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도중 급똥이 마렵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축구장에서는 다양한 일이 벌어진다. 축구장에서는 선수들이 경기를 하고, 관중석에서는 팬들이 경기를 본다. 단순하게 보면 이 두 가지 일이 벌어지는 곳이 축구장이지만, 축구장에서는 그 외에도 다양한 사건이 벌어진다.
경기 중 갑자기 선수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2020년 첼시FC와 토트넘 핫스퍼의 카라바오컵 경기. 토트넘 선수였던 에릭 다이어가 갑자기 라커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퇴장을 당했던 선수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지. 수비수였던 그가 자리를 비우자 팀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던 조세 무리뉴 감독은 그를 찾아 들어갔다. 에릭 다이어는 급한 일(!?)을 마치고 다시 경기장으로 들어왔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아랫배에서 신호가 올 때에는 정말 참기가 힘들다. 경기 중이었지만, 화장실로 급하게 뛰어갈 수밖에 없었던 에릭 다이어의 선택에 공감이 간다. 인간에게 있어서 생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에릭 다이어의 급똥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 그랬지' 하면서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힐스버러 참사. 아주 오래전. 내가 축구보다 야구에 더 관심이 많았던 1989년에 있었던 일이다. 힐스버러는 잉글랜드 셰필드시에서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의 FA컵 4강전 경기가 열렸다. 이 경기를 보기 위해서 수많은 인파들이 몰렸다고 한다. 하지만 경기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시작 5분 만에, 관중들이 압사하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러버풀의 팬들이 이 경기를 보기 위해서 단체로 버스를 대절하여 힐스버러 경기장으로 갔다. 하지만 교통체증으로 인해서 경기 시작 직전에서야 도착해서 경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와중에 관중석은 비좁았다. 1600명이 서서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곳에 무려 3200명이 몰렸던 것! 숨 막히는 상황이었다. 몰려드는 인파 속에서 가만히 있으면 압사당할 것 같았던 일부 팬들은 훌리건들의 경기장 난입을 막기 위해 설치했었던 보호 철망을 타고 올라갔다. 그 철망은 사람들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경기장은 곧 아수라장이 되었다. 축구 경기가 중단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영국의 축구팬이자 작가인 닉 혼비는 그의 자전적인 소설 <피버피치>에서 힐스버러 참사에 대해 근본적인 원인이 ‘너무 낡은 경기장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경기를 본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축구장들은 자가운전이 보편화되기 전, 심지어 대중교통에도 그다지 의존하지 않았던 시기에 지어진 것이라, 좁다란 거리와 주택가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다. 관중이 먼 곳에서도 찾아오기 시작한 후로 이삼십 년이 지났어도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이제 도심 외곽에다 주차장이 딸리고 안전 규정을 강화한 새 경기장을 지어야 할 때이다. (중략) 이곳에서는 수만 명의 팬들이 좁다랗고 구불구불한 지하 터널을 걸어 오르고, 골목길에 두 줄로 차를 세우고 있지만, 해당 기관은 상황이나 팬 층, 교통수단, 심지어 지은 지 50년이 넘어 초라해지기 시작한 축구장 자체의 상태마저,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듯이 예전과 똑같이 밀어붙이고 있다.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100년 동안 줄 곧 모두가 위태위태하게 지내오다가 힐스보로 사태가 터진 것이다.
<피버피치> 中
축구 경기 중에는 경기 외적인 요소로 인해서 경기가 중단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축구장에는 축구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그리고 더욱이 그 일이 사람의 안전과 생명에 대한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2021년 12월에 있었던 일이다. 버커리지 로드라는 경기장에서 열린 왓포드와 첼시의 프리미어리그 경기 도중이었다. 첼시의 왼쪽 측면 지역을 담당하는 마르코스 알론소는 전반 12분쯤 관중석에서 문제가 될 만한 상황이 발생했음을 인지했다. 경기를 보던 한 사람의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 그는 이를 주심에게 얘기했고, 주심은 경기를 보던 관중 한 명에게 심정지가 왔음을 알고 경기를 중단시키고, 의료진을 투입시켰다.
바로 심폐소생술이 진행되었고, 다행히도 안정을 찾은 축구 팬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나서야 경기는 다시 재개되었다. 마르코스 알론소의 빠른 판단이 아니었더라면 한 사람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었다.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는 사람의 생명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보는 한 명의 팬은 어쩌면 그 경기에 참여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수많은 모래알 중에 하나일 수도 있지만, 그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축구에서는 얘기해 준다.
축구장에서는 선수들은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팬들은 이를 즐기면 된다. 하지만 경기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안전에 대한 의식을 기본적으로 가져야만 한다. 시끄럽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에서는 주변에 있는 위험 요소를 간과하기 쉽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서 하나라도 위험이 될 수 있는 요소를 발견했다면, 이에 대해 조치를 취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연락해서 인지시켜야 한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이태원의 한 좁은 골목에 수많은 인원이 몰리면서 참사가 발생했다. 사진을 통해서 사건 현장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봤지만, 너무나 끔찍한 사건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로 인해서 악몽과 같은 밤이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치안도 좋은 나라이지 않은가. 밤에 그렇게 길거리를 돌아다니더라도 안전한 나라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더 돌이켜 보면 사고가 날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방심’이다. ‘무슨 문제가 있겠어’ 하는 안전불감증이 사고를 낸 것이다. 조금이라도 신경을 더 쓰고 노력했다면 사고는 미연에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전에도 안전불감증으로 인해서 나왔던 사고는 무척 많았다. 어린 시절 텔레비전으로 봤었던,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사건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잊을 수가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태원에서 일어난 사건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축구 선수들은 치열한 승패의 세계에 산다. 축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서 득점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선수들은 한 골을 넣기 위해서 상대 팀이 가지고 있는 공을 먼저 뺏어야만 한다. 이 공을 앞에 두고 두 팀의 선수들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선수들 간에 어깨로 밀치는 몸싸움은 기본이고, 조금만 틈을 보이면 깊은 태클이 들어온다.
아주 먼 별에 살고 있는 (축구를 전혀 모르는) 외계인이 이 장면을 본다면 기가 찰 것이다. 저 공이 뭐라고 저렇게 치열하게 싸우는 것인지. 하지만 나는 안다. 이들에게는 이 순간 공을 차지하고 상대팀의 골문에 시원하게 슛을 때려 넣는 것만큼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상대팀을 이겨야만 우리 팀이 올라갈 수 있는 승부의 세계에 통하는 법칙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런 세계에서도 ‘사람의 안전과 생명’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축구를 보면서 잘 알 수 있었다. 마르코스 알론소는 자신을 응원하는 팀의 팬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에게 경기 중단을 요청하고 그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얘기했다. 그리고 의료진이 투입되었고, 그 팬은 점차 안정을 되찾은 후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한다. 뛰어넘어야 하는 상대를 앞에 두고 있지만, 그 와중에서도 상대 선수를 챙기려 하는 마음, 그리고 주변 사람들 역시 챙기려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사건, 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아니 어떻게 저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이를 예방하고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비록 타인이지만, 그들이 안전해야 한다는 마음. 그리고 자신의 행동 하나가 큰 사건, 사고를 예방할 수도 있음을 알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경우 먼저 용기 있게 행동해야 한다. '나 하나쯤이야, 뭐 어때' 하는 방심이 보다 큰 사고를 부르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가 위험에 빠졌을 때에는 기꺼이 시간 내어서 도와주려는 마음, 착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이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축구장에서도, 우리 사회 안에서도.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내가 뛰어넘어야 할 경쟁상대라 하더라도, 나와 관계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모두 같은 '사회'를 살고 있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