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어학원 첫 수업 날이다. 얼마 만에 다시 학생이 되어 보는 건지... 설레는 마음으로 강의실에 들어섰다. 첫 수업은 필리핀 강사와의 1:1 클래스였다. 자그마한 체구에 다정한 미소를 지닌 여자 강사는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었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오랜만에 영어로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잠들었던 뇌가 긴기지개를 켜며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반면 그다음 시간인 그룹클래스는 다소 아쉬움이 느껴졌다. 비슷한 레벨의 학생들로 반편성을 해야 하는데 학생수가 적다 보니 중급과 상급 학생을 한데 모아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의 실력 차이 때문에 원활한 수업 진행에 어려움이 있었고, 원어민 강사의 대응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쉽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여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여겨졌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식당에 모여 다 같이 점심을 먹었다. 뷔페식으로 차려진 음식을 먹을 만큼 접시에 담아 들고 햇살이 잘 드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동남아식 흰쌀밥에 닭고기가 들어간 멀건 수프, 튀긴 춘권과 새콤한 맛이 나는 샐러드, 짭짤한 소스가 버무려진 고기 요리로 구성된 식단이었다.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고 있을 때 갑자기 무언가가 무릎 위로 뛰어올라왔다. 깜짝 놀라서 살펴보니 고양이었다. 다듬지 않아 날카로운 발톱으로 꾹꾹이를 하며 밥 달라고 애교를 부렸다. 털이 뭉쳐있고 깨끗하지 않은 걸로 봐서는 근처 덤불에 살면서 식사시간마다 와서 음식을 얻어먹는 것 같았다. 배가 고픈 모양인지 닭고기 살을 발라 주니 잘 받아먹었다. 식당 요리사와 직원들은 이런 상황이익숙한듯 우리를 무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 식당 근처를 둘러보는데덩치가 큰 개 한 마리가 보였다. 더워서 그런지 차가운 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려있었다. 학생들이 다가가 쓰다듬어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식당 요리사가 무어라고 말을 건넸는데, 따갈로그어라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나이가 많은 개라서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 같았다.더위에 지쳐 축 늘어진 고령의 개를 보니 이곳이 사람에게는 천국이지만 털 달린 동물에게는 가혹한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어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딩동댕동! 오후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렸다. 저마다 눕거나 앉아서 편안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학생들은 부산하게 일어나 각자의 강의실로 향했다. 그 무리를 따라 식당 건물을 빠져나와 하얗게 쏟아지는 햇살 아래 서니 시야가 흐려지며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이곳이 새로운 일상의 무대가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불과 며칠 전에 한국을 떠나온 것이 까마득한 옛일처럼 생각되었다.뜻하지 않게 늦깎이 학생이 되어 이곳에 와있는 상황이 나중에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자는 생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돌계단을 힘주어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