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망가진 정원>
언니,
답장이 너무 늦었지? 많이 기다렸을 텐데 미안해.
가끔 언니 편지를 받고 그런 생각을 해. 지금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는 언니가 바로 내 앞에 앉아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언니랑 따뜻한 차 한 잔에 폭신한 케이크를 먹으면서 답이 없는 이야기라도 마냥 주거니 받거니 하면 얼마나 좋을까. 조곤조곤한 언니의 목소리도, 내 말을 귀 기울여 듣다가 차분하게 질문을 던져주는 언니의 눈빛도, 여차하면 잡아줄 수 있는 언니의 손도 모두 바로 내 앞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언니 편지를 읽는데 어떤 것에서도 기쁨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언니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어. 나는 언제부턴가 먹는 것에 큰 흥미가 없어져버렸는데, 그게 때때로 참 서글프게 느껴지더라고(난 주로 배를 채우기 위해 먹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에 흥분하며, 혀끝에서 전해지는 감미로운 맛의 향연에 커다란 기쁨을 느낄 때가 분명 있었는데 그런 인생의 즐거움 하나가 사라져 버렸다는 게 괜히 억울하고 서러운 거야. 그런데 그 어떤 것에서도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니, 즐거운 것이 없어졌다니, 언니는 얼마나 답답하고 서글플까.
언니가 지금 통과하는 시간들은 나로선 정말 상상하기 힘든 시간들이야. 이 시간이 언니를 너무 오래 괴롭히지 않기만을 바라고 또 바라지만, 내 이런 바람이 언니에게 얼마나 전해질 수 있을지, 어떤 힘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언니, 나는 요즘 우주랑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빌려봐. 우주가 예전처럼 반복 독서를 하지 않기도 하고, 준호가 그러는 것처럼 우주도 내가 고른 책들을 거부하는 일이 많아져서 책을 사기가 쉽지 않아 졌거든. 예전엔 뭐든 읽어주면 호기심을 보이면서 집중의 입을 하고 책을 보더니, 우주도 이젠 표지만 보고선 냉큼 싫다고 해. 막상 보면 좋아할 거란 생각에 안타깝고 아쉽지만, 싫다는 아이를 붙잡고 책을 보여주면 책 읽는 일이 즐겁지 않은 일이 되어 버릴 것 같아서 조용히 내려놓곤 해. 언젠가 같이 볼 날이 있겠지, 하면서.
자꾸 ‘한 번도 안 본 새로운 책’을 보고 싶다는 아이를 위해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어. 도서관에 가서 함께 책을 고르고, 고른 책은 우주가 무인대여기를 이용해서 빌릴 수 있게 하는데 이게 꽤 재미있어. 일단 우주는 기계에 회원카드의 바코드를 대고 버튼을 누르는 것에 재미를 들여서 책 빌리는 것을 엄청 하고 싶어 해. 그러니까 빌릴 책을 고르는 게 우주한테도 아주 중요한 거야. 빌릴 책이 있어야 바코드를 댈 수 있으니까 말이야.
나랑 남편은 열심히 책장을 뒤져서 괜찮다 싶은 책을 골라서 우주 앞에 펼쳐 놔 줘. 그러면 우주는 표지를 보고선 보고 싶은 책을 골라. 아직 글씨를 모르는 우주는 일단 표지를 보고 호불호를 정하는데, 기준이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고른 책은 내용이 뭐든 간에 잘 보더라고. 어떤 날은 서로 책을 골라 와서 누가 재미있는 책을 더 많이 골라왔는지 경쟁하듯 늘어놓기도 해. 그러다 보면 우연하게 좋은 책들을 만나기도 하지.
오늘 이야기할 책도 그렇게 우연히 발견해서 빌려온, <망가진 정원>이란 제목의 그림책이야.
이 그림책은 ‘에번’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우가 사랑하는 반려견 멍멍이를 잃고, 그 상실감에 고통스러워하다 조금씩 회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멍멍이가 떠나고 텅 비어버렸던 에번의 마음이 다시 새로운 희망으로 채워지는 과정은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주었어.
멍멍이를 잃은 에번의 애처로운 눈빛 보여? 에번은 멍멍이를 잃고 깊은 상심에 빠져 집에 틀어박히고 말아.
가장 친한 친구가 없는, 낯선 정원이 너무나도 견디기 힘들었을까. 에번은 멍멍이와 함께 가꾸던 정원을 망가뜨리고 멍멍이와 함께 일궜던 밭도 더 이상 돌보지 않아. 에번은 모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여.
하지만 에번이 돌보지 않아도 풀들은 여기저기서 계속 자라나. 그 풀들은 마치 에번의 상처받은 마음처럼 뾰족한 가시들이 박혀 있고, 뾰족하고 거칠게 자라나는 풀들로 정원은 망가지고 말지.
그런데 하루는 울타리 밑으로 호박 덩굴이 자라나 있는 걸 보게 돼. 처음엔 호박 덩굴을 뽑아 버릴까 하다가 그냥 놔두는데 호박 덩굴은 혼자서도 점점 자라나 열매를 맺어. 그 모습을 본 에번은 그 호박을 다시 돌보기 시작하고, 호박은 금세 커다랗게 자라나.
멍멍이와 함께 하던 모든 것들을 지워버리려고 했지만, 에번은 호박을 다시 키우며 무언가를 가꾸고 일굴 때의 느낌, 그 익숙했던 느낌을 다시 마주하게 돼. 혼자 고립되어 있던 에번은 커다랗게 자란 호박을 들고 마을 품평회에 나가고, 그곳에서 예전처럼 친구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일상의 활기를 되찾는 듯해.
사랑하는 존재를 잃고, 그 상실감에 괴로워하며 모든 기억을 지우려고 애쓰지만 결국은 또 예전의 추억이 텅 빈 마음을 채워주며 에번을 치유해주는 과정이 모두 너무나 사실적이라 나는 책장을 넘길수록 이 책에 정말 빠져들었어. 에번이 이 깊은 상실감을 어떻게 회복해나갈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따라가면서 봤거든.
하지만 나의 감상과는 별개로 이 책이 우주한테는 약간 어렵고 무겁고 재미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보는 내내 우주의 표정을 살폈는데 의외로 우주의 반응이 그렇지 않아서 너무 놀라웠어.
우주는 상심한 에번이 정원을 망가뜨릴 때는 놀람과 걱정이 교차되는 얼굴을 하고 그림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쳐다보더니, 에번이 침울하고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는 과정을 보다가는 갑자기 나한테 기대며 ‘강아지가 죽어서 속상하다’란 말을 하더라. 에번의 상실감과 슬픔이 우주에게도 다 전달되었나 봐.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숨을 죽이고 이야기에 집중하던 우주는 마지막 장면에선 활짝 웃으며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어. 품평회에서 3등을 한 에번에게 상금 10달러 아니면 아기 동물이 들어있는 상자를 고를 기회가 주어지는데 처음에 상금 10달러를 선택했던 에번이 결국은 상자에 들어있던 강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끝나거든. 이 뒷모습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는 우주를 보는데 나도 참 기분이 좋더라.
나는 보통 잠들기 전에 우주랑 책을 보곤 하는데, 아침에 자고 일어난 우주가 바닥에 놓여있는 이 책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어.
“이 책은 재미있고 슬프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들어있어.”
언니, 언니는 왜 책을 읽는다고 생각해? 우리는 왜 책을 읽는 걸까? 왜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기를 바라는 걸까?
난 우주의 말을 듣고 책을 무지하게 좋아했던 어렸을 때의 나를 떠올려봤어. 나는 여덟 살이 되어서야 겨우 한글을 뗐는데, 한글을 뗀 후로 글씨를 읽는 재미에 푹 빠져서 집에 있는 읽을거리는 뭐든 닥치지 않고 읽어댔어. 그다음에는 책에 들어있는 이야기에 푹 빠져서 이 책, 저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지. 나는 ‘이야기’가 너무 좋았어.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슬퍼하고 기뻐하고 힘들어하는 주인공이 꼭 나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 내가 초등학교 때 정말 좋아하던 책 중에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은 아마 스무 번은 읽었을 거야. 읽을 때마다 펑펑 울면서 보고 또 보고 했었어. 주인공을 따라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그러면서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게 아닌가 싶어.
나는 우주가 <망가진 정원>에 대해 한 말과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 책이 담고 있는 어떤 교훈적 가치보다 그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적 동요, 정서적 감흥이 결국은 우리를 이야기에 빠지게 하고 또 다른 책으로 이끄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야. 우리를 이끈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주인공이 되어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대면해보기도 하고, 주인공 주변의 인물이 되어 주인공을 바라보기도 하고, 또 다른 선택지를 상상해보기도 하고, 결국은 주인공이 무언가를 극복해나가는 것을 보며 희망과 용기를 얻기도 하는 게 아닐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내면의 힘을 쌓아가고 말이야.
언니가 물었잖아. 책 선정에 아직은 개입을 해야 하는 걸까, 하고. 나는 언니 질문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다가 우연히 접한 이 책, <망가진 정원>을 읽은 후에 생각이 조금 정리가 되었어.
사실 이번에 언니 편지를 읽으면서 꼭 내가 쓴 편지 같다는 생각을 했어. 우주도 부쩍 자기 취향이 생기면서 예전 같지 않게 내가 권하는 책을 거부하고 있는데, 나 역시 언니처럼 우주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 전해주고 싶은 가치가 있는 거야. 그렇다고 아이가 싫다는 것을 억지로 붙잡고 보여주고 싶진 않아서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책을 보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차였지. 그래서 도서관에서 어떻게든 우주의 선택지 안에 내가 고른 책을 넣으려고 부지런히 책을 골랐고, 최근에는 집 벽면에 내가 우주한테 소개하고 싶은 책을 꽂아놓을 요량으로 책 선반을 달기도 했어.
그런데 이제 그런 생각이 들어. 아이가 책에서 느끼고 경험할 정서적 감흥은 내가 예측하거나 만들어내줄 수 있는 게 아니고, 그때그때 아이의 심리와 상황, 경험 그리고 필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것. 그러니까 결국 책을 고르는 건 아이일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 말이야. 그래서 준호도, 우주도 점점 자라면서 자기의 취향과 본능, 필요에 따라 책을 고르고 읽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럼에도 나는 계속 아이에게 책을 소개할 것 같아. 아주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도서관을 이용하건, 집에 있는 책 선반을 이용하건, 바닥에 그냥 책을 툭 던져놓건. 그 책을 집어 들지 말지는 아이의 선택이 되겠지만 아이의 선택지 안에 계속 나의 선택지를 하나씩 넣어주고 싶고, 가능하다면 우리가 함께 본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이걸 개입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아.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내가 감명 깊게 본 이야기, 그래서 아이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아이한테 제안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물론 읽으라고 강요는 하지 않을 거야. 강요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우리, 그런 의미에서 열심히 아이들에게 책을 권해주고, 거절당하는 책을 모아서 전시라도 해보면 어떨까? 각자 집에서, ‘거절당한 책들’, 뭐, 이런 제목으로 말이야. 아니, 우리 둘이 온라인 전시를 해봐도 좋겠다. 나는 언니가 소개해 준 두 권의 책 모두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거든!
우주는 요즘 무서운 이야기에 푹 빠져있어. 다섯 살 아이에게 아직 이른 감이 있다고 생각은 드는데 너무 재미있어해서 그냥 오디오로 들을 수 있는 미스터리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가끔 우주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재미있어. 무서워하면서도 또 듣고 싶어 하는 걸 보면서 나 역시 괴담에 빠져있던 어느 한 시절이 생각나서 풋, 웃음이 나더라고.
한때는 감동적인 소설, 한때는 모험이 주가 되는 소설 또 한때는 추리 소설, 또 한때는 시, 또 한때는 자기 계발서와 역사소설. 이렇게 나는 시기에 따라 좋아하는 장르가 계속 바뀌었는데 앞으로 우주는 어떤 이야기들에 빠지게 될지 궁금해. 어떤 이야기에 빠지건 그 이야기 안에서 우주가 울고 웃으면서 스스로 마음의 힘을, 생각의 힘을 키워 가면 좋겠어.
언니, <망가진 정원>에 이런 글이 있어.
멋진 곳이 오래도록 텅 빈 채 버려지는 법은 없어요. 반드시 무엇인가 자라나기 마련이지요.
난 이 말이 가슴 깊이 와닿았어.
언니의 텅 빈 마음에도 반드시 무엇인가 자라날 거라고, 우리 아이들 마음도 때로는 텅 비는 날들이 있겠지만 결국은 그 안에서 또 무엇인가 자라날 거라고 생각하면 안심이 돼.
그리고 그 무언가를 자라나게 하는 데 분명 아이가 보는 책들이 자양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오랜만에 써서 그런가, 이번에 편지가 너무 길었다.
아마도 여전히 이런저런 생각들이 잘 정리가 되지 않은 모양이야.
2022.11.2
언니의 멋진 마음이 다시 팔딱팔딱 뛰길 기다리며,
다경
망가진 정원(The rough patch)
글, 그림 : 브라이언 라이스
옮긴이 : 이상희
밝은미래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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