했으니 이제는 구체적인 실천사항을 짜야했다.


나는 빼곡히 적힌 위시리스트 내에서 가장 새로운 것 두 가지를 꼽았다.

<감정일기 쓰기><부트캠프>. 이것이 이번에 내가 도전할 새 종목이다.


리스트만 들어도 회사에 다닐 때보다 더 바빠질 거란 예감이 바로 들었지만, 그 느낌은 너무 짜릿했고 지루했던 내 뇌를 반짝거리게 만들었다.

(내 성격이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으로 자존감을 쌓는 타입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새로운 시작은 늘 나에게 설렘과 두근거림을 가져다주었고, 나는 그 긴장감과 두근거림이 너무나도 좋았다.






01. 지금 당장, 일시불로!


누구나 그렇듯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행동력은  빨랐다.


전 직장을 다니면서 내게는 보다 포괄적으로 일을 하는게 더 맞는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에, 직무를 더 상위 카테고리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무를 바꾸겠다고 결정하자마자 주위에 부트캠프를 경험했던 사람들에게 후기를 물어보고, 현재 참여 인원을 모집 중인 곳들을 리서치했다.


약 나흘간 정보 수집과 상담을 진행했고, 닷새째 되는 날 나는 곧장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리곤 곧장 안 쓰는 통장으로 몇백만 원의 돈을 이체시켰다.


부트캠프 비용은 후불제였지만, 이미 내 통장에선 몇백이라는 돈이 없어진 셈이었다.

(재활을 위해 잠시 다녔던 필라테스도 이렇게 쿨하게 결제하진 않았었다.)


돈을 벌어본 자로써 나는 작정 지출하는 타입이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한번 사는 인생, 돈도 좋지만 뇌가 노후되기 전에 해줄 수 있는 걸 해주는 게 나쁜 것은 아닐 테니까.





02. 진실성과 관계없이 사회에는 ‘회사용 공감능력’이 필요하다.


자, 하고 싶은 걸 끝냈으니 다음은 해야 할 일을 처리할 시간이다.

처리라고 하니 억지로 하는 느낌이 강하지만 그렇진 않다. 이 역시 내 의지로 시작하는 일이니까.


사회생활을 하며 가장 곤란했던 상황이 타인에게 공감하는 일이었다.

머리로 이해는 하지만 정말 공감했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수 있겠다.

타인처럼 에세이를 읽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나였지만, 그것은 철저히 나의 대한 감정에 한해서였다.


내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결핍됐다고 처음 느낀 것은 대학 시절 동아리 임원을 맡았을 때였다.

공연을 앞두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습에 못 나오는 경우를 나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성인이 자신의 스케줄 하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게 옳은 걸까?

누군가의 부고, 병 이런 급작스러운 일이 아니고서야 스스로가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동아리원들의 사유보다는 변경된 스케줄을 수습하는데 집중했었다.


그 결과, 항상 개개인을 챙기던 회장 동기는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고, 나는 일적인 문제 해결을 제외하고는 딱히 찾는 사람 하나 없는 무서운 선배가 되었다.


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


그 당시에는 순전히 성향이 다른 부류의 사람이 동아리에 더 많았기 때문이라고 치부했었다.

(극단적 아싸는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사회생활을 하고, 회사를 한 차례 겪으면서 나는 내가 대인적인 감정이 많이 결핍된 사람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평생을 한국에서 보냈지만 나는 철저한 개인주의였고, 그런 내게 이런 회사용 공감능력은 너무 어려운 숙제였다.


일만 잘하면 된다? 아니, 그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 회사용 공감능력이 필요했다.

월요병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직장인이라면 겪는 월요병을 이해하고 있어야 했고, 막내 연구원은 그런 날에는 좀 더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했다.


아무리 눈치와 센스가 좋아도 팀원들과 교감하는 것에 한계는 존재했다. 그리고 그것이 사내에서 뒷말을 만드는 주된 원인이었다.



“oo씨가 좀 차갑긴 해. 혼자 쌩하니 퇴근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야. 사람은 나쁜 것 같지 않은데…”



대체 나쁜 사람은 아닌데 마음에 안 드는 건 개인의 욕심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도통 상사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늙은 사람들의 고정관념이라 생각했었다.


'퇴근을 꼭 같이 해야 해? 그럼 정시에 탁탁 가던가.'


이런 내 생각을 회사 사람들은 흔히 말하는 MZ세대의 특징이라고 치부했다.

과연 신세대였기에 한 생각이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내가 좀 별난 거겠지. 나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참에 새로운 커리어를 위해 빌드업하는 김에 성격도 빌드업해보기로 했다.

이름하여 감정일기 작성하기. 이번 프로젝트의 명이다.


새 직장이 생기기 전까지 매일매일 자유로운 일기 형식으로 그날의 감정일기를 써보려 한다.

내 감정에 솔직하고,

나를 감정적으로 만든 타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짧다면 짧은 편지를 써 내려갈 예정이다.

(감정일기 시리즈는 따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새해가 되고 두 달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언제나 시작은 벅차고 기대감이 가득하다.

부디 이번 시작이 시작만 창대한 프로젝트가 되지 않길 기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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