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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야 Apr 23. 2022

2. 소매치기 천국 스페인?

[스페인, 가슴이 이끄는 곳] 1부. 말라가 교환학생 이야기

[스페인, 가슴이 이끄는 곳]

1부 - 말라가 교환학생 이야기

 1-2. 소매치기 천국 스페인?


*BGM:: Let's Fall in Love - Annette Hanshaw*






뜨거운 스페인의 여름 햇살 덕분인지 나는 시차 적응은커녕 한국에서 보다 더 이른 시간에 잠에서 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페인에서의 첫 '멘붕'을 맞이했다. 그것은 바로 지난밤 탔던 공항 택시 뒷좌석에 내 에코백을 두고 내렸다는 사실이다. 뇌가 정지되는 기분이었다. "아... 꿈 아니지 이거?" 혼잣말을 수없이 되뇌어 보았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에코백은 "응 아니야."를 내게 외치는 것 같았다. 불행 중 다행히도 에코백 안에는 스페인어 책, 색조 화장품 컬렉션, 봉고데기, 그리고 내 스페인 '핵인싸' 라이프를 책임질 블루투스 마이크만 있었다. 그러나 물건에 애착이 강한 나는 불안과 초조함에 휩싸였고 말라가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애써 마음을 다스리고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게스트하우스의 프론트 직원에게 내 상황을 설명했다. 직원은 친절하게 택시 회사에 전화해주었다. 수화기 너머 한참 동안의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 대화가 끝나고, 직원은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다행이다! 택시 기사님이 네 에코백을 보관하고 있으시대. 내일 아침에 숙소에 직접 들러 가져다주신다고 하니 안심해도 돼."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그 누가 되었든 감사합니다. 사실 내가 에코백을 택시에 두고 내린 것보다 찾았다는 것이 더 믿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스페인은 소매치기로 악명 높은 나라가 아닌가. 오죽하면 주변 지인들이 떠나기 전에 소매치기 조심하라며 신신당부를 했었다. 그런데 택시에 깜빡하고 두고 내린 물건을 찾았다고? 이때부터 스페인에 대한 내 호감도는 무한대로 상승했다.


그리고 다음날, 택시 기사 아저씨는 약속한 시간에 내 에코백을 가져다주셨다. 들어보니 한 손님이 뒷좌석에 놓인 에코백을 발견하고 기사님께 전달한 것이라고 한다. 별 볼 일 없는 에코백에다가 알아먹지 못하는 한글로 쓰인 책과 화장품들만 안에 가득해서였을까...? 아무튼 그렇게 나는 무사히 에코백을 되찾았고, 말라가 만세를 외쳤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아침 일찍부터 거리로 향했다. 오늘은 정통 스페인식 아침 식사를 먹어 봐야지!라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한 카페테리아에 도착했다. 뜨거운 태양을 사랑하는 스페인 사람들은 카페, 식당, 바(bar), 그 어떤 곳이든 무조건 야외 테라스를 선호한다. 그래서 늘 야외 테라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내부 테이블은 한산하다.


 스페인 사람 못지않게 햇살을 좋아하는 나도 그들을 따라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아침식사 세트 메뉴를 주문했다. 스페인 사람들이 아침으로 즐겨먹는 메뉴 중 하나인 하몽 보까디요와 착즙 오렌지주스, 그리고 에스프레소. 하몽 보까디요는 바게트 빵 안에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듬뿍 뿌린 뒤 저렴한 하몽을 넣어 만든 샌드위치이다.


 해외여행을 가면 무조건 그 나라 음식을 먹는 나이지만, 하몽은 간혹 비리거나 너무 짜서 한국인에게 호불호가 강한 음식이라 하여 조금 겁이 났으나 일단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런데 웬걸! 적당히 짭조름하면서 고소한 돼지고기의 풍미가 느껴지고, 산뜻한 올리브 오일과 바게트가 하몽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그리고선 달달한 오렌지 주스를 한 입 마시면 완벽한 단짠이 아닐 수 없다. 이게 바로 스페인의 맛이구나!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니 주변 풍경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다.







 말라가는 아직 한국에서 유명한 스페인 관광지는 아니지만, Costa del sol(태양의 해안)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어, 눈부신 지중해 바다와 태양을 만끽할 수 있는 유럽의 대표 휴양지이자 은퇴 후 살고 싶은 도시로 손꼽힌다. 명성답게 그 풍경은 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천국이 있다면 여기일까 싶었다. 무엇보다 간절히 원했던 도시에 오로지 내 노력으로 왔다는 사실에 더욱 가슴이 벅차올랐다.


 한참을 걷다가 말라가에서 가장 유명한 '말라게따 해변'에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처음으로 타보는 대중교통이라 떨리는 마음으로.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나를 또 한 번 넋 놓게 만들었다. 내가 꽃보다 좋아하는 야쟈수가 끝없이 펼쳐졌다. 그런데 아뿔싸! 멍하니 밖을 바라보다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놓쳐 버렸다. 당황한 나는 옆에 계신 할아버지께 길을 물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짧은 내 스페인어로는 완벽히 이해할 수 없었고, 이를 눈치챈 할아버지는 갑자기 큰 목소리로 "영어 할 줄 아는 사람 없나요?"라고 외치셨다. 그러더니 또 다른 한 할아버지가 손을 들며 다가와 내게 영어로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고 설명해 주셨다. 그 모습이 정겨우면서도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말라가는 이렇다. 적어도 내가  말라가의 첫인상은 순박하고 따스하며 정이 넘쳤다. 앞으로 펼쳐질 이곳에서의 6개월이 더욱 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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