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반백을 넘긴 어느 봄,
예고도 없이 불행이 찾아왔다.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른다지만,
그날의 폭풍은 너무나 가혹했다.
병세는 나날이 깊어졌고, 세상은 그를 떨게 만들었다.
결국 일을 그만두고,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그가 왜 이런 혹독한 일을 당해야 하는지,
누구도 설명할 수 없었다.
손짓해 불러들인 적도, 몽둥이로 내칠 수도 없었다.
목이 터져라 하늘을 원망해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의 삶은 그렇게 송두리째 흔들렸다.
아들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던 엄마는 방향을 잃었다.
어쩌면 엄마의 인생에서 네비게이션은 오빠의 등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등마저 꺼지자, 상실의 슬픔이 잡초처럼 번져나갔다.
오빠의 뒷모습만 봐도 행복했던 분이었으니,
그 절망이 얼마나 깊었을까.
이제 저 여인을 어찌해야 하나.
뿌리를 잃은 줄기처럼 시들어가는 엄마 앞에서
나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마음만큼 어두운 밤이었다.
직녀가 견우를 만난 듯,
엄마는 제상의 주인을 향해 넋두리를 쏟아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그동안 눌러왔던 한과 서러움을 신들린 듯 쏟아냈다.
엄마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는 잔인했다.
긴 겨울을 이겨내는 풀잎처럼 연약한 엄마의 마음을 마구 짓이겼다.
내 좁은 소갈머리로는 화해가 쉽지 않았다.
세월은 조금씩 약이 되었다.
목젖 너머로 울컥하며 올라오던 기억들도
조용히 추억으로 저장되기 시작했다.
이승을 떠난 오빠의 혼이 머문 자리에서
그가 먹고 간 제사 음식을 먹었다.
복을 받는다기에, 음복주 한 잔을 들이켰다.
엄마의 주름 사이로 숱한 세월이 흔들렸다.
두어 잔을 더 마시자,
세월 앞에서 풍화되어 가는 엄마의 얼굴이 내 머리채를 잡았다.
열 달 품어 길러낸 마음을 잊지 말라며.
마침내 나는 오빠와 무언의 약속을 했다.
이승과 저승의 맹세이니, 되돌릴 수도 없다.
이번에도 나는, 또 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