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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섯맘 Aug 13. 2024

퇴원

또 다른 여정

"안녕하세요?? 이제 환자처럼 안보이시네요~!"

"아~그래요? 감사합니다~!"

입원실에서 침상을 정리하고 있었던 그녀는 복도에 지나가는 나를  지나칠 수 있었지만, 환한 미소로  따뜻한 인사말을 건넸다. 나는 그녀의 인사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드디어 퇴원을 하는 날이다.

퇴원을 하려고 하니 8일간의 병원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물건을 하나둘씩 정리하고 있노라니 나의 생각도 차곡차곡 정리되는 듯했다.

수술 전 휴가 같았던 이틀간의 시간, 수술, 수술 후의 시간들...

수술을 앞둔 전날, 나는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었다. 큰 숨을 고르고 고르며 쉼의 시간을 가질 무렵, 1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급한 나머지 글 목차만 작성해서 브런치팀에 보냈었다. 심사 자료가 적어 모시지 못했다는 정중한 알림은 다시 한번 도전할 수 있는 용기도 주었다. 그렇게 알림을 받은 지 1년이 지나고서야 나는 다시 글을 써 내려갔다. 글이 완성될 무렵, 간호사님이 관장약을 가져왔다. 간호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약 먹는 시간을 30분 늦추었다. 나는 작성한 글을 마무리하고 브런치팀에 보냈다. 수술하기 전 좋은 소식이 오길 내심 기대하며, 이 소식이 수술 전  '희망의 신호탄'이 되길 소망했다.

나는 관장약을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가 흘렀을까...

 'b'라는 알림이 떴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문구는 수술은 앞둔 나에게 큰 응원과 힘이 되었다.

 수술 후에도 틈틈이 글을 남겨야겠다는 나의 다짐과는 달리, 수술한 지 1년이 가까워질 무렵에서야 다시 글을 쓸 수 있었다.





퇴원 준비를 마친 나는 비어있는 침상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고, 함께 입원했던 환자분들께 퇴원 인사를 드렸다. 그렇게 애태웠던 검사도, 수술도 무사히 마치고 퇴원하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신장을 떼어낸 , 뱃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통증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렇게 기분 좋지 않은 통증은, 4년 전 통증의 원인을 찾아 헤맸던 유방외과와 신경과를 전전했던 그때 당시를 떠올려 주었다. 4년 전, 알 수 없는 바늘 통증(바늘로 몸을 찌르는 듯한 통증)은 가슴 부위에 집중됐고, 머리끝, 배, 전신을 돌며 통증이 지속됐다. 처음 느껴본 통증이었다. 누군가 내 몸에 바늘을 찌르듯, 통증으로 인해 나는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어찌 보면 이 통증으로 인해 가슴에 혹도 발견할 수 있었고, 손발 저림 증상으로 인해 신경과를 가기도 했다. 나는 여러 검사를 진행한 끝에 신경과적인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지만 류마티스 증상일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 소견에 따라 류마티스 내과를 방문하게 되었다. 류마티스 내과가 있는지 조차 몰랐던 나는 여러 검사를 한 끝에  '희귀 난치질환'을 진단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병명을 이야기해 주었다. 처음 들어본 생소한  병명에 당황을 하며 의사 선생님께 병명을 돼 물었을 때, 그분은 메모지에 큰 글씨로 적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신장을 떼어낸 곳, 그 부위의 통증은 그때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통증은 불규칙적이면서도 왼쪽 깊은 곳에서 찌르는듯한 통증이 느껴졌으며, 길고 짧은 통증이  반복됐다.


불행하게도 통증은 퇴원 후,  더 심해졌다...





"제수씨! 퇴원하는 날 제가 병원에 갈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 택시 타고 집에 가면 되니깐 멀리서 오지 마세요! 진짜 괜찮아요"

퇴원 날 아주버님이 병원에 오시겠다는 것을 만류하고 나는 택시를 타고 집에 가기로 했다.

남편과 나는 퇴원 수속을 마쳤다.

쓸쓸해 보이는 남편을 뒤로하고 나 홀로 퇴원을 하였다.

양손에 든 짐이 생각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짐을 들고 갈 때마다 복대로 감은 복부의 통증도 강하게 느껴졌다. 택시 승강장까지 쉽게 갈 거라고 예상했던 나의 생각이 빗나갔다.  

 길이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는지...

나는 가방을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야속하게도 하늘에는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저만치 승강장이 보였다.

짐을 들었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길을 건너는데 아주머니게서 다가오시더니 승강장까지 짐을 들어주셨다.

아주머님의 친절한 손길에 거듭 감사함을 표현했다.

비는 내렸지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날이었다.

그날의 그 손길을 기억하며, 시야를 넓혀 주변을 돌아보아야겠다 다짐을 해본다.




택시는 지하 주차장에 들어섰고, 저만치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어머님의 모습이 보였다.

어머님은 고생했다며 나를 안아주시며 내 곁에 있던 묵직한 짐도 들어주셨다. 어머님 손에 잡힌 짐이 가볍게만 보였다.


드디어 나는 그렇게 보고 싶었던 아이들을 만났다.

"얘들아~ 엄마 배 조심조심!! 수술한 부위가 아물지 않아서 조심해야 해!"

나를 에워싼 아이들을 한 명씩 안아주었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부재를 크게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얘들아~! 엄마 아빠 보고 싶지 않았어?"

"할머니가 계셔서 그래도 괜찮았어요! 시간도 빨리 지나간 것 같아요."

무심하게 내뱉는 막내 쌍둥이의 말에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엄마, 아빠 수술은 잘 됐는지... 걱정했어요."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던 셋째는 엄마, 아빠를  걱정하면서 마음고생을 한 것 같다.

속 깊은 셋째를 안아주었다.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걱정했던 나와  다르게 어머님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잘 지내준 아이들이 고맙다.

하나가 아닌, 둘도 아닌...

다섯아이가 서로 의지하며 지냈을  지난 날을 떠올려본다.


실로 가족이 주는 '힘'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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