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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맘 Nov 18. 2023

1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건 어떻게 하는 건데?

‘나를 사랑하다’라는 말은 정확히 어떤 행위를 말하는 걸까? 뭔가 느낌적인 느낌으로는 알 것 같기는 한데 안개에 쌓여 있는 것처럼 명확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다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세요’, ‘나를 사랑해야 자존감이 높아져요.’라는 말은 많이 듣는데, 정확히 어떤 종류의 움직임이 수반되어야 ‘나는나를 사랑한다’는 정의에 부합하는 걸까? 


아침 출근길 급하게 화장을 하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정윤아, 나는 너를 사랑해’ (갑자기?) 고백하면, 나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보그 코리아의 유튜브 프로그램 ‘왓츠인마이백()what’s in my bag)’에 등장했던 고현정의 생로랑 맥시 쇼퍼백을 찜 해두었다가 몇 달치 월급을 모아 나에게 가방을 선물하면, 나를 사랑하는 걸까. 가족과 직장 동료, 클라이언트에게 일 주일 내내 시달리다가 온전히 나를 위한 여행을 떠나면? 제주 세화 해변 앞 카페 ‘한라산’에서 방금 밭에서 뽑은 듯 신선한 당근 주스(정말 맛있긴 하다)를 마시며 옥빛 바다를 가만히 바라본다면, 그러면 정말 나를 사랑하는 걸까? 


이 질문의 답을 구하려면 우선 우리는 ‘나’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고?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질문인가. “나는 김정윤이고, 한국나이로 42살이야. 상원이의 엄마이자 재우 씨의 아내, 키 170cm에 몸무게는 비밀, 서울에서 나고 자라고 살고 있으며, MBTI는 ENTP, 매거진 에디터로 일하면서 움직임 명상과 아이키도를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지. 술은 맥주와 와인을 즐기고, 맛있는 걸 먹는 것을 좋아해.” 이렇게 나 자신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데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고?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나 자신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뇌 과학적으로 팔 두 개, 다리 두 개,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를 가지고 있는 김정윤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좌뇌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는 우뇌는 나와 내가 포함한 세계에서 전달되는 모든 감각 작용 전체를 ‘나’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을 통해 인식하는 모든 감각 작용이 다 나인 것이다. 점심 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여의도 스타벅스 샛강역점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무리의 직장인들의 바쁜 걸음걸이, 주문한지 약 1시간 30분이 흘러 차갑게 식은 더블 에스프레소 크림 라떼의 달콤쌉싸름한 맛, 11월이 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한 겨울의 포스를 풍기는 차가운 바람의 감촉이 모두 다 나다. 


그러므로 ‘나를 사랑한다’는 말에 부합하는 과학적인 정의는 ‘내가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는 모든 감각 작용을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다. 뭐라고? 만원 지하철내에서 스물스물 풍겨오는 불쾌한 냄새를 사랑하라고? 어느 날 갑자기 내 전화와 톡을 모두 씹으면서 잠수 탔던 구 남친 녀석을 사랑해야 한다고? 내 짬뽕 국물에 다소곳이 잠겨 있는 주인 모를 곱슬곱슬 머리카락도? 아이를 낳고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도 빠지지 않는 뱃살과 체중계에 찍히는 어마어마한 숫자까지 모두? 모조리 사랑해버려야 한다는 말이야? 


OMG.  


이게 도대체 가능하기는 한 건가.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찬찬히 한 발자국씩 가다보면 의외로 쉽게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잘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아직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정 나이가 지나면 우리의 뇌는 딱딱하게 굳어서 변화할 수 없다는 학설은 이미 과학적으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증명되었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면 어느 나이에나 뉴런의 배선을 바꿔서 새로운 행동 양식을 채득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정 시간 이상 반복적인 연습을 이어 나가는 것뿐. 그러면 자전거를 타듯이 어느 순간부터는 저절로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몸이 그런 방식으로 움직이게 된다. 놀랍지 않은가. 달라이 라마나 장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반복적으로 의도적인 학습을 통해 우리의 목표인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목적에 다다를수 있다. 


이제 그 방법을 아주 천천히 조금씩 안내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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