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승부차기. 골키퍼와 상대팀 키커의 1:1 대결. 수비수들의 아무런 방해 없이 공을 찰 수 있는 키커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선수들이 골키퍼를 뚫어내고 골문을 여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실수는 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승부를 결정짓는 것도 실수 하나다.
어릴 적에 거의 모든 경기에 관심을 가지고 1994년 미국 월드컵의 경기들을 시청했다. 결승전에서 이탈리아와 브라질이 맞붙었다. 브라질의 두 공격수 호마리우와 베베토의 활약이 무척 인상적인 대회였다. 하지만 이탈리아에는 매 경기 골을 터뜨리면서 팀을 결승까지 이끌었던 꽁지머리 스타 로베르토 바조가 있었다. 화려한 공격력을 보여주는 브라질과 단단한 수비력을 가진 이탈리아의 싸움이었다.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가서야 승자와 패자를 가를 수 있었다. 그리고 승부를 결정지은 것은 로베르토 바조의 실축이었다. 1994년 월드컵은 그가 골문 위로 공을 날려 버린 후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는 장면으로 마무리되었다.
승부차기는 보통 중요한 경기에서 열린다. 두 팀이 맞붙어서 이긴 팀이 올라가고 진 팀은 떨어지는 토너먼트 방식의 대회에서 말이다. 경기장에서 본 경기 중 극적인 승부차기가 있었다. 2016년 FA컵(현재 코리아컵) 결승전이었다. 당시 결승전은 1차전과 2차전으로 나눠서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졌다. 1차전은 수원에서, 2차전은 서울에서 치러졌다.
1차전에서 2:1로 서울은 패배했고, 2차전에서 1점 차 이상의 승리가 필요했다. 그러나 경기는 잘 풀리지 않았고, 오히려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갔다. 골대 뒤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던 나는 시간이 아직 충분히 남아 있으니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브라질 출신의 공격수 아드리아노의 골로 1점 따라붙었지만, 그래도 부족했다. 한 골을 더 넣으면 경기 스코어는 2:1이 되고, 총합 스코어는 3:3이 되니까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수원삼성이 원하진 않는 상황이었다. 수원의 골문을 열기는 무척 어려웠고,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어떻게든 한 골을 넣어 주기를 기원하며 응원을 계속한 팬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FC서울 선수들도 포기하지 않았다. 교체로 들어간 윤승원이 추가 시간에 한 골을 넣은 것이었다. 1차전과 2차전 합계 3:3. 두 팀의 승부는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누구도 득점하지 못했다. 이제 남은 건 승부차기였다.
골키퍼와 상대팀 선수의 1:1 대결인 승부차기는 차는 쪽이 훨씬 유리하다. 왜냐하면 아무런 방해도 없는 상황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껏 찰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 도중에는 상대 팀 수비수들의 견제를 받지만, 승부차기는 아니다. 그래서 확률적으로 키커의 슛이 골망을 흔들 확률이 무척 높다.
하지만 로베르토 바조와 같은 세계적인 선수도 그런 상황에서 실수를 하듯이, 다른 선수들도 그럴 수 있다. 때로는 잘 찬 공이 골키퍼의 신들린 것 같은 선방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날의 승부차기는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의 실수도, 누군가의 환상적인 선방도 나오지 않았다. 공은 쉴 새 없이 그물을 흔들어 댔다. 서울이 넣고 나면 수원도 넣었다.
어느 순간 서울의 골문을 지키던 유상훈이 공을 차기 위해 공 뒤에 서 있었다. 서울의 11번째 키커였다. 그런데 그가 찬 공은 하필 골문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제 수원의 골키퍼 차례였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긴장할 법도 했지만, 그가 찬 공은 유상훈이 지키던 골문을 뚫었고, 경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우승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날아가 버렸다. 그 해, 기적처럼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전북현대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었다. 내친김에 또 하나의 우승컵을 바랐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FC서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날아가 버린 우승의 꿈. 마지막 순간에 공을 날려 버린 선수의 심정은 어떨까. 1994년에 바조가 그랬던 것처럼 유상훈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흐느끼고 있었다. 군입대를 앞두고 마지막 경기였고, 어떻게든 이기고 싶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슛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상대 골키퍼의 슛도 막지 못했다. 그렇게 우승의 기회는 날아가 버렸다. 어릴 적 즐겨봤던 ‘도전 골든벨’에서 마지막 도전자가 문제를 풀지 못하고 떨어지게 되었을 때, 주변에 친구들이 '괜찮아, 괜찮아 ‘라고 위로하던 것처럼, FC서울 서포터스들도 유상훈에게 그렇게 얘기해 주었다.
축구에서 승부차기란 승자와 패자를 나누기 위한 마지막 도구다. 전후반 45분씩 90분을 겨뤘지만, 승부를 내지 못하고, 이어서 연장전으로 전후반 15분씩 30분 동안 경기를 했지만 승부를 내지 못했을 때, 그때 마지막으로 승부차기를 한다. 다만 대회의 주최 측에서 정한 규칙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다.
승부차기는 두 팀이 5명씩 선수를 선발하여 차게 된다. 서로 번갈아 가면서 차게 한 후 많이 넣는 팀이 이긴다. 하지만 5명씩 돌아가면서 찼는데도 득점이 같을 경우, 그 외의 선수들이 번갈아 가면서 차게 된다. 보통 필드 플레이어들이 다 차고 나서야 골키퍼에게 순서가 간다. 사실 그렇게 골키퍼에게 까지 순서가 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그날은 골키퍼까지 가서야 승부가 갈렸다. 그만큼 두 팀이 치열하게 싸웠다는 얘기다. 승부차기는 치열함만큼 때로는 잔인하기도 하다. 승부차기가 끝나는 순간, 두 팀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순간의 실수로 패배에 영향을 끼쳤다고 해서 선수들이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끔 선수들이 팬들 앞에 와서 우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울컥하기도 한다. 울컥해서 말이 잘 나오질 않아 얘기는 못 했지만, 그런 선수들에게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괜찮아. 최선을 다했잖아. 울지 말고, 고개를 들어. 너희는 충분히 할 만큼 다 했고, 나는 너희가 자랑스러워.”
팬들은 안다. 비록 졌지만,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서, 온 힘을 다해서, 뛰고 또 뛰었다는 것을. 어떻게든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 그라운드 위에서 자신 안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는 것을. 때로는 그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뭉클해진다.
물론 이기면 좋다. 어찌 되었든 이기는 팀에겐 보상이 오기 때문이다. 더 높은 단계로, 16강에서 8강으로, 8강에서 4강으로 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높은 단계로 올라갈수록 우승이 가까워진다. 하지만 지는 팀에게는 그 뒤가 없다. 지는 것은 곧 탈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는 말이다. 최선을 다해서 사투를 벌인 선수들이 허탈하고 좌절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이 너무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축구는 계속되기 때문이다. 월드컵은 4년에 한 번씩 돌아온다. 그리고 매년마다 새로운 리그가 열리고, 토너먼트 형식의 컵대회가 열린다. 잘 준비된 팀과 선수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찾아갈 테니 이를 놓치지 않으면 된다. 네덜란드 출신의 명장 리누스 미헬스가 했던 ‘우승은 어제 내린 눈일 뿐이다’라는 말처럼 ‘패배’도 지나간 일 중 하나다. 오늘 졌다고 해서 내일도 지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 어떤 선수든 팀이든 큰 좌절 속에서도 이를 잘 딛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서 오늘은 졌지만 내일은 이길 수 있는 팀으로, 오늘은 실수했지만, 내일은 더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팬들은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언제나 박수를 쳐주고, 누구보다 더 속상할 선수들을 위로해 줬으면 좋겠다. 내 마음은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