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버지 박지성이 걸었던 길을 돌아보다
2005년은 매우 특별한 한 해였다. 2002년 월드컵에서 멋진 활약을 보여주고 히딩크 감독을 따라서 네덜란드의 명문구단 PSV 아인트호벤으로 팀을 옮겼던 박지성 선수가 우리나라 최초로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적하게 된 팀은 프리미어리그의 명문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우리나라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수많은 스타들이 뛰고 또 뛰었던 그 팀이라고?
그러나 박지성이 맨유의 유니폼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한편 세계적인 명문 구단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뛰게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매우 흥분하기도 했다. 나는 당시 군에서 제대 후 유럽축구에 대해 빠져들기 시작했을 때였다.
하지만 박지성이 입단할 때에도 우려 섞인 말들도 많았다. 팀의 여러 슈퍼스타들과 주전 경쟁이 어려워서 경기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과연 경기에는 얼마나 출전하게 될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지성은 맨유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2~3년 정도 뛰다가 다른 팀으로 옮길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팀에서 7년 동안 200경기 이상 출전하면서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되었다. 매 경기 선발 출전하지는 않았지만, 출전할 때마다 멋진 모습을 보여주면서 팀의 승리에 기여하곤 했다. 게다가 맨유에 있는 동안, 팀과 함께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가 유럽에서 남긴 발자취는 성공을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박지성에게도 선수 생활 초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박지성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그를 지도했던 감독들이었다.
첫 번째 감독은 2000년 당시 명지대학교 축구팀 소속이었던 김희태 감독이다. 어린 시절 차범근 축구상을 받으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박지성의 체격이 워낙 왜소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았다. 수원공고 축구팀에서 주전으로 뛰었으나, 팀이 고등학교 축구대회에서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으며, 박지성도 선수로써 주목받지는 못해서 자신이 뛸 팀을 찾기가 무척 어려웠다. 박지성은 고등학교 졸업 후 수원삼성블루윙즈나 관동대학교 축구팀에 입단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갈 곳이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명지대 축구팀 감독으로 있던 김희태 감독이 그를 도와주었다. 당시 명지대 축구는 선수 선발을 완료한 상태였지만, 테니스 부에 남아 있던 T.O를 이용하여 박지성을 명지대 축구팀에 선수로 등록하였다.
그렇게 소속팀이 없었다면 박지성에게도 무척 힘든 순간이 찾아왔을 것이다. 축구란 다른 팀원들과 하는 스포츠이기에 혼자서는 개인 훈련 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량을 유지하는 것이 무척 힘들게 마련이다. 당시 명지대 소속이었던 김희태 감독은 오갈 데 없는 박지성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두 번째 감독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었다. 2002년 월드컵 대표팀 명단을 보면서 나는 측면 공격수 중 한 자리는 이천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코너킥이나 프리킥 상황에서 정교한 킥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발도 빠르면서 기술도 좋았다. 그리고 박지성은 수비형 미드필더나 측면 수비수를 맡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성실하게 많이 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 선택은 박지성이었고, 2002년 월드컵에서 박지성이 준 충격은 엄청났다.
매 경기 선발 출전하며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특히 조별리그 3차전에서 포르투갈을 무너뜨리던 기가 막힌 골로 박지성은 승리를 이끌었다. 정말 오랫동안 기억되고 회자될만한 골이었다. 월드컵이 이후 6개월 뒤 2003년 1월 박지성은 당시 소속팀이었던 교토 퍼플상가와의 계약이 만료되었다. 그리고 히딩크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었던 네덜란드 1부 리그의 아인트호벤과 계약을 맺고 팀을 옮기게 된다. 그를 국가대표팀에서 잘 지도했던 감독이라 성공 가도가 열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는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팀에 합류하게 되었고, 부상에서 복귀한 후에도 기대했던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부진한 모습에 그가 공을 잡을 때마다 홈팬들의 야유를 들어야 했다. 유럽 생활 초기에 접하는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런 그를 히딩크 감독은 기다려줬다. 홈경기보다 원정 경기 위주로 출전시키며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박지성은 서서히 안에 있던 잠재력을 터뜨리면서 경기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팬들의 야유는 환호와 박수로 바뀌었다. 게다가 그를 위한 응원가도 생기게 되었다. 그는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가 된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고 하더라도, 모든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때로는 좋은 득점 기회를 놓치기도 하고, 왜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는 실수를 할 수도 있다. 박지성의 아인트호벤 입단 초기, 그는 공이 자신에게 오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그를 잘 알고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이 너무 많은 경기에 뛰면서 무릎에 문제가 생겼고 이로 인해 경기력에도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박지성을 최대한 배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과 함께 경쟁이 치열한 유럽 축구 판에서 살아남을 것인지, 아니면 한국이나 일본으로 돌아갈 것인지 결정하라고 몰아붙였다. 박지성의 선택은 생존과 경쟁이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없었다면 그가 적응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서서히 경기력을 끌어올린 그는 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성장했다. 매 경기 선발 출전하며 팀의 공격을 이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축구 인생에 전환점이 되는 경기가 열리게 되는데, 바로 2005년 4월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전 AC밀란과의 홈경기였다. 1차전에서 2:0으로 지는 바람에 불리한 위치에 있었던 에인트호벤은 AC밀란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경기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박지성은 선제골을 득점하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과감한 돌파에 이은 멋진 골이었다. 아마도 2002년 월드컵 포르투갈 전에서의 골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박지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면, 그 골로 유럽의 축구팬들과 여러 관계자들은 ‘박지성이라는 훌륭한 선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종 결과는 AC밀란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박지성의 모습은 유럽축구를 보는 여러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리고 잉글랜드, 이탈리아 등 여러 유명 클럽에서 PSV에인트호벤에 박지성에 대한 영입제의가 왔고, 박지성은 맨유를 선택했다. 5년 전 고등학교 졸업 후 뛰어야 할 팀을 찾지 못해서 헤매던 어느 소년은 이렇게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 중 하나인 맨유에서 뛰게 되었다. 박지성이 네덜란드에서의 힘든 시간을 거치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누구보다 히딩크 감독의 도움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감독이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 감독이었던 알렉스 퍼거슨이었다. 당시 맨유는 라이언 긱스,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여러 좋은 선수들이 뛰고 있었고, 공격진에 그 외에도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당시 감독이었던 알렉스 퍼거슨은 박지성을 중용했다. 그는 주로 측면 공격수로 뛰기도 했지만, 중앙에서 뛰기도 했다. 중요한 경기에서 상대 미드필더 중 패스 능력이 좋은 선수를 전담 마크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는 등 박지성은 맨유에서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 주었다.
박지성은 '심장이 두 개 있는 것 아니냐' 하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경기장 곳곳을 누비며 뛰어다녔다. 여러 전문가들은 박지성의 오프더볼(off the ball :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의 움직임)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면서 그의 부지런한 움직임 때문에 상대팀은 곤란에 빠지고, 맨유의 공격에는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알렉스 퍼거슨은 박지성의 그런 움직임을 잘 활용하였다.
그는 맨유에서 도전을 선택했고, 더 성장했다. 이 역시 그를 맨유로 이끌어주고 잘 지도해 준 알렉스 퍼거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능력을 믿어주고 아껴주는 감독이 있기에 그도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런 박지성의 성장을 보면서 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 해보게 되었다. 그 사람이 가진 재능, 성실함, 노력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 하나는 한 단계 레벨업 할 수 있게끔 좋은 기회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뛸 수 있는 판이 없다면 가지고 있는 재능도 불필요한 것이 된다. 명지대 축구부에서 올림픽 대표로, 그리고 국가 대표로 발탁되면서 기회를 잘 살려 실력을 인정받은 박지성에게는 이렇게 좋은 기회가 함께 주어졌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축구 선수는 감독을 잘 만나야만 한다. 자신의 장단점을 알고, 장점을 살려주고, 단점을 가려줄 수 있게 하며 선수가 잘 뛸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주는 감독을 만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점에서 박지성이 김희태, 히딩크, 퍼거슨 감독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인생을 혼자서 살 수 없다. 그리고 혼자서 스스로 성장할 수 없다. 내가 능력이 뛰어나서, 내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다 이뤄질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어느 날, 박지성이 만났던 세 명의 감독과 같은 분을 만난다면 그를 믿고 한번 따라보고 싶다.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고, 더 성장하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