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서는 열(熱)이 법(法)을 대신한다. 그것이 종교라는 것이다.
인도 여행기의 바이블이라는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 방랑>에서 인도의 종교는 곧 법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말하는 종교란 힌두교를 의미하는 걸까? 아시다시피 인도에서 탄생된 종교는 힌두교뿐만이 아니다. 기원전 고타마 싯다르타가 수행한 루트를 따라 불교가 생겨났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불교보다 더 엄격한 교리의 자이나교가 탄생했으며, 기원후에는 힌두교와 이슬람교 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각각의 장점만을 조합시킨 시크교가 창시되었다. 동남아시아 전체를 합친 것과 같은 넓은 땅덩어리에서 중국보다 고작 1억이 모자란 12억의 인구가 살고 있고, 무려 18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약 4억 8천만의 신들이 존재하는 나라 인도. 여기서는 유일신의 개념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도에서 제일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가 바로 '너의 신은 누구냐'는 것이다. 단 한 번도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무교라고 했는데, 다신교가 생활 깊숙이 뿌리 박힌 그들에게 무교란 이해 불가한 것이었다. 힌두교가 아니더라도 불교든 이슬람교든 기독교든, 하다 못해 조상신이든 뭐라도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논리였다. 처음에는 그들이 뜻하는 게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종교인지 아니면 보편적인 윤리를 말하는 것인지 헷갈렸는데, 대화를 하면 할수록 그들에게 신은 종교가 아니라 그저 생활 그 자체였음을 깨달았다. 이에 대해 후지와라 신야는 그의 여행기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힌두교를 다른 면에서 해석할 때가 찾아왔다. 나는 이 무거운 종교가 다른 종교처럼 세계로 퍼져 나가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말이나 문자로 옮길 수 없는 것이다. 지평선을 보는 것,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것, 강물이 흐르듯 언제나 움직이는 것, 여행, 그 모든 것이 힌두교다.
그의 말대로 힌두교는 참으로 무거웠다. 저마다 다양한 모양의 신상이 넘쳐나는 거리도, 그 신상에서 파생된 소름 끼치도록 화려한 굿즈도, 이제는 고어가 되어버린 산스크리트어로 된 만트라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유행가처럼 읊조리는 사람들도 모두 한결같이 무거움으로 다가왔다. 그 무게감이 그들을 힌두교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아주 오랫동안 눌러온 느낌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이번 생에 주어진 환경(카스트)을 인정하고 불평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구시대의 인습이 만들어낸 이 불평등한 계급 제도를 없애기 위해 인도 정부는 1947년 독립 이후 헌법에서 아예 카스트 제도의 폐지를 언급했다. 하지만 인류 문명의 발생과 유구한 역사가 존재하는 이 오래된 땅에서 힌두교와 함께 고착되어온 신분 제도가 하루아침에 없어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높은 신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의 카스트를 자랑스럽게 오픈한다.
여행 중 바도다라(Vadodara)라는 공업 도시에 사는 브라만 가족의 집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카스트 최고 등급인 그들은 매일 5번씩 쉬지 않고 푸자(우리나라의 제사와 같은 힌두교의 종교의식)를 올렸다. 하지만 그들의 대학생 아들은 그런 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푸자에도 동참하지 않았으며, 자기만의 신도 없고, 멀리서 온 이방인인 내게 사원을 구경시켜주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나를 박물관으로 데려갔다. 사실 나도 그동안 각종 사원들에 지쳐 있었기 때문에 내심 문화공간으로 데려다준 그가 고마웠다. 박물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며 그가 말했었다. 여행을 많이 다녀서 이런 그림은 많이 봤겠지만, 그래도 흔한 힌두 사원보다 낫지 않겠냐고. 종교와 카스트에 반항하는 그는 부모에게는 못된 아들이지만, 내게는 인도의 희망으로 보였다. 이 나라의 젊은 세대들은 깨어나고 있구나.
인도에서 제일 좋았던 것은 그들의 인사법이었다. 합장을 하고 상대방에게 '나마스테'라고 말하는 것. 나마스테란 내 안의 신성이 당신 안의 신성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기존에 사람들이 믿던 신만 신이라고 생각하는데, 인간의 내면에도 신성이 있다는 그들의 논리가 참신하게 다가왔다. 그러니 그 신성도 존중받아야 하고 이 신성도 존중받아야 한다. 누구는 경배하고 누구는 배척하는 것은 유치한 발상이다. 신은 신의 할 일이 있고, 인간은 인간의 할 일이 따로 있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신들이 자기한테 매달리고 의지하는 인간을 좋아할지 아니면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을 좋아할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