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동윤 Jul 11. 2022

위험한 새벽

나는 잠을  잔다. 잠깐. 잘이라는 단어에는  가지 의미가 있다. 이를테면  들어의 잘은 제대로라는 뜻이고  지내의 잘은 안녕히, 잘 한다의 잘은 우수하다는 말이다. 나는 잠을  잔다. 지금의 잘은 손쉽게,라는 뜻이다. 20 넘게 잘 때만 2 침대 룸메이트로 동침하는  동생은 나를 부러워한다. "형은 눈만 감으면 "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드는 밤이 있다. 나는  밤을 위험한 새벽이라 부른다. 생각이 물꼬를 트는 날에는 눈을 감아도 잠에 이르지 못한다. 양을 세어도, 언젠가 죽는 연기를 위해 연습한 호흡을 써봐도, 도무지 잠들  없는 밤이다. 위험한 새벽은 이야기를 푸는 밤이다뱀처럼 똬리  이야기가  안에서 요동친다. 모른 채 하면 이곳저곳을 깨문다. 토악질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다. 역한 덩어리는 분화를 앞둔 화산처럼 내게 성을 낸다. 제발 뱉어 달라고.


생각 블록을 글로 달래는 법을 익히며 위험한 새벽 나를 찾아온 당신의 존재를 바로 볼 수 있었다. 당신은 외침처럼 형상이 없다. 산 정상에 올라 마지막 남은 숨을 쥐어짜 아성을 토하듯 불완전하다. 어떤 날은 생각이 극에 다다라 뿜어내는 해소가 필요하다. 임계치를 넘긴 물은 끓어 기화하고 한계치를 넘긴 근육은 찢어져야 새 살이 돋는다. 생각도 마찬가지 모양을 바꿔야 한다. 


가슴속에는 개미굴처럼 많은 생각 공간이 있다. 삶을 경유하며 품은 생각은 자연스럽게 주머니처럼 생긴 생각 공간으로 들어가 쌓인다. 주머니 안에 쌓인 생각들이 넘쳐 범람하는 날에는 그것을 막지 못한다. 


홍수로 맨홀뚜껑이 터져 생각이 도약하는 밤. 넘쳐흘러 고체로 굳어진 생각들은 레고 블록처럼 조립된다. 잠을 자는 동안 나는 그것을 모아 블록 놀이를 하는데 남들은 그걸 꿈이라 부른다. 블록을 쌓아 조각이나 건물 따위를 만들고 나서야 진짜 잠에 들 수 있다. 위험한 새벽에는 조립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쉽게 잠들 수 없다. 그래서 위험하다.


범람하는 생각은 대부분 달리는 데 집중하려 당신이 일부러 덮어둔 마음이다. 살피지 않고 겨를 없다 넘겨짚어 등한시한 심상이다. 우리네 몸은 자정 작용이 있어 마음을 건강히 유지하려 늘 애쓴다. 어른은 아이와 어른을 구분 지으려 쓰는 단어다. 아이가 자라면 아이를 어른이라 부른다. 속된 말로 애어른이 있고 어른이가 있다. 잠에 들려면 익숙하든 익숙지 않든 블록을 쌓아야 한다. 


생각 블록은 동물처럼 살아 숨 쉰다. 세상이 무너질 듯 악을 쓰다가 얄밉게 웃는 철부지 아이처럼 그들에게 필요한 건 관심과 애정이다. 블록 놀이는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다. 그들은 어린애와 같아서 스스로 지쳐 평화를 찾을 때까지 찬찬히 지켜봐야 한다. 어른은 아이로부터 배운다. 인내의 결실은 달콤하다. 울던 아이가 웃으면 아이의 엄마도 따라 웃는다. 아이의 마음이 진정될 때 우리의 마음도 누그러진다. 어른은 아이로부터 배운다. 아이를 잘 다루는 사람이 잠을 잘 잔다.


잠 못 드는 밤에 나는 글을 쓴다. 블록 쌓기에 유용한 방법으로 여러 매체가 있다. 음악이 있고, 연기가 있고, 그림과 글 또 춤이 있다. 내게 편한 건 글이다. 위험한 새벽이 오지 않아도 나는 글을 쓴다. 밤이 오지 않아도 블록을 해체해 백지 위에 문자로 나열하고 단어와 문장을 자주 고치곤 한다. 소리 지르고 싶은 날에도 글을 쓴다. 그때는 구조나 설계 따위 제쳐 두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글을 쓴다. 글은 때때로 생각지 못한 곳으로 나를 데려간다. 나는 쓸만한 낚싯대를 챙겨 여행을 떠난다. 여행의 끝에 바다가 있다. 위험한 새벽에 태어난 글은 수면 위로 튀어 오른 활어 같아서. 활어를 낚아 회를 떠먹는데 잠이 온다. 동생은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잘 잔다 말한다. 동생에게 말해줘야지. 글은 내가 잠을 잘 자는 이유다.



작가의 이전글 플레이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