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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은 무서운겁니다

빚 1억 5천을 가진 30대의 되새김질

by 과니 Feb 18. 2025

"너 집 있어? 차 있어?" 라는, 그 결혼정보회사에서 나올 법한 말에 나는 당당하게 모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엄마는 내 명의로 21년도 9월엔가 집을 샀고, 22년도 8월에는 내 명의로 차를 받았다. 물론 집은 빌라고 차는 중고차지만 그게 어디람. 서른 살에 집과 차 모두 가지게 된 사람이 주변에 있기는 어려우니까. 물론 이래놓고 "돈은 얼마나 있대?"라는 질문을 하면 그때부터는 할 말이 없어진다. 부채도 자산이라면 예, 한 1억 6천 정도 있습니다?


21년도 부동산 불장일때 내 명의로 구입된 빌라는 22년도가 되자마자 빠르게 공시가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호황기에서나 혜택을 받고 있던 거지 빌라는 애초에 쉬이 집값이 오르지 않는 유형 중에 하나였고, 집값이 오르기는 커녕 내려가기 시작하자 23년도가 되었을때 엄마의 발등엔 불이 떨어졌다. 사실상 갭투자로 세입자에게 받은 2억 6천을 전세금을 집을 사는데 쓴 거였고, 막상 23년도가 되어서 전세금을 돌려줘야 하니까 주택담보대출은 아무리 긁어봐야 1억 5천이 나왔거든. 4대보험이 가입되어있는 제대로된 직장에 다시 취업을 해야지만 주택담보대출이 나오는지라, 나는 하던 음식점 일을 그만두지는 못하고 낮에는 회사, 저녁에는 주방으로 출근을 했다. 내 대출과 엄마, 누나의 영끌이 어떻게 되긴 되어서, 결국 세입자는 계약 만기일날에 갈등 없이 무사히 돌려보냈다. 24년이 왔을때, 집값은 한번 더 내려갔다. 25년. 앞으로의 시국이 어떻게 될 진 모르겠지만 지금 현 상황으로 봤을때는 핏빛에 가까운 적신호다. 


이전 세입자가 나가고 나서 귀국한 누나와 매형이 잠시 내 집에 들어가 1년 정도를 살았다. 그 동안은 누나가 은행에서 나오는 이자를 대신 내줬다. 그리고 작년 10월 23일, 누나와 매형이 가고 나서 나는 한번도 들어와 산 적은 없었던 내 집에 들어갔다. 그때 들었던 생각이라면,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랄까.


자기 이름으로 된 집으로 독립한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감격스러운 일일지 몰라도 내게는 그리 딱히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사볼까 했던 엄마와 무조건 오른다고 맞장구를 치던 아빠,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어서 알아서 하라고 했던 내가 만들어낸 이 환장의 공간은 가만히만 있어도 월 이자가 70만원에 육박했다. 그리고 내가 지내기 시작하는 순간 당연히 누나의 지원은 끊겼고, 내가 지내는 이상 공과금도 나의 몫이었다. 11월에 가까스로 재취업해서 기본급을 받아가는 사람에게 숨만 쉬어도 100만원의 마이너스니, 허리띠를 졸라매는게 필요했다.


그런데 집이란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안그래도 이렇다 할 집이 없이 좀 이곳저곳 거처를 옮겨가면서 자던 내가 몸 편히 뉘어 잘 수 있는 곳이 생기자 게으름이 무섭게도 왔다. 혼자서 티비를 봐도, 뭘 먹고 그대로 내비둬도, 입던 옷을 벗어서 대충 던져둬도 누구도 뭐라 그러지 않는 생활이라니! 2인용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대충 채널을 돌리다가 옆 선반에 까놓은 과자를 오작오작 씹어먹어도 눈치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그렇게 며칠을 지낸 것 같다가 달력을 봤더니 두 달이 지나있었다. 이게 말인가.


본래의 계획은 열심히 집을 치우고 꾸민 다음에 단기임대나 에어비앤비를 놓은 뒤 작은 수익이라도 걷겠다는 포부였는데, 열심히 닦고 치우고 가구를 사고 발품팔아서 중고로 들여놓고 광내놓고 이쁘게 해놓으니 남 주기가 싫어졌다. 세입자 하나 잘못 들어오면 더러워지는건 순식간일텐데 그냥 대충 정리하고 낼까 싶다가, 그냥 좀 쪼들리더라도 혼자 살아볼까 하다가, 그래도 이런 경험이 어디있냐고 생각하면서 다시 청소를 하다가, 전기장판을 틀어놓고 침대 위에서 녹아있는걸 몇 번 반복하고 나서 든 생각은 두가지였다.


이래서 다들 내 집 내 집 하는거구나.

그런데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내 집이 생긴다는건, 생각보다 위험한 거구나.


왜,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지 다른거 먹었다가는 죽는다는 말처럼, 내 처지는 아직 집과 차는 무슨 열심히 저축해가면서 헐레벌떡 출근하고 열심히 일하고 다시 돌아와 다른 생산적인 것들을 찾아야 하는게 맞았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생겨난 나의 보금자리가 나를 일이라는게 끝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잉여인간을 만들어버린게 아닌가 싶은거다. 편하고 좋다면서 냅다 앂어먹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솔잎이 아니라 갈잎이었던 거지. 서서히 죽어가는지도 모르고.


며칠 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명령이 아줌마에게서 연락 왔는데, 손님이 2억 7천 부른다고 하거든? 그냥 파는게 어떨까? 빌라는 잘 안나가니까." 고민해보겠다고 답해보고 나서는 한참을 아무것도 못한 채 집에서 서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개인 물품이 가득 올라가있는 책상, 아직 설거지 되지 못한 그릇들, 깨끗하게 닦았지만 다시 쌓인 기름때들이 눈에 보였고 냉장고는 비워지는게 아니라 채워지는 중이었다. 세달 전 즈음 집과 빚을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신경 끄고 나머지 부동산이나 잘 처분해보라고 엄마에게 말해놓고 나도 내 스스로 무언가를 놓아버린 사람처럼 있었던 거지. 혼자 사는 것도 준비가 필요한 건데.


그 바로 다음날에 엄마에게 3월달까지만 일단 있어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때도 내가 아무것도 못하면 무능력한거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다시 집을 치웠다. 개인 물품들을 분류하고, 단프라 박스를 사서는 조미료와 말린 식재료 같은것들, 안 쓰는 그릇들을 죄다 집어넣었다. 화장실을 단기임대용으로 예쁘게 찍는데만 하루 웬종일이 걸렸다. 일주일 가까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는 끝나지 않았다. 청소라는건 막상 하면 끝이 없다는 엄마의 말을 실감했고, 아직도 집은 치우는 중이다. 


깨끗해질수록 남에게 주기 싫어짐에도, 생각 하나를 더 집어넣기로 했다. 내 명의의 집은 맞지만, 내가 살곳은 아니라고. 혹여나 정말로 단기임대도, 숙박도 안되어서 내놓아야 되는 처지가 온다면 그때 생각할 일이지 지금 당장은 엄마 사무실에다가 다시 라꾸라꾸를 피고 자더라도 남에게 임대해보는 일을 내가 내 손으로 하자고. 어차피 집이 팔려서 나오는거랑 임대를 두고 나오는거 둘 다 나는 결국 집을 나오는게 맞으니까. 


오늘도 반차를 쓰고 회사를 일찍 나갔다가, 후배들을 만나고 설겁게 근황을 묻고서는, 돌아가는 길에 샴푸를 채울 공병을 다이소에서 샀다. 베란다의 호스를 어떻게 재배열할지 고민중이다. 작은방에 책상을 넣을지 침대를 추가로 더 넣을지도 고민중이다. 빚더미가 대부분임에도 내가 가지고 있는 자산을 어떻게 굴려야 하는지를 쉬지 않고 생각해야지, 내가 좀 더 온전한 사람이 되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제 다시 청소하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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