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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aveLife Apr 23. 2020

고구려의 발자취를 따라서

중국 첫 여행길의 목적지는 자연스레 백두산으로 정해졌다. 처음에는 비행기가 아닌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보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였는데, 알아보니 그 당시엔 배를 타면 비자를 미리 신청하지 않아도 도착 항구에서 바로 발급받을 수 있는 선상비자라는 게 있었다. (2016년 8월부터 선상비자 발급이 중단되었으니 비자는 꼭 사전 발급받으시길.) 항공권보다 싸고, 비자도 자연스럽게 해결되니 이보다 편한 교통편도 없겠다 싶어 배편을 검색해 보니 천진, 대련, 단동 3곳에 취항하고 있었고, 천진을 제외한 나머지 두 곳에서 백두산이 생각보다 가까이 위치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 살면서 백두산은 한번 가 봐야 하지 않겠나.

그리하여 백두산이 굵은 목적지가 되고, 대련부터 백두산이 있는 백하까지는 고구려의 자취를 따라, 백하부터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도인 연길까지는 독립운동의 자취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나중에 현지에 가서 알았지만 이 루트가 북한 땅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어 자연스레 북한의 모습도 덤으로 엿볼 수 있었다.

대련행 배를 타고 인천을 떠나는 날은 하늘이 한껏 잿빛을 띄고 있었지만, 다음날 아침 대련항에 도착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창한 날씨에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사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선실에서 만났던 중국 여인이 굳이 왜 중국 같은 위험한 곳을 여행하냐며 잔뜩 겁을 줘서 내심 졸아들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화창한 날씨 못지않게 아기자기하면서도 활기찬 대련 시내의 모습은 나를 한껏 설레게 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이 중국어였는데, 회사에서 반강제로 공부를 시켜주는 바람에 기본기를 익혀오긴 했지만, 인강으로 듣는 성조와 현지 실전 발음 사이에는 엄청난 갭이 있어서 리스닝은 거의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그래서 여행 초반에는 어쩔 수 없이 종이에 써가면서 필담을 주고받아야 하는 웃픈 상황도 종종 발생했다.

대련(大连)은 청일전쟁으로 러시아의 식민지, 러일전쟁 후에는 일본의 식민지였던 곳이어서 각 시대의 잔재가 남아 있었다. '북방의 홍콩'이란 별명도 그래서 붙은 것이라고 한다. 시내는 작아서 도보로 얼마든지 돌아볼 수 있는 거리지만, 안중근 의사가 1909년 만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수감된 여순(旅顺) 감옥은 버스를 타고 여순 터미널에 내려서 다시 택시를 갈아타야 했다. 당시에는 마땅한 교통편을 찾지 못해서 아쉽게도 못 갔지만, 지금은 대중교통도 잘 되어 있고 터미널 앞에서 "안중근"이라고만 해도 택시기사들이 알아듣는다고 하니 대련에 갈 일이 있으면 지나치지 말고 여순감옥을 들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대련에서 버스로 3~4시간 거리에 있는 단동(丹东)은 압록강을 경계로 북한과 마주하는 곳이다. 끊어진 압록강 철교 너머로 공장 굴뚝이 솟아난 북한의 신의주가 어렴풋이 보인다. 6.25 전쟁으로 끊어진 다리 옆에 새로 지은 철교 위로 차량이 심심찮게 오가는 것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중국과는 이렇게 교류하면서 한민족이었던 남한과는 분단된 채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현실이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이 이념의 문제에서 비롯되었으니 언젠가는 그 이념을 다시 한번 제대로 만져봐야 하지 않을까... 완벽한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없다는 것을 지금의 세상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단동 부근에 고구려의 '박작성'으로 알려진 호산장성(虎山长城)이 있다. 박작성은 안시성과 함께 당태종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성이다. 고구려의 천리장성 일부이기도 했던 이곳에 와 보니 어째 그 구조가 만리장성과 흡사해 보인다. 중국에서 동북공정(東北工程, 중국 국경 내의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드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성이란 성은 모조리 만리장성과 이어지도록 개보수를 해놓은 까닭이다. 여기서는 안타깝게도 고구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단동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5시간쯤 가면 환인(桓仁)이란 마을이 나온다.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지 않은가? 바로 단군신화에 나오는 하늘의 신 '환인'과 같은 '환'자이다. 이름에서 민족적 정기가 훅 다가오는 이곳에 바로 고구려의 태동지 '졸본성'이 있다. 중국 이름은 오녀산성(五女山城). 매표소 입구의 박물관에 주몽과 고구려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었지만, 문제는 유네스코에 중국 내 고구려의 유적으로 등록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박작성에 이어 또 한 번 불편한 진실을 감내하고 올라가면 산 정상 너머로 거대한 환룡호(桓龙湖)가 멋진 전망을 선사한다. 이토록 험준한 산속에 건국을 했야 했던 주몽의 이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옛 터만 남은 이곳은 이제 더 이상 한민족의 영토도 아닌 것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역사 속에 묻힐 뻔한 주몽의 이야기는 드라마 <주몽>을 통해 중국 대륙을 넘어 유라시아로 죽죽 뻗어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역사적 장소가 아니라 잘 만들어진 작품 하나가 그 나라를 대표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땅 가르기, 역사 가르기를 하며 물리적 공간에 집중하고 있을 때, 우리는 콘텐츠에 신경을 쓰면 되는 것이다. 잘 만들어진 콘텐츠 하나가 국가 간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환인의 졸본성에 이어 고구려의 2번째 도읍지였던 집안(集安)은 마을 전체에 옛 성벽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또한 단동처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땅과도 마주하고 있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북한의 만포시를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드문드문 이어진 가옥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아저씨를 발견하자 갑자기 울컥해졌다. 비록 한 나라였던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음에도 이런 울림을 느끼는 게 신기했다. 고구려의 자취를 찾아왔다가 북한에 대한 감정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가다니, 여행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몰랐던 내 안의 영감을 새로이 발견하는 것


초등학교 때 반공 교육을 받고 자란 것이 북한에 대해서 내가 아는 전부라고 생각하니 그동안 참 무심하게도 살아왔구나 싶었다. 이번 백두산 행은 나에게 고구려와 조선족 마을, 북한에 대한 묵은 감정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념을 정립하라고 이끌어 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 우리나라와 북한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가진 쪽에서 못 가진 쪽을 물적으로 돕는 것일까? 가진 자란 누가 무엇을 얼마나 가진 것을 말할까? 백두산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한국에서라면 해보지 못했을 고민을 마음껏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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