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독일인의 사랑>을 읽고
우리의 둔한 눈을 예리하게 모아 초인적인 힘을 갖고 자연의 비밀 속에 보다 깊은 시선을 던져보라. 이 현미경이 씨앗과 꽃봉오리와 꽃의 소리 없는 공장들을 열어 보이면, 그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조직과 세포 안에서 우리는 무한히 반복되는 형태를, 섬세한 섬유질 안에서 자연의 설계의 영원한 불가변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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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창공을 보라. 거기에도 영원한 질서가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위성은 유성의 주위를, 유성은 항성의 주위를, 항성은 또 다른 항성의 주위를 맴돈다.
(중략)
푸른 꽃받침 속에서 요람을 타고 있는 딱정벌레를 보라. 그것들이 생명체로 깨어나며 현존을 누리고 생명의 호흡을 하는 것은, 꽃의 조직이나 생명 없는 천체의 기구보다 더욱 경이로운 사실이다. 너 역시 이와 같은 영원한 총체 속에 속해 있음을 느껴보라. 그러면 너와 더불어 지구를 타고 돌아가며 너와 함께 살다가 시들어가는 저 무한한 피조물들로 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
(중략)
꽃의 세포나 별의 세계, 딱정벌레의 생성보다 더 무한하고 영원한 무엇이 네 안에 있음을 느낀다면―마치 그림자 같은 너의 내부에 영원한 분의 광채가 두루 비침을 인식한다면―너의 내면과 너의 발밑, 그리고 머리 위에서 반영에 불과한 너를 존재로 만들며, 너의 불안을 평안으로, 너의 고독을 보편으로 화하게 하는 실재자의 편재를 느낀다면, 그때에는 너는 알게 되리라.
(중략)
그때에는 네 마음속과 주변이 밝아지고 새벽의 어둠이 차가운 안개와 더불어 걷히며, 새로운 따스함이 진동하는 자연 속을 관류할 것이다. 너는 다시는 놓지 않을 하나의 손길을 찾아낸 것이다. 그 손은 산이 흔들리고 달과 별이 사라져도 너를 지켜줄 것이다.
- <독일인의 사랑>, '일곱 번째 회상' 중에서
너의 오빠라도 좋고
너의 아버지라도 좋다. 아니, 너를 위해 세상의 무엇이라도 되고 싶다.
- <독일인의 사랑>, '마지막 회상' 중에서
신은 당신에게 고통스러운 삶을 주셨지만 그 고통을 당신과 나누도록 나를 당신에게 보내신 겁니다. 당신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어야 합니다. 한 척의 배가 무거운 돛들을 감당하듯이, 우리는 그 고통을 같이 짊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고통이라는 돛이 인생의 폭풍을 헤치고 마침내 안전한 항구로 안내해 줄 겁니다.”
- <독일인의 사랑>, '마지막 회상' 중에서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은 아직도 남아 있다. 눈물 한 방울이 대양에 합류하듯이 그녀에 대한 사랑은 이제 살아 있는 인류의 대양 속에 합류하며, 수백만―어린 시절부터 내가 사랑했던 수백만 ‘타인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그들을 포옹하고 있다. 다만 오늘처럼 고요한 여름날, 홀로 푸른 숲 속에서 자연의 품에 안겨 저 바깥에 인간들이 있는지, 아니면 이 세상에 오로지 나 혼자 외톨이로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면, 기억의 묘지에서는 소생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죽어버린 생각들이 되살아나고, 엄청난 사랑의 힘이 마음속으로 되돌아와, 지금까지도 그윽하고 바닥을 알 수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저 아름다운 존재를 향해 흘러간다. 그러면 수백만을 향한 사랑이 이 사랑 안으로―나의 수호천사를 향한 이 사랑 안으로 수렴되는 것만 같다.
- <독일인의 사랑>, '마지막 회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