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 학생회 시위를 보며
방금 막 태어난 신생아는 자기 몸 하나 움직이지 못한다. 신생아에게는 자유가 없다. 스스로 배가 고파도 밥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양육자가 먹을 것을 제공해야 한다. 이는 인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약속과, 신생아의 존엄성이 기본권으로 보장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다행히 헌법은 이러한 권리를 명문화하고 있어, 언어로 규정되지 않은 권리가 실효성을 상실하는 것을 방지한다. 따라서 헌법과 정책은 매우 중요하며, 이를 국민이 이해하고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동덕여대 학생회가 추진한 남녀공학 반대 시위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학생회가 주장한 바는 성평등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옹호하려는 시도로 보였지만, 그 방식이 폭력적이고 배타적이었다는 점에서 의문이 들었다. 여대는 여성의 교육권이 박탈되던 시절,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따라서 여대 학생회는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교육의 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시위에서 학생회는 그러한 방향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2020년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여학생 입학 논란과 마찬가지로, 동덕여대의 사례도 사회적 논의가 부족한 성평등 가치와 정책 이행을 요구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지 못했고, 설득력 있는 방식을 찾지도 못했다. 외려 이들의 행동은 또 다른 폭력과 소외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단순히 학생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디어와 대중 역시 비판적 프레임을 통해 이들을 낙인찍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에 대한 본질적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미디어와 대중이 학생회와 관련된 "52억 배상"이나 "주동자 색출"에 주목하며 느끼는 감정은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즉 타인의 실패나 불행에서 느끼는 은밀한 즐거움이다. 이는 정의감이 발현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심리 현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녀사냥이나 편향된 프레임과 결합되면 위험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여대 학생회에게 어떤 '처벌'이 내려질까에만 초점을 맞춘 뉴스 보도는 실질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사회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이를 위한 논의를 방해한다. 이러한 상황은 현 사회 전반적으로 사회적 운동과 자기표현에 대한 기초 교육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신의 권익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거나 부당함에 침묵하는 것은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이는 결국 권익을 보장하는 정책의 부재로 이어질 수 있다. 즉, 자기표현을 정당하게 하지 못하는 개인은 사회에서 자유를 박탈당한다.
미디어와 다수의 사람들이 과연 사회운동을 위한 교육이 있었는지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길 바란다. 내가 부당하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내 권익을 헤치는 일이며, 침묵하는 개개인이 많아질수록 부당함에 대해 침묵하는 사회가 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개개인의 권익을 보장하는 정책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을 표현하는 의사소통 기술은 매우 기본적인 사회기술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부당하다고 느낀 것에 대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방법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기초교육인 것이다. 따라서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을 표현하고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의사소통 기술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본적인 교육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특히, 동덕여대 학생회와 같은 사례는 사회운동의 기초가 되는 교육과 정책적 지원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이번 사건을 단순히 학생회의 잘못으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만을 묻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사회적·정책적 배경 하의 자기표현 교육의 부재를 함께 고민해야 하며, 대중과 미디어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이제 침묵하지 않되, 부당함에 잘 맞설 수 있는 기본 권리를 교육하는 방향에 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