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문학과 사주팔자를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처음 가볍게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20회까지 쓸 수 있었네요. 문학과 사주명리학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일단, 운명없는 문학은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사주명리학은 아주 문학적인 DNA가 가득한 인문 교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의 삶보다 더 문학적인 것은 없을 것이고, 또 그러한 실제 삶을 한편의 서사로 풀어나가는 사주명리학은 그 본질에서부터 매우 문학적인 기질이 있는 셈이죠.
예전보다 정말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사주명리학은 점점 일상과 삶을 아우르는 인문 교양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을 명리학과 접목시켜 살펴보는 것은 이 통섭의 시대에 또 의미있는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물론, 영화와 드라마를 망라하여, 삶과 운명의 키워드가 포함된 장르라면 어디에도 사주명리학은 적용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사주명리학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나 칼 융의 원형의식처럼,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접근하는 매우 의미있는 지식체계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은 과학이 아닙니다. 과학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수 많은 방법중의 한 가지 일 뿐, 과학으로 세상일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명리학이 과학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명리는 지식에 대한 학문이기 보다, 사유의 방식에 대한 학문이기 때문에 지식을 추구하는 과학과 비교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굳이 명리학을 과학의 기준으로 재단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명리학이 과학적이길 바라는 사람들은 마치 무언가가 과학적인 것으로 입증되면 그로 인해 합리적인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과학은 여전히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과학은 명리를 판단하는 우월한 학문체계가 아니라, 명리와 함께 세상과 삶과 운명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동급의 사유체계라고 봐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주명리학이 새로운 문학비평이론의 체계가 충분히 될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학비평이론의 스펙트럼은 대단히 넓습니다. 하다 못해 문학과는 별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온갖 사회경제이론들 조차도 문학비평이론으로 폭넓게 수용되는데, 사주명리학이 안될 이유는 별로 없을 거 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문학을 사주명리학적인 관점에서 조망하는 작업을 계속 하겠지만, 이번 사주명리 세계문학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사주명리학으로 풀어보는 작업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사주명리학을 가깝게 그리고 동양적 사유의 깊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