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쓰는 말이지만, 헤아려 보려고 하면 의미가 잡히지 않는다. 기계적으로 사용될 때 가장 적합한 것 같지만, 한없이 종교적인 신비스러움이 가득하다.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로 하기에 정의내리기 가장 어려운, 그렇지만 아주 어린 아이도 쉽게 이해할수 있는 그것. 인간에게 시작과 끝을, 그리고 영원과 무한이라는 개념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 단어는
시간이다.
인간의 생활속에서 시간을 추상하는데 가장 적합한 행위는 자르는 것과 되풀이되는 것이다. 자름과 반복은 동서양 모두에게 공통된 시간의 가장 보편적인 특성이다. 하루를 24개의 시간으로 쪼개고, 한시간을 다시 60개의 분으로, 그리고 그것을 다시 60개의 순간으로. 세슘원자를 이용한 원자시계는 그 1초를 다시 91억9263만1770번으로 쪼갤수 있다고 한다. 3000억년에 1초정도의 오차가 생긴다는 시계.
저정도는 이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시간이다. 100년도 못살면서 3000억년에 1초의 오차가 나는정도의 시계는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 아무도 검증할수 없을텐데 말이다. 그래서 시간은 종교적이면서 신비롭다. 상상속에서 인간은 3000억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뛸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은 time이다. 어원에 나눠준다는 뜻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산스크리트어원의 da-에 해당하는데, d발음이 t발음으로 바뀌면서 time의 핵심적인 소리가 되었다. 시간이라는 말은 종종 파도나 물결에 비유되기도 한다. 아직도 바다가 있는 지역에서는 물때라는 말이 쓰인다. 물과 때라는 단어의 조합은 시간을 물의 흐름으로 표현하는 영어의 time and tide에서 보이는 직관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tide는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조수를 의미한다. time and tide라고 묶어서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때를 구분하는 것에서 시간을 유추했을 것이다. tide라는 단어에도 역시 time과 공통적인 나눈다는 뜻의 어원이 포함되어 있다. 아마도 물을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것을 나눠서 인식했던 데서 유래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널리 쓰이는 표현이 있다.
Time and tide wait for no man.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부쩍이나 공감이 가기 시작하는 표현이다.
카지노에서 카드를 나눠주는 사람을 딜러dealer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카드를 나누어 주는 사람이다. 카드를 나누어준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deal은 거래나 다룬다는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어원은 나눠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거래라는 것은 결국 어떤 이익을 서로 공평하게 나눠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시 나눠갖는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흔히 악마로 이해되는 데몬demon이라는 단어는 좀더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daimon을 만날 수 있다. 사악한 영혼, 악마라는 뜻으로 사용되는데, 신보다 낮은 힘을 갖고 있는 초자연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daimon의 원래 뜻은 운fortune을 나눠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역시 나눠준다는 뜻의 da-가 그대로 보인다. 아마도 최고의 신이 존재하고, 그 아래에서 인간들에게 복이나 운을 나눠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 것 같다. daimon은 시간이 흐르면서 daemon, demon으로 형태가 달라졌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나누는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좀더 생각해 보면, 동서양 모두 시간은 하늘과 관계된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동양에서 사용하는 60갑자중 시간의 개념을 상징하는 것은 천간이다. 천간과 함께 한해를 규정짓는 역할을 하지만 지지는 공간과 방위에 더 밀접하게 연관된 개념이다. 노자에 나오는 “천장지구天長地久”라는 표현은 동양 고유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다. “천장지구”라는 말의 의미는 “하늘은 넓게 펼쳐져 있고, 땅은 오래되었다” 는 뜻이다. 하지만 아마도 노자보다는 유덕화와 오천년이 주연했던 영화의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한국에서는 “천장지구”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원제는 천약유정天若有情). 실제 남녀간의 진실되고 유구한 사랑을 비유하기 위해 이 말이 사용되기도 했기 때문에,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을 의미하는 개봉 타이틀로 “천장지구”를 선택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하늘은 본래 시간과 관계되고 땅은 공간과 관계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천장지구”라는 표현은 하늘에는 공간에 대한 서술어가, 땅에는 시간에 대한 서술어가 결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말해, 노자사상에서부터 이미 우주에 대한 시간이 시공간이 종합된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흔히 사용하는 “우주宇宙”, “존재存在” 라는 단어에도 역시 해당된다.
서양에서도 시간은 하늘과 연관된 것으로 나타난다. 동양과 서양은 각각 밤하늘에 펼쳐져 있는 무수한 별들을 구분하고 일종의 패턴을 형상화하여 계절마다 보이는 별자리를 만들었다. 서양에서는 1년 동안 태양의 위치에 따라 관찰할 수 있는 별자리들을 12개로 구분해 놓고, 그것을 황도 12궁이라고 불렀다. 황도12궁은 영어로 horoscope라고 하며, horoscope는 horo와 scope라는 단어의 결합이다.
horo는 시간을 의미하는 라틴어 hora에서 파생된 말이고, scope는 본다는 뜻을 갖고 있다. 멀리 있는 것을 본다는 뜻의 telescope나 작은 것을 관찰해서 본다는 microscope에도 보인다. 결국 천궁도, horoscope는 말 그대로 “시간을 본다”는 뜻이다. 그래서 밤하늘에 별자리가 어떤것인지를 보고 한해중의 시간을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이다.
time이라는 말에서 가장 핵심이 되었던 부분이 “나눈다”는 것에 있었다면, 서양은 밤하늘을 나누고 쪼개어서 시간을 파악하려고 했던 셈이다. 어쨌거나 결국 시간의 본질은 나누는 것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물론, 시간의 본질이 인생의 본질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