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비극은 서양 문학과 사상의 뿌리 중 하나로, 인간 삶의 근본 문제들을 극적 서사로 탐구한 장르이다. 비극은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상연되며 시민들에게 카타르시스(정서적 정화)를 제공하는 문화적 행사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진지하고 완결된 행위의 모방”으로 정의하면서, 관객의 연민과 두려움(pity and fear)을 불러일으켜 감정을 정화한다고 보았다. 비극의 주인공은 완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인물로서, 작은 과오나 한계(hamartia)로 인해 큰 불행에 직면하게 된다고 분석하였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비극은 운명과 도덕적 모호성을 조명하며 관객에게 인간 조건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특히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고대 비극의 백미로 손꼽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시학』에서 이 작품을 가장 완벽한 비극의 본보기로 높이 평가하였는데, 치밀한 구성과 극적 아이러니를 통해 극도의 연민과 공포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왕』의 주인공은 자신의 숙명에서 도망치려 하지만 도리어 그 숙명을 정확히 마주하게 되는 서사를 가지고 있어, 인간의 운명과 자유의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선사한다. 이러한 고대 비극의 예는 훗날 심리학, 철학, 문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하며, 인류 문화유산으로서 깊은 의의를 지닌다.
소포클레스(기원전 496?~406년경)는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와 더불어 아테네 3대 비극시인으로 꼽힌다. 그는 아테네 인근 콜로노스에서 무장 제작자의 아들로 태어나 풍족한 교육을 받았으며, 기원전 468년에 비극 경연에서 아이스킬로스를 제치고 우승하면서 극작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60여 년간 약 120편이 넘는 희곡을 썼고, 그 중 7편의 비극이 완전한 형태로 전한다. 소포클레스는 극작 외에도 공적 삶에 참여하여 재무관, 장군 등을 역임했는데, 이는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시민적 가치관과 종교적 경외심에도 반영되어 있다.
소포클레스 비극의 문학적 특징으로는 먼저 극적 기법의 혁신을 들 수 있다. 그는 배우의 수를 기존 둘에서 셋으로 늘려 보다 복잡한 갈등과 대화를 연출하였고, 무대 배경화(scene painting)를 도입하여 극의 시각적 효과를 강화하였다. 또한 합창대(코러스)의 규모를 확대하고 음악적 요소를 중시함으로써 비극의 극적 긴장과 서정성을 모두 살렸다. 내용적 측면에서 소포클레스의 비극은 인간과 운명의 관계를 심오하게 탐구한다.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몇몇 핵심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되는데, 이 인물들은 강인한 성품과 확고한 신념을 지녔으나 그러한 장점이 지나쳐 오만이나 고집으로 변질되면서 비극적 결말을 초래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즉 소포클레스는 인간의 고귀함과 나약함을 동시에 그려내며, 운명의 불가피성과 도덕적 책임에 대한 깊은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오이디푸스 왕』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에서 잘 드러나며, 후대의 극작가들과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Oedipus Rex)은 그리스 신화의 테베 왕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비극으로, 인간이 자신의 운명과 정체성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극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왕비 이오카스테는 아폴론의 신탁으로부터 “태어날 왕자가 장차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무서운 예언을 듣는다. 왕족은 그 운명을 피하고자 갓난아들을 산에 버려 죽이려 하지만, 아이는 극적으로 구출되어 코린토스의 왕 폴리부스에게 입양된다. 아이는 발이 부은 채 발견되었기 때문에 ‘발이 부은 자’라는 뜻의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으로 자라난다.
오이디푸스는 성인이 되어 자신의 출생에 관한 의문을 품고 델포이의 신탁을 찾았다가, 동일한 예언(부친 살해와 모친과의 결혼)을 듣게 된다. 이를 자신의 양부모(폴리부스 왕 부부)에 대한 예언으로 믿은 그는 충격에 코린토스를 떠나고, 길 떠나는 도중 한 갈림길에서 마차를 탄 낯선 노인과 시비가 붙어 그를 살해한다. 이 노인은 사실 그의 친부 라이오스 왕이었지만 오이디푸스는 알지 못한다. 그 후 테베에 당도한 오이디푸스는 괴물 스핑크스가 내는 수수께끼를 지혜롭게 풀어내어 도시를 구하고, 보상으로 테베의 새 왕이 되어 이오카스테왕비와 결혼한다. 오이디푸스는 이렇게 자신의 참혹한 운명을 전혀 모른 채 왕위와 가정을 얻어 평화를 누리는 듯했으나, 그것이 거대한 비극의 서곡이었다.
세월이 흘러 테베에 무서운 역병이 돌자, 오이디푸스는 이를 해결하고자 신탁을 구한다. 신탁은 “옛 왕 라이오스를 죽인 살인자를 찾아내어 처벌하기 전에는 역병이 끝나지 않는다”고 전한다. 왕은 즉시 라이오스 왕의 살해범을 추적하기로 맹세하고, 맹인 예언자 티레시아스를 불러 조언을 청한다. 그러나 티레시아스는 차마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 하고, 오이디푸스가 답답함에 분노하자 마침내 “그 살인자는 다름 아닌 당신 자신”이라는 충격적인 말을 하게 된다.
이를 들은 오이디푸스는 크게 격노하여 티레시아스를 모함하고, 왕위 계승을 노리는 매제 크레온과 짜고 자신을 음해한다고 의심한다. 한편 왕비 이오카스테는 남편을 진정시키며 예언 따위는 믿을 것이 못 된다고 말한다. 그녀는 과거에 라이오스 왕도 “아들에게 죽임을 당하리라”는 신탁을 받았지만, 왕자(오이디푸스)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죽었으므로 예언은 성립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해준다. 이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의 대화에서 몇 가지 단서가 드러나자,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어쩌면 라이오스의 살해범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바로 그때 코린토스에서 사자가 도착해 폴리부스 왕의 자연사 소식을 전하면서, 폴리부스 부부는 친부모가 아니며 오이디푸스가 입양된 아이였음을 밝힌다.
이어 과거에 오이디푸스를 구해준 양치기노인이 소환되고, 그의 증언을 통해 마침내 모든 진상이 하나로 맞추어진다. 오이디푸스는 자기 자신이 탐색하던 바로 그 범인이자, 라이오스의 아들이며, 현재 자신의 아내인 이오카스테의 친아들이었음을 깨닫는다. 이 끔찍한 진실앞에서 이오카스테는 절망하여 목숨을 끊고, 오이디푸스는 처참한 죄책감과 슬픔에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된다. 결국 그는 몰락한 왕으로서 장님 거지가 되어, 친딸 안티고네의 손에 이끌린 채 추방당함으로써 비극은 막을 내린다.
이 극은 정교한 구조와 극적 아이러니를 통해 당대 관객들에게 강렬한 정서적 충격과 깨달음을 주었다. 이야기의 전개 내내 관객은 오이디푸스의 참된 정체와 죄를 알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알지 못하는 극적 아이러니가 유지된다.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밝히고자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지만, 그 답변들은 곧 자신을 향한 것이 되어버린다 (“자신의 저주가 자기에게 돌아오는” 아이러니). 이러한 장치는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의 운명을 애처롭게 바라보게 하여 깊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의 공포와 충격을 극대화한다.
『오이디푸스 왕』의 주제는 고대부터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으나, 핵심적으로는 운명과 자유의지, 정체성의 탐구, 도덕적 책임세 가지 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운명과 자유의지의 문제에서 이 작품은 인간이 제아무리 노력해도 운명의 흐름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오이디푸스 부부와 그의 부모 세대(라이오스 왕 부부)가 모두 신탁을 피하려 안간힘을 쓰지만, 그 노력이 오히려 신탁을 실현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운명은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동시에 작중 인물들은 주어진 상황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리며, 그 선택의 성격이 비극의 양상을 규정하기도 한다. 예컨대 오이디푸스는 아버지인 줄 모르고 라이오스를 살해할 때 격정과 오만으로 이성을 잃었고, 진상을 추적할 때도 성급한 성격으로 주변에 분노를 퍼부었다. 이처럼 작품은 운명의 틀 안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성격적 결함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그리고 있어, 오늘날까지도 “인간은 과연 운명을 개척하는 주체인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희생양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둘째, 정체성의 주제에서 이 작품은 “네 자신을 알라”는 격언을 극적으로 체현하고 있다. 오이디푸스는 처음에는 유능하고 정의로운 왕이자 문제를 해결하는 영웅으로 등장하지만, 진실을 좇는 여정 끝에 발견한 정체는 자신의 가장 큰 적이요 범죄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추적하던 대상이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되면서 한순간에 왕좌와 명예를 잃고 추방자 신세로 전락한다. 이 작품은 자기 탐구의 극단적 사례를 통해 인간 정체성의 모순과 복합성을 보여준다. 오이디푸스는 한편으로 부모를 살해하고 근친혼을 저지른 죄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운명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스스로 자신을 심판하여 눈을 멀게 하고 추방을 받아들임으로써 자기 정체성의 파괴를 응시한다. 이런 모습은 인간이 자기 내면의 어둠까지 직면해야 하는 가혹한 진실을 상징하며, 자기 인식의 대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셋째, 도덕적 책임의 측면에서 작품은 행위의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를 질문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범죄를 미리 알지 못했고 모든 것이 신탁과 우연의 산물로 벌어졌지만, 그는 진실을 안 뒤에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을 처벌하여 시력과 왕위를 포기하는 그의 행동은, 비록 운명이 정한 것이었다 해도 잘못의 결과를 자신이 떠안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윤리관, 즉 무지 중에 저질러진 죄악도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이 따른다는 관념과 맞닿아 있으며, 동시에 오이디푸스를 비극적 영웅의 위치에 올려놓는다. 그는 가해자이자 피해자이지만, 끝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공동체(테베)의 구원을 위해 희생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도덕적 선택은 관객에게 숭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비극이 단순한 운명 게임이 아니라 인간의 윤리적 위대함과 나약함을 동시에 조명하는 서사임을 보여준다.
요컨대 『오이디푸스 왕』은 짜임새 있는 플롯과 보편적 인간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인해 고대부터 현대까지 널리 연구되고 해석되어 온 걸작이다. 이 작품은 후세에 수많은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고, 특히 20세기 심리학의 거장 지그문트 프로이트에게 중요한 영감을 주었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착안해 인간 무의식의 어두운 면을 설명하고자 했으며, 그 결과물이 바로 유명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이론이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보여진 운명과 부모-자식의 얽힌 관계는 근대 심리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속에 원초적 욕망과 충동이 자리하며, 특히 아동기에는 부모를 향한 복합적 감정이 생긴다고 보았다. 그는 한 어린 남자아이가 성장 과정에서 겪는 보편적 심리 갈등에 고대 그리스의 주인공 이름을 빌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명명하였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3~6세경의 남자아이에게 나타나는 심리 현상으로,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에게 애정과 애착을 느껴 독차지하고 싶어하며, 반대로 아버지에게는 경쟁심과 적대감을 품는 상태를 뜻한다.
프로이트는 임상 연구를 통해 이러한 양가적 감정이 아동의 성격 형성과 초자아 발달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에서 아이는 결국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거세 불안 등)을 통해 욕망을 억압하고 동일시로 전환함으로써, 건강한 성격 발달과 사회 규범의 내면화를 이루게 된다. 다시 말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과정이 인간이 사회적 도덕적 존재로 서는 데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이러한 개념에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바로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 모티프를 얻었기 때문이다. 극중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했다는 극적 결과가, 비록 우연과 운명의 장난으로 빚어진 것이지만, 프로이트에게는 어린아이 마음속의 무의식적 소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예로 보였다. 다만 프로이트 이론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신화 속 오이디푸스의 상황은 차이가 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부모임을 모르고 범죄를 저질렀고, 어떤 성적 동기나 의도도 없었던 피해자에 가깝다. 반면 프로이트의 콤플렉스는 아이의 무의식에 자리한 욕망으로 의식적 동기와는 상관없이 작동하는 심리기제이다. 프로이트는 신화적 상징을 빌려 인간 보편의 심리를 설명하고자 했으나, 실제 오이디푸스 신화를 문학적으로 해석하면 이는 운명 비극이지 근친애 욕망의 이야기로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용어의 채택은 『오이디푸스 왕』이 지닌 상징적 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얽힌 운명, 무의식의 숨겨진 소망과 죄책감 등 비극이 품은 주제의식이 너무도 강렬했기에, 프로이트는 이를 인간 심리의 한 원형으로 삼았다. 이후 심리학과 문학평론 분야에서는 이 콤플렉스를 토대로 한 프로이트식 해석이 유행하며, 많은 작품들이 등장인물과 부모와의 관계를 분석하는 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개념이 원용되었다. 비록 현대의 심리학계에서는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해 비판과 수정이 이어졌지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여전히 인간 심층 심리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용어로 남아 있다. 이는 고대의 한 비극적 이야기가 인류의 자기 이해에 얼마나 오래도록 영감을 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태어날 때부터 저주에 가까운 신탁을 안고 시작한 인물로, 사주명리학적으로 보면 극단적인 비극 운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출생과 동시에 부모에 의해 버려져 양부모 밑에서 자라고, 성인이 되어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선 끝에 비극적 진실과 마주한다. 이러한 오이디푸스의 삶을 사주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우선 그의 사주팔자에 대단히 강렬한 살성(煞星)또는 흉운의 표시가 들어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살성 가운데서도 특히 겁살(劫殺) 이나 재살(災殺)같은 별이 강하게 작용한 사주라면, 태어날 때부터 액운이 따르고 가족과의 인연이 험난함을 뜻한다.
실제 오이디푸스는 부모로부터 목숨을 위협받고 가정이 파탄나는 운명을 맞았으니, 사주적으로 보자면 부모궁(宮)에 흉성이 들어와 부모덕이 박한 팔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명리학에서 부친은 일반적으로 재성(財星)에 해당하고 모친은 인성(印星)에 해당한다.
오이디푸스의 삶에서 아버지(라이오스)를 직접 죽이는 형국은, 그의 사주에서 재성이 극단적으로 충돌을 일으킨 모습으로 비유할 수 있다. 가령 재성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일간(日干, 자신)에 비해 과도하여 통제가 안 되는 경우, 재성의 의미인 부친또는 물질적인 소유와 갈등을 빚거나 그로 인해 화를 입을 수 있다.
오이디푸스는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길에서 만난 부친을 분노 속에 살해하고 말았는데, 이는 어쩌면 그의 팔자에 불의 기운(火氣) 이 왕성하여 성급하고 열정적인 면모가 강했던 탓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오행 중 불(火)은 “활동과 열정”을 의미하지만 지나치면 분노와 충동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오이디푸스는 바로 그런 불의 기질을 지닌 인물상으로 그려진다.
이는 극중에서 그가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왕으로서 정의감과 행동력을 갖추었지만, 동시에 급작스럽게 분노를 터뜨리고 경솔한 맹세를 하는 등 다소 과격한 면을 보인다. 이러한 양면성은 양의 목(木) 이나 양의 화(火)같은 강한 양(陽)의 기질로 해석될 수 있다.
목은 성장과 진취를 뜻하지만 고집과 일직선 성향도 주며, 화는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이지만 쉽게 주변을 태울 위험도 있다. 오이디푸스는 백성의 고통을 덜기 위해 분연히 문제 해결에 나서는 정의로운 군주(목·화의 긍정성)이지만, 그 열의와 자만이 지나쳐 스스로 파멸을 부르는 함정에 빠지고 만다(목·화의 부정성).
사주명리에서 상관(傷官) 이라는 십성은 자기표현 욕구와 반항 심리를 나타내는데, 오이디푸스에게서는 일종의 상관기질도 엿보인다. 그는 신탁(당시 사회의 최고 권위인 신탁과 신들)에 맞서 운명을 피하려 했고, 예언자 티레시아스의 충고를 거역하며 자신의 의지를 앞세운다. 이러한 태도는 권위와 충돌하는 상관성이 강한 인물의 모습이라 볼 수 있다. 상관이 강하면 총명하고 독창적이지만 권위(관성)를 극(剋)하기 때문에, 윗사람이나 규범과 마찰을 일으키곤 한다.
오이디푸스는 작품 속에서 신의 계시를 끝끝내 믿으려 하지 않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려는 오만을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비극의 방아쇠가 되었다. 이는 “상관견관”(傷官見官)이라고 하여, 상관이 관성을 보면 흉을 불러온다는 명리 격언과 상통한다. 오이디푸스의 경우 관성(官星) 은 왕이라는 지위와 부친을 상징하고, 상관적 행동은 그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는 젊은 패기로 길에서 만난 노인을 무시하고 싸움을 벌였고(왕권에 도전), 신탁의 내용을 spurn하며 자신의 길을 갔다(신적 권위에 도전). 이러한 상관의 작용 결과 그는 현실에서는 아버지와 왕을 죽이는 패륜을 범하게 되었으니, 사주적 상징으로 보면 상관이 관성을 다치게 한 극단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또한 주목할 부분은, 오이디푸스의 결혼과 가정에 얽힌 운명이다. 그는 자신도 모른 채 어머니와 결혼하여 자녀까지 두었는데, 이 패턴은 사주적으로 보면 육친 관계의 중첩과 전도(顚倒) 라는 비정상적인 구조로 설명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남성에게 아내는 재성(財星)으로, 어머니는 인성(印星)으로 분류된다.
정상적인 사주라면 재성과 인성은 각기 분리되어 제자리를 지니지만, 오이디푸스의 삶에서는 이 둘이 한 사람(이오카스테)으로 합쳐져버렸다. 이는 마치 사주팔자에서 인성과 재성이 심각하게 충돌하거나 혼재된 형태로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재성(아내)을 극하는 것은 관성(남자의 경우 직업이자 규율)인데, 인성(어머니)을 극하는 것은 재성(아들이 어머니를 거부하는 형태)이다. 오이디푸스의 경우 어머니를 아내로 맞았으니, 인성과 재성이 한 자리에 겹친 형국이다.
만약 어떤 남자의 사주에 인성과 재성이 같은 오행으로 겹쳐 있어 상호 구별이 흐릿하다면, 그는 부모와 배우자 사이에서 갈등하거나 두 관계가 얽혀 인생에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 현실에서는 드문 일이지만, 오이디푸스의 비극이 바로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그 대가로 모든 것을 잃고 말았으니, 사주적으로는 재성과 인성이 균형을 잃고 잘못 얽힌 운명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찌르고 유랑을 떠나는 것으로 끝나는 오이디프스의 결말은, 명리학적으로 보면 사주에 강렬한 화개살이나 천라지망같은 고독살이 작용한 결과일 수도 있다. 화개살은 “화려한 덮개”란 뜻처럼 한때 영예롭게 빛나지만 결국은 고독하다는 암시를 지니고, 천라지망(天羅地網)은 하늘과 땅의 그물이라는 뜻으로 운명의 올가미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을 의미한다. 오이디푸스는 바로 자신이 파헤친 진실이라는 그물에 걸려들어, 세상과 눈을 끊고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테베의 왕비 이오카스테(Jocasta)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남자의 어머니로서, 그러나 그 두 남자가 동일인이라는 운명의 기구함을 겪는 인물이다. 그녀는 남편 라이오스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으나 그 아이에게 내려진 저주를 두려워하여 갓난아이를 버렸고(즉 모성을 거스르는 선택을 함), 훗날 남편이 죽자 미처 알지 못한 채 자기 친아들인 오이디푸스와 재혼한다. 이 충격적 사건은 그녀를 비극의 정점에서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이오카스테의 캐릭터와 운명을 사주명리적으로 분석해 보면, 우선 그녀의 팔자에는 관성(官星) 과 식상(食傷) 의 관계가 매우 특이하게 얽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여성에게 관성(官星)은 남편을 상징하고, 식상(食傷)은 자식 또는 자기 표현을 상징한다.
일반적으로 한 여성의 사주에 관성이 지나치게 많거나(예: 정관 편관 여러 개) 또는 관성을 충극하는 상관(傷官)이 강하면, 결혼운이 순탄치 않거나 배우자와 사별·이혼 등의 우여곡절을 겪는다고 한다. 이오카스테의 경우 첫 남편인 라이오스와 사별한 후 다시 결혼한 것도 이러한 이중 배우자 운으로 볼 수 있다. 그녀의 팔자에 두 개의 관성(예컨대 정관과 편관)이 존재했다면 이는 재혼이나 복잡한 혼인 관계를 암시한다. 실제로 그녀는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라는 두 남자와 혼인 관계를 맺었다. 더구나 둘째 남편은 다름 아닌 자신의 식상(자식)이기도 하니, 이 상황은 사주적으로 아주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한 여성의 사주에서 식상(子)이 관성(夫) 자리에 들어앉는 형국이 있다면, 이는 극단적으로 자식이 남편을 대신하거나 자녀 문제로 인해 부부운이 망가지는운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오카스테는 실제로 아들을 버린 죄책감과 그 아들이 돌아와 남편이 된다는 운명의 장난 속에서 모성과 아내됨이 뒤섞인 채 파국을 맞았다. 그녀가 아기를 버린 행위는 명리적으로 보면 모성의 인성(印星)을 끊어낸 것이다. 인성(특히 정인正印)은 자식을 돌보고 사랑으로 품어주는 어머니의 별인데, 이 별을 거스르는 선택(살아있는 아이를 죽이려 한 것)은 평생 그녀의 팔자에 한(恨)으로 남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훗날 오이디푸스와의 재회에서 알게 모르게 작용했을 수 있다. 처음 오이디푸스가 테베에 와서 자신과 결혼했을 때 이오카스테는 어떤 불가사의한 모성적 연결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운명의 베일이 걷힐 때까지 그녀는 진실을 부정하며 합리화를 거듭한다. 이러한 그녀의 심리는 사주적으로 편인(偏印) 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편인은 편모(偏母), 즉 온전치 않은 모성이나 왜곡된 보호심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편인이 강한 사람은 직관적이고 비범한 면이 있지만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품기 쉽다.
이오카스테는 신탁을 끝끝내 믿지 않으려 하며(“아이가 죽었으니 예언은 이루어질 리 없다”고 자기합리화), 오이디푸스가 진실에 다가갈 때 오히려 진실을 알지 않으려는태도를 보인다. 이는 모순적이게도 그녀 내면 깊은 곳의 불안을 드러내는 것이었을 터인데, 편인의 에너지처럼 겉으로는 강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두려움과 혼란을 억누른 모습으로 볼 수 있다. 편인은 “남들이 이해 못 할 자기만의 세계관”을 형성하기도 하는데, 이오카스테는 끝까지 신탁을 부정하는 자기 믿음의 세계에 갇혀 결국 감당 못 할 진실 앞에 무너지고말았다.
또한 이오카스테의 사주에는 도화살(桃花煞)같은 애정 사건의 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도화살은 매혹적인 매력과 이로 인한 복잡한 애정사를 암시한다. 그녀가 아들과 근친혼을 하게 된 비극은 인륜을 벗어난 금지된 사랑이라는 점에서 도화살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오카스테는 아들이란 걸 모르고 오이디푸스를 남편으로 사랑했기에 죄의식 없이 행복을 누렸지만, 사실이 드러난 후 그녀는 자신의 명예와 양심이 완전히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이때 그녀를 덮친 것이 바로 망신살(亡身煞) 의 기운일 수 있다. 망신살은 말 그대로 사회적으로 큰 망신을 당하는 운으로, 주로 숨기고 싶던 치부가 드러나거나 체면을 구기는 사건을 가리킨다.
왕비 이오카스테는 자신이 낳은 아들과 혼인하여 자식을 두었다는 믿기 어려운 스캔들이 백일하에 드러났고, 그 충격과 수치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녀가 최후에 자결을 택한 데에는 이러한 망신살적인 상황이 한몫했을 것이다. 한편으로 그녀의 죽음은 명리학적으로 액살중 하나인 고절살또는 절명살의 가능성도 떠오른다. 이는 인생의 절정에서 갑작스런 파국이나 목숨을 끊는 운명을 뜻한다. 이오카스테는 한때 왕비로서 권세와 안정을 누렸으나, 말년에 들어 그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버린 것이다.
비극의 발단을 만든 테베의 옛 왕 라이오스(Laius)는, 사실상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신탁의 저주를 받은 장본인이다. 그는 젊은 시절 어떤 죄로 인해(신화에 따르면 필로피아스 왕자의 사건으로) 아이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는 신탁을 받았고, 그것을 막으려 한 행동이 오히려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라이오스는 친아들을 죽이려 했으며, 훗날 길에서 만난 아들에게 살해당했다. 이 인물의 운명을 명리적으로 살펴보면 부자(父子) 운의 극단적 충돌이라는 키워드가 두드러진다.
명리학에서 남자에게 자식은 관성(官星)이다. 이는 남성에게 있어서 자식이 자신의 권위를 이어가거나 제약하는 존재임을 뜻하기도 한다. 라이오스는 사내아이를 얻었지만 그 아이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운명을 듣자, 자신의 관성(아들) 을 제거하려 했다. 이는 사주적으로 보면 관성을 인정하지 않고 파극(破剋) 하려 한 것으로 상징된다. 관성은 원래 남자에게 직업적 성취나 이름을 빛내 줄 요소인데, 라이오스는 오히려 그 관성이 자기 파멸을 뜻하니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결국 그는 관성을 없애려 했으나 운명은 강하게 되돌아와, 관성이 더 폭력적인 형태(편관의 흉한 작용처럼)로 그를 덮쳤다.
편관(偏官), 즉 칠살(七殺)은 통제가 어려운 공격적인 힘을 의미하는데, 라이오스에게 아들 오이디푸스는 바로 통제 불능의 칠살과도 같은 존재였다. 편관은 잘 다루면 권력이 되지만 못 다루면 자신을 해치는 칼이 된다. 라이오스는 왕권을 지닌 인물이었지만, 자기 혈육이라는 칼날을 피하려다 그 칼에 쓰러진 셈이다. 이는 그의 팔자에 편관성이 강하게 작용했으나 그것을 제어할 용신을 찾지 못한 경우로 해석될 수 있다. 예컨대 어느 남자의 사주에 편관(庚金 같은 강한 살성)이 떠있고 일간은 약하며 인성(제어 장치)도 없으면, 그는 일생 큰 위험에 노출되거나 폭력 사건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라이오스 왕이 바로 그런 형국으로, 아들이라는 살성에 의해 목숨과 왕위를 잃었다고 볼 수 있다.
사주명리적으로 라이오스는 겁쟁이이자 비정(非情) 한 선택을 한 인물로 볼 수 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자 부정(父情) 을 저버린 점에서, 그의 인간적 약점이 드러난다. 이는 사주에서 비겁(比劫) 의 문제로 해석 가능하다. 비겁(比肩과 劫財)은 자기와 동류의 기운, 즉 자기 자신이나 형제를 뜻하는데, 라이오스에게는 자기 분신인 아들을 버린 행위가 곧 자기 자신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그의 사주에 겁재(劫財) 가 강했다면, 겁재는 재물을 빼앗고 극단적 결정을 몰고 오는 기운이라 그가 극단적 행동(자식 제거)을 선택한 배짱은 설명되지만 동시에 그로 인해 재성(가족과 왕권)이 망가지는 결과를 낳았을 수 있다. 겁재는 한편으로 인연을 끊는행동력도 주지만, 결국 남는 것은 후회와 손실이다. 라이오스는 왕으로서 영리하게 결단을 내린 듯했으나, 그것이 오히려 자신의 파멸을 불렀다는 아이러니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