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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May 13. 2021

워킹맘 육아, 단 하나의 필수품

첫째도 뚝심, 둘째도 뚝심, 셋째도 뚝심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워킹맘 육아의 특징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아마도 "다수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를 필수 적으로 하는 양육방식"이라고 설명할 것 같다. 하루에 대략 16시간밖에 활동하지 못하는 엄마가 그중에 대략 10시간 이상을 사회활동을 하다 보니, 워킹맘의 육아는 어린이집 또는 유치원 선생님, 돌봄을 도와주실 시터나 부모님들, 그리고 남편의 참여를 필수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이해관계자는 이 육아에 대해서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데, 사랑과 소명감, 월급이 뒤섞인 이런 복잡한 관계 속에서 육아라는 배는 여리디 여린 작은 아이를 태우고 저 멀리 항해를 떠난다.


모든 이해관계자는 아이의 일상을 나누어 가지며, 아이에 대해 이런저런 관찰을 하고, 판단을 하며 의견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유치원 선생님은 "땡땡이 어머님, 땡땡이가 최근에 많이 피곤한 것 같아요. 집에서 푹 쉴 수 있게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하고, 동시에 부모님은 "땡땡이가 집에 오면 아주 심심해하는 거 같아. 태권도라도 보내는 게 좋겠어"라고 하는데, 남편은 "땡땡이가 좀 크더니 떼가 늘었어. 좀 단호하게 혼을 내야 될 것 같아"라고 이야기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일단 좀 혼을 내고, 태권도를 보낸 다음에 집에서 쉬라고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땡땡이가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이다. 얼핏 생각해 보이도 땡땡이가 다중인격이 아니고서야 이 모든 것이 땡땡이의 모습일 수는 없다. 위 진술들을 잘 살펴보면 땡땡이의 실제 상태와 이해관계자들의 추측이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유치원 선생님의 진술을 보면 땡땡이가 피곤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선생님의 추측이며,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땡땡이가 유치원에서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 정도를 알 수 있다. 또한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땡땡이가 심심해하는 것 같다는 것 역시 부모님의 추측일 뿐, 여기서 추론할 수 있는 사실은 땡땡이가 평소보다 다운된 모습을 보였다는 정도일 것이다. 여기에 남편의 진술을 더해보면 원인이 무엇이었건 우리 땡땡이는 유치원에서도 집에서도 컨디션이 평소보다 좋지 않았다가, 결국 저녁에 그게 터져서 짜증을 부렸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그 누구의 추측이나 평가도 더해지지 않은 순수 땡땡이의 상태가 된다.


저녁에 퇴근해서 이러한 땡땡이의 상태를 파악한 나는, 일단 땡땡이로부터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들어야 하고, 무엇이 땡땡이를 피곤하게 했다가 심심하게 했다가 떼를 쓰게 했는지를 알아야 하고, 그 부분을 해결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면서 정리하니 아주 명확하지만, 이미 회사일로 두뇌회로가 풀가동이 어려운 나는, 일단 밥 먹다가 아주 사소한 일로 크게 화를 내고, 피곤할 테니 일찍 자라고 강요한 다음에, 땡땡이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밤늦게까지 태권도를 보낼 수 있는지 알아본 다음에,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죄책감에 잠들곤 한다. 내가 쓰면서도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각종 이해관계자들에게 둘러싸인 워킹맘일수록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엄마가 온전히 아이를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생아 시절 간호사가 "땡땡이는 좀 예민해요" 한말을 찰떡같이 믿고 "우리 아이는 예민해"하며 과잉보호를 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단지 그 간호사가 땡땡이를 볼 때 좀 피곤해서 그저 그렇게 느꼈을 수 있고, 당시에 설령 예민했다 하더라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오늘날에는 땡땡이가 더 이상 예민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를 가장 가까이서 오랜 시간 지켜보지 못한다고 해서,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말을 맹신하고 내 아이의 상태를 직접 살피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결코 안된다.


최근에 7살이나 된 첫째가 한번 아프고 나더니, 끝없이 엄마를 찾았다. 온종일 엄마를 한없이 그리워했고, 퇴근해서도 엄마 곁을 떠나지 않더니, 심지어 자려고 누워서도 잠들었는데 엄마가 보고 싶으면 어떡하냐며 눈물을 흘렸다. 평소에 잘 다녀오던 방과 후 과정도 끊어달라고 조르고, 심지어 그 시간에 골프를 배우겠다고 했다. 이런 아이를 보고, 누군가 아이가 터무니없는 말을 할 때는 단칼에 끊어내야 하고, 적당히 무시해야 하며 아이에게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가 살아 숨 쉬는 매 순간 다른 감정을 가지듯이 내 뱃속에서 나온 내 아이 또한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그 감정과 분투하며 살아가리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그 감정을 제대로 마주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를 따로 불러내, 아이가 평소에 좋아하는 공원으로 함께 산책을 떠났다. 아이는 엄마와 단둘이 시간을 가진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는지 가는 내내 유치원에서 본 곤충들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늘어놓았다. 그리고 아이에게 조용히 요즘 어떤 느낌인지 물어보았다. 아이는 엄마가 계속해서 보고 싶은 느낌이라고 했다. 방과 후는 왜 그만두고 싶은지 물었다. 집에 빨리 오고 싶다고 했다. 골프는 왜 배우고 싶냐고 물었다. 그러면 방과 후를 안 해도 할 일이 있으니까 방과 후를 끊을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또 다른 엄마들은 아침에 유치원 버스를 탈 때 함께 나오는데 엄마는 안 오는 게 싫었다고 했다. 아이의 감정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가만히 들어주고, 협상안을 제시했다.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는 달리 아침 일찍 나가야 해서 유치원 버스를 탈 때 함께 나가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가 아침 일찍 나가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일을 일찍 시작해서 일찍 마무리하고 집으로 와서 아이들을 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대신 한 달에 한 번은 아이가 원하는 날에 조금 늦게 출근하면서 유치원 버스를 태워주겠노라고 했다. 방과 후도 당장은 끊을 수 없다고 했다. 돌봄의 문제도 있지만 유치원의 방과 후 과정은 몸을 튼튼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우리 아이들은 숲 활동을 하는 유치원을 다니고 있다) 엄마는 방과 후 과정을 계속하는 것이 아이에게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1학기까지는 방과 후를 유지하고 여름방학 시점에 다시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골프도 그때 같이 이야기하자고 했다. 대신 유치원 버스와 마찬가지로 한 달에 한 번은 엄마가 방과 후에서 일찍 데리고 오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자 아이는 수긍하는 듯했다. 오히려 한 달에 한 번은 엄마와 함께 유치원 버스를 타러 나가고 집에 일찍 올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그런데, 엄마가 보고 싶으면 어떡해?"라고 물었다. 어른들은 누군가 보고 싶으면 만나러 가거나 여건이 안되면 참는데, 아이가 견디기에는 그게 매우 어려운 문제인 듯했다. 나는 경우의 수를 나누어 설명했다. "엄마랑 있는데 엄마가 보고 싶으면 엄지손가락을 들어. 그럼 엄마가 꼭 안아줄게. 엄마가 없는데 엄마가 보고 싶으면 할머니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 그럼 엄마가 일하는 중간에 답장을 보낼게. 근데 유치원에 있는데 엄마가 보고 싶으면 텔레파시를 보내." 다행히도 아이는 나의 근거 없는 우주의 기운과 텔레파시의 효력에 대한 설명을 찰떡같이 믿는 듯했다.


극적으로 타결된 이 협상이 아이가 안정적인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일단 오늘 아침에는 울지 않고 출근하는 엄마를 잘 보내주었고, 아침에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문자도 보내주었다. 할머니를 통해 울지 않고 유치원 등원도 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의 감정을 무작정 혼내거나 무시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워킹맘이 그 어떤 이해관계자에게도 양보하지 말아야 할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난무하는 각종 추측 속에서 바로 아이의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고, 직접 아이와 대화하는 일일 것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아이는 생각보다 현명하고 자신의 입장을 자신의 언어로 잘 표현하며, 나와 협상조건을 조율할 줄 알았다. 그리고 오늘의 경험은 나중에 아이가 커서 또 다른 낯선 감정에 맞닥드렸을 때, 그 감정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여러 이해관계자 역시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추측과 조언은 계속될 것이다. 그럴수록 이 아이가 "내 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와 남편을 제외한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은 2차적인 의견에 불과하며, 결국 결정은 나와 남편이 주도적으로 내리고 그 책임 또한 져야 한다. 비즈니스를 할 때 각종 금융,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받지만 결국 CEO가 결정하고 책임지듯이, 워킹맘의 육아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다.  따라서, 워킹맘의 육아에 있어 단 하나의 필수품을 고르라면, 나는 최고 결정권자가 가져야 할 뚝심! 나만의 뚝심!이라고 힘차게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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