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은 태어나지만, 거장은 만들어진다

손흥민과 모차르트의 뒤에는 아버지의 헌신이 있었다

by 장작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어린 나이에 수많은 곡을 작곡하고 사라진 비운의 천재.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의 이름은 세대와 세대를 거쳐서 전해져 내려왔고, 시대와 시대를 뛰어넘었다. 그의 음악은 전국에 있는 예술의 전당 같은 홀에서 연주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광고 및 영화 등 곳곳에서 그의 음악을 만날 수 있다. '이 곡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거 같은데?' 알고 보니 모차르트의 곡이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손흥민은 2025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선수다. 지난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나는 많은 기대를 했다. 조편성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괜찮은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나라의 전력도 좋지만, 우리나라도 그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는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이 있기 때문이다. 손흥민은 카타르 월드컵 전 시즌이었던 21-22 시즌에 리버풀의 모하메드 살라와 23골로 공동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는 아시아 출신의 선수로 최초이며, 당분간 그 어떤 다른 아시아 선수가 그렇게 득점왕을 차지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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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는 당시 음악계에 신동 중에 신동이었다. 3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5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를 나이에 피아노를 치고, 작곡을 했다니. 하지만 만약 거기서 끝났다면 모차르트는 지금과 같은 불후의 명성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35살의 나이에 죽을 때까지 무려 626개의 곡을 작곡했다. 작곡한 곡의 장르도 다양하다. 교향곡, 실내악, 협주곡, 오페라 등등. 기악과 성악 모두에 좋은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처럼 어린 나이에 수많은 곡을 작곡한 음악가는 없었다. 만약 그가 오랫동안 살아서 음악을 했다면, 어땠을까. 세상을 뒤덮은 그의 음악이 저 멀리 우주까지도 전해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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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은 우리나라 최고의 공격수다. 주로 좌측 측면에서 뛰기는 하지만, 양쪽 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기 때문에 우측 측면에서 뛰어도 자연스럽다. 게다가 역대 다른 우리나라 선수들보다 골을 잘 넣는다. 그의 가장 큰 강점은 슈팅에 있다.


그는 2008년에 FC서울 유스팀이었던 동북고등학교 축구부 소속이었는데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입단테스트 제의를 받았다. 당당히 그는 테스트에 통과했고, 함부르크 유소년 팀에 입단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로 10대 시절이었지만, 훌륭한 골 감각을 보여주었고, 팀원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고 많은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는 함부르크를 떠나 같은 분데스리가의 레버쿠젠이라는 팀을 거쳐서 잉글랜드 런던 지역에 있는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했다. 이적 첫 해에는 힘들기도 했지만, 그는 꾸준한 득점력을 보여주며 팀의 주축 선수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2023년 4월 7일, 프리미어리그 브라이튼과의 경기에서 그는 환상적인 감아차기 슛을 통해서 득점에 성공했다. 그 골은 그가 리그에서 기록한 100번째 골이었다. 아시아 출신으로는 첫 번째였고, 역대 34번째로 100골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100골이라는 기록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 데, 꾸준한 노력을 통해 해낸 손흥민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손흥민과 모차르트, 축구와 음악. 분야는 완전히 다르지만 그 두 사람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한 가지 있다. 바로 그것은 아버지의 헌신이다. 우리는 손흥민의 멋진 골을 감상하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지만, 그들이 좋은 성과를 내고,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아버지의 헌신적인 교육이 있었다.


축구가 하고 싶다는 손흥민의 말에 아버지 손웅정은 기본기를 갈고닦게 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소속된 학교의 축구팀에 들어가면서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소속된 학교가 전국 단위 대회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하게 되면, 좋은 제의가 들어오곤 한다.


많은 선수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땀을 흘리는 동안, 손흥민은 아버지의 지도를 받으며 기본기를 갈고닦았다. 그의 아버지는 손흥민에게 볼리프팅(공을 튀기며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는 기술)을 6년 동안 하게 했다. 필드 위에서 경기를 뛰는 대신 볼 다루는 기술을 연마하게 했다.


모차르트에게는 누나가 한 명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난네를 모차르트. 그녀 역시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아버지인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그녀의 목소리가 좋아서 3살 때부터 노래를 가르쳤다고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모차르트는 음악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었고, 누나를 뛰어넘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차르트에게는 든든한 아버지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음악가로서의 명성은 아들보다 못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그를 훌륭한 음악학자이자, 교육자로 평가한다. 당시 그가 썼던 <바이올린 연주법>은 유럽 최초의 바이올린 교육서일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에도 출간되어 있다.


손흥민은 당시 FC서울의 유소년 축구팀이었던 동북고에 입학했다. 하지만 축구협회에서 추진했던 유학프로그램으로 독일의 함부르크로 간 뒤, 함부르크 유소년 팀과 계약했다. 당시 그의 아버지 손웅정은 근처에 값싼 모텔에 머물면서 그가 팀 훈련 합류 전 몸풀기를 도와주었을 뿐만 아니라,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직접 요리까지 했다.


사실 축구 선수가 외국에 가게 되었다고 해서 성공하는 길이 쨍하고 열리는 것은 아니다. 팀 훈련에 참여하고, 주변 동료와 감독에게 인정받고, 경기를 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것. 어린 손흥민에게 독일 북부의 함부르크라는 도시는 낯설고도 적응하기 힘든 곳이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헌신적으로 손흥민이 적응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기에 손흥민은 함부르크에서부터 성공의 스토리를 써 내려갈 수 있었다.


모차르트는 어떻게 젊은 나이에도 600개가 넘는 곡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은 아버지와 함께 떠난 연주 여행에 있다. 어떻게 보면 모험이기도 하고, 도박이기도 했다. 뮌헨, 파리, 런던, 프랑크부르크, 로마, 나폴리, 밀라노 등 유럽의 주요 도시를 떠돌면서 모차르트는 당대의 유명인사들 앞에서 연주를 했다. 그리고 거기서 음악적인 영감을 얻어서 작곡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와 함께 한 연주 여행 덕분에 유명해지기도 했지만, 그가 이후 수많은 곡을 쓸 수 있었던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아버지가 없었다면 모차르트 혼자서 그 나이에 연주 여행을 떠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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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기 전에 우리는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부모의 역할이 유년기의 ‘성장’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모차르트도 손흥민도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에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들을 뒷받침해 준 아버지가 없었다면 그들이 크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신동은 태어나지만, 거장은 만들어진다. 음악 교육자로써 매우 뛰어났던 아버지를 뒀던 모차르트, 부상으로 프로축구로써 경력을 일찍 마쳤지만 기본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혹독하게 훈련시킨 아버지를 둔 손흥민. 이 두 명은 결국 두 명의 아버지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재능이 화려하게 꽃피진 않는다. 재능을 가진 이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결국 이들의 성장과 성공을 위해 도와줄 조력자가 필요하다. 가장 가까운 아버지의 코칭을 받을 수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프리미어리거 손흥민의 멋진 골을 볼 수 있고,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지난 5월 토트넘 핫스퍼는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우승했다. 팀의 주장인 손흥민은 프로 데뷔 15년 만에 처음으로 감격의 우승을 맛볼 수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2027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릴 아시안컵에서 손흥민이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우승의 희열을 느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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