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아주 작은 것>
언니,
‘행복’에 대한 언니의 생각을 듣고 나는 잠시 멍해졌어. 나는 ‘행복하다’는 말을 아주 쉽게 내뱉는 사람이거든. 한 번도 행복의 정의에 대해, 행복의 존재에 대해 의심해보지 않았던 나는, 언니 편지를 받고 처음으로 생각해봤어. 도대체 ‘행복’은 뭘까, 하고.
나는 며칠 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고 맑게 갠 파란 하늘을 보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해. 남편과 우주랑 같이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산책하다 귓가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가만히 해먹에 몸을 누이고 창밖의 새소리를 들을 때, 야식으로 주문한 떡볶이를 남편이랑 맥주와 함께 먹을 때 행복하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나에게 행복은 기분 좋은 상태에 가까운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나에게 행복은 기분이 좋은 것과 같은 것일까 생각해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아.
예를 들면, 월급날 통장의 잔고가 늘어난 것을 보면 기분이 좋긴 하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하진 않고, 누군가에게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긴 하지만 행복감을 느끼진 않거든.
그러니까 내가 느끼는 행복은 기분이 좋은 감정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내 마음 주머니가 어떤 만족감으로 부풀어 오르는 데, 그 부푼 마음 주머니가 편안하고 따뜻해서 참 고마운 그런 느낌 같아. 그런 걸 ‘충만하다’고 표현하는 걸까? 혹시 그렇다면 그게 언니가 생각하는 어떤 완벽한 상태인 것일까?
언니 편지를 받고 내가 느끼는 이런저런 감정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우주한테 한 번 물어봤어.
“우주야, 우주는 언제 기분이 좋아?”
“엄마랑 레고 할 때.”
“그럼 언제 슬퍼?”
“엄마가 화낼 때.”
“그럼 언제 행복해?”
우주는 다른 질문에선 고민도 없이 바로 대답하더니 언제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음-음-’ 하고 한참 동안 고민을 하다가 그러더라.
“해먹에 누워있을 때.”
오늘 내가 가져와 본 그림책은 <아주 작은 것>이라는 그림책인데, 책을 보는 내내 ‘아주 작은 것’이 뭐지, 계속 생각하게 만들어. 언니도 이 ‘아주 작은 것’이 뭔지 들어볼래?
‘아주 작은 것’은 어느 여름날, 남자아이의 발아래로 지나가고, 한 여자아이는 그것을 매미채로 잡으려고 해. 악어를 키우는 할머니는 오래전부터 문가에 서서 그것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그것이 오는 걸 보지는 못했어. 아주 작은 것을 알아채기는 힘들어.
어떤 할아버지는 눈송이에서 ‘아주 작은 것’을 찾아내고 아이들은 커 가면서 그것이 더 이상 장난감 서랍이나 사탕 봉지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돼.
그건 때로 어떤 사람들을 겁주기도 한 대.
믿기 어렵지만, 때로 아주 작은 것은
어떤 사람들을 겁주기도 해요.
겁먹은 사람들은 문을 닫고,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벽을 쌓아 버리죠.
어떤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걸 찾아다니고, 때로 돈으로 손에 넣거나 상자 속에 가두어 버리려고 하지만 그걸 가질 수는 없지.
언니가 아주 쉽게 예상하듯 이 ‘아주 작은 것’은 ‘행복’이야.
나는 이 그림책을 보고 나서 ‘행복’의 본질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 그림책 마지막에는 이런 글이 나와.
“아주 작은 것은 바로 우리 눈앞에 있어요. 사람들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해요.”
이 그림책을 보고 나니까 어쩌면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금방 사라져 버리고, 생각보다 사소하고 작아서 알아차리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주가 행복할 때를 한참 생각해야 했던 것처럼, 하지만 막상 행복한 순간은 ‘해먹에 누워있을 때’처럼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처럼 말이야. 내가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도 생각해보면 모두 별거 아닌 짧은 순간이었던 것 같아.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을 보면서 느끼는 행복감, 귓가에 스치는 바람과 함께 찾아오는 행복감, 해먹 위에 편안하게 몸을 누이고 쉴 때 느끼는 행복감 모두, 나는 아주 짧은 찰나, ‘아!’하고 탄성을 지르며 ‘행복하다’라고 말하지만 다음 순간 그 감정은 곧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 같아.
물론 이게 정답은 아닐 거야.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도, ‘행복’이라는 감정이 마음에 떠오르는 방식도 모두 다를 테니까.
오늘 읽은 어떤 책에 나오는 한 할아버지는 ‘살아있는 사람과 따뜻함을 맛볼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대. 어린 시절 부모를 모두 잃고 오랫동안 혼자 외롭게 살다 느지막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그 할아버지에게 행복은 바로 그런 거였나 봐.
고민을 많이 하면 머리만 아프고 답은 더 찾기 어려워지기만 하는 것 같아서 나는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아. 하하. 이렇게 말하니 민망하지만 정말 그래.
이제 나는 ‘행복’에 대해 내가 고민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다 쓴 것 같아.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그게 어떤 형태로든 내 마음 주머니를 부풀릴 때 나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어. ‘아, 좋다!’, ‘아, 행복하다!’ 이렇게 말하면서.
결국 그게 중요한 것 아닐까? 행복을 무엇이라 정의하건 그것이 지금 내 앞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을 충분히 만끽하는 것 말이야.
언니, 지난번에 언니의 상태를 sns로, 또 언니의 이메일을 통해 들으면서 나는 언니에게 많이 미안했어.
우리가 지나 보내고 있는 육아의 시간들에 대해, 우리의 지금 현재 삶의 고민과 미래에 대한 생각들에 대해 편지를 주고받자고 해놓고 나는 정작 언니의 현재 상태에 대해, 언니의 마음에 대해 너무도 모르고 있었구나 싶어서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어. 다른 언어와 문화로 어지럽게 출렁이는 물결 속에서 언니가 외딴섬처럼 많이 외로웠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는 사실이, 그런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알량한 말뿐이라는 사실이 답답하고 미안하더라.
나는 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아니, 언니의 말대로, 마음이 편안했으면 좋겠어.
답답하고 막막하고 외롭고 우울한 날들이라도 아주 짧게라도 찾아오는 편안함을 언니가 놓치지 않고 모두 누렸으면 좋겠어. 그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언니가 힘든 날보다 편안한 날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 언니 말대로 언니 생각의 절반 이상을 언니에게 쓰면서 말이야.
나 역시 언니 말에 이백 프로, 삼백 프로 동의해.
우리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할 거고, 우리가 꿈을 꾸면 아이들도 함께 꿈을 꿀 거야.
그러니까 언니, 우리 같이 행복하자. 같이 글을 쓰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꿈을 꾸고, 같이 춤을 추자. 아주 천천히, 오래오래, 편안하게.
2022.9.1.
언니를 항상 응원하는 다경
글, 그림 :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옮긴이 : 김미향
현북스┃2016
#행복#행복의본질#아주작은것#사소한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