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now who you are, You know who you are
15년 전 사회초년생일 때 ‘당신이 하는 말이 맞아요. 원래 그렇게 해야 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라는 말을 자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놀랍게도 지금도 여전히 비슷한 말이 통용되고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법적권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침묵당하게 되었을까. 이는 곧 법적권리가 현실적인 이유로 침해되어도 된다는 뜻이 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되었는데, 왜 권리를 지키는 일은 '현실적 어려움'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히 포기되어야 하는 걸까? 왜 당연히 지켜져야할 기본권이 감정적인 호소로 무마 되어야 하는 걸까?
법적권리가 이행되는 모습 중 하나는 정의구현이다. 하지만 정의는 저절로 실현되지 않는다. 정의는 이를 실현하려는 사람들이 있을 때 비로소 구현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은 노동자로서 사회활동을 하지만, 대기업이 아닌 이상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 일용직,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이들의 환경은 더욱 열악하다. 대다수 기업이 5인 미만 또는 중소기업인 상황에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구조는 매우 허술하다. 예를 들어, "눈치 보지 않고 연차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권리임에도 기업들은 이를 마치 특별한 복지 혜택처럼 내세운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오, 연차 사용이 자유롭다고? 괜찮은데"라며 수긍한다. 연차 사용이 실질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더라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회사를 다니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는 사장님이 이해된다며 연차사용을 하지 않기도 하며, 이것이 고용주와 노동자의 의리, 충성심, 우정의 표시가 되기도 한다.
간혹 기본적인 권리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어도, 주변에서 함께 의견을 모으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불편해하거나, 그로 인해 자신이 불안정해지거나, 분위기가 나빠질까 두려워한다. 이렇게 개개인이 서로를 경계하는 분위기 속에서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 "정당한 것은 당연히 요구할 수 있다"는 대전제는 사라진 지 오래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의 개개인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회 분위기에는 결국 기본적 권리가 묵살되어도 괜찮다는 암묵적 동의가 자리 잡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법과 정책이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법과 정책은 사회를 따라가야 하지만, 현재의 사회적 침묵은 변화의 동력을 우리 스스로 잃게 만든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견을 자유롭게 내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는 자기 결정권 침해일 뿐 아니라, 개개인의 목소리가 사회에 반영되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왜 자의로 일을 그만두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지, 왜 기본적인 생활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지 질문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법적 보호 범위가 달라지는 이유도 법과 정책, 그리고 개개인의 기본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중소기업을 선택한 것이 내 자유라 해도, 그로 인해 법적 권리가 침해된다면 그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헌법의 실효성은 사회적 의사소통을 기반으로 강화된다.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의사표현은 헌법의 실효성을 약화시키거나 강화시킬 수 있다. 만약 사회문제의 원인을 구조적 결함이 아니라 개인의 책임, 능력과 자본의 부족, 으로 돌린다면, 해결책은 점점 더 분절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변한다. 결국 부당한 상황을 보고도 지나치는 것이 "내 선택"이라 주장할 수 있지만, 그 선택이 정말 내가 원하는 자기 결정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I know who you are, you know who you are
저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어요,
당신도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습니다.
<모아나 OST 중>
우리는 '이번 회사는 괜찮을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원한다. 더 정확히는 나를 포함한 누군가가 부당한 처우를 받으면 함께 처우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무엇보다 그 처우가 실질적으로 개선되는 사회를 원한다. 안정된 구조와 사회적 신뢰는 감정적인 호소로 만들어 지지 않는다. 실절적인 법과 정책이 안정감 있는 사회를 만들고, 안정된 개인을 형성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만연한 부당함을 외면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