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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Nov 21. 2024

등 뒤의 사랑 2

 세정은 임시 반장이었다. 쌍꺼풀이 짙은 큰 눈에 웃을 때 가지런하고 하얀 치아가 돋보이는 아이다. 어깨에 닿을락 말락 한 단발이 주는 발랄함이 세정과 잘 어울렸다. 새 학기 첫날 휠체어를 타는 사랑반 친구의 도우미를 자청한 세정은 다정하고 세심하게 친구를 챙겼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까지 잘하는 데다 성격도 좋아 그날이 아니었다면 걱정이라곤 없을 것 같던 그 아이의 숨겨진 마음을 모를뻔했다.


학부모 회의가 있던 날, 세정의 엄마가 찾아왔다. 그녀는 대학교수다. 회색 정장에 검은색 블라우스를 받쳐 입고 그 위에 진주 목걸이를 한 그녀는 멀리서도 눈에 띌 만큼 돋보였다. 강의가 있어 못 온다던 세정의 말과 달리 10분 늦게 나타난 그녀는 뒷자리에 앉아 연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연수의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다른 학부모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그녀가 연수에게 다가왔다. 세정은 고3 때까지 지금의 성적을 유지한다면 서울 소재 명문대는 문제없을 성적이다. 세정 엄마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담임 교사의 입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세정 엄마에게 연수가 입을 열었다.


“더 궁금하신 건 없으세요?” 

“제가 특별히 알아야 할 게 있나요?” 

나지막하고 기품 있는 말투였지만 연수는 왠지 찬 바람 부는 벌판에 그녀와 단둘만 있는 것 같았다.

다음 날 대걸레로 복도를 닦는 세정에게 엄마랑 많이 닮았다는 얘기를 건넸다.
   “다들 그래요.”

세정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근데 말투랑 성격은 다르네.”

“아빠 닮았어요. 그래서 엄마랑 종종 싸워요. 어제도 한 판 했어요”

미간을 찌푸리는 세정의 표정이 낯설었다. 

“무슨 일로?”

“엄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했거든요.”

“뭐?”


깜짝 놀라 쳐다보는 연수에게 피식 웃으며 농담이라고 얼버무리던 세정은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교실로 들어갔다. 연수는 교무실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본관 뒤쪽 벚나무 아래 벤치에 걸터앉았다. 잠깐이었지만 세정의 눈동자에서 일렁이는 분노를 본 것 같았다. 그럴 아이가 아닌데 싶다가 옛날 기억이 나 연수는 씁쓸하게 웃었다. 어릴 적 가끔 죽는 상상을 했다. 버림받는 것보다 죽어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남겨진다는 것은 두려움과 막막함이었다.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죽음은 늘 싱겁게 끝나버렸고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벌게진 눈을 비볐다. 


엄마를 두고 죽고 싶었던 자신과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세정. 연수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연수에게 죽이거나 죽고 싶다는 말은 단절이다. 분노, 두려움, 연민, 애증 따위의 복잡한 감정에서 벗어나는 상상은 연수에게 탈출구였다. 세정이 삼키고 있는 말들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죽고 싶다’고 뇌까리지만, 대부분은 살아낸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 어느 날,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연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지웠다. 그날 이후 세정이 신경 쓰였지만, 노골적으로 물을 수는 없었다. 세정은 가끔 운동장을 함께 걷거나 벤치에 앉아 시시한 얘기를 나누다 불쑥 엄마와 다툰 얘기를 했다. 안쓰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연수에게 날마다 그런 건 아니라고, 아빠가 있어서 다행이라며 씩 웃었다.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에 관한 모든 자료를 정리하여 새 학기 업무 담당자에게 넘겼다. 후련했다. 일이 많은 것은 둘째 치고 잦은 출장에다 낯선 사람과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연수는 여러 사람과 얽히지 않고 혼자 하는 일이 편했다. 말 무덤에 갇혀 불필요한 감정의 손실을 보고 싶지 않았다. 책상 정리를 마친 연수가 커피 한잔을 들고 자리에 앉으려던 참에 세정에게서 전화가 왔다.

  “몸은 좀 어때?”

  “선생님, 병원에 와 주실 수 있어요? 엄마는 9시쯤 온대요.”

   연수는 직감적으로 정이 뭔가 말하고 싶어 한다는 걸 느꼈다. 

  “그러지 않아도 퇴근길에 가보려 했어. 어디가 아픈 거니?”

  “……선생님, 저 …… 사실 죽으려고 했어요.”


  연수의 몸이 부들거리며 식은땀이 등허리로 흘러내렸다. 지금은 위 세척으로 속이 좀 불편한 것 말고 다른 이상은 없다고 했다. 세정의 말이 자동 응답기의 음성처럼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연수는 전화를 끊고 고마워! 세정아, 살아 줘서 정말 고맙다며 가슴에 손을 얹어 숨을 고르려 애썼다. 그동안 내심 불안했다. 다행히 별일 없이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기나 했더니 괜찮아 보였을 뿐 괜찮지 않았다. 그동안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마음이 급해졌다.



  병실 앞에서 문을 두드려도 기척이 없어 연수는 안으로 들어섰다. 침대에 기대앉아 창밖을 보던 세정이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벌써 오셨어요?”

  세정의 얼굴이 몰라볼 정도로 해쓱했다.

  “밥 많이 먹어야겠다. 우리 정이는 볼이 통통한 게 매력인데.”

  “아빠랑 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세정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가만히 어깨를 감싸안았다. 상처 입은 작고 가여운 새 한 마리가 연수의 품 안에서 파닥거렸다. 한참을 울고 난 세정은 평범한 열일곱으로 돌아왔다. 자기 대신 도우미는 누가 하는 지, 학급 뉴스 일위는 뭐였는지, 종업식날 파티하기로 했는데 못 가서 섭섭하다는 시시껄렁한 얘기로 수다를 떨었다. 8시 반이 되자 간호사가 링거를 뽑으러 들어왔고 세정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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