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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뜰살뜰 구구샘 Jan 08. 2024

유튜브 안 하려고 별짓 다 했는데

결국 피할 수 없었음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유튜브를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왜냐고? 시대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대 영상의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유튜브의 바다로 뛰어들어야만 했다. 여태까진 이 사실을 애써 부정했다.


왜 유튜브 하기 싫었냐고? 가장 큰 이유는 얼굴 공개다. 내 얼굴이 박보검이었으면 당장 하고도 남았을 거다. 콘텐츠 고민 없이 그냥 아무거나 올렸을 거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박보검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서 얼굴 안 나오게 영상을 찍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금방 거뒀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들은 죄다 얼굴을 깐다. '조승연의 탐구생활', '셜록현준', '슈카월드', 'ITSub' 매일 보는 유튜브 채널이다. 다들 공통점이 있다. 영상에 얼굴이 나온다는 거다. 나는 그들을 존경한다. 그들을 따라 하고 싶다. 그래서 얼굴을 까기로 했다.


첫 영상을 올리기까지 5년이 걸렸다. 그전까진 안 되는 이유만 찾았다. 그래서 주변을 빙빙 돌았다. 처음엔 블로그를 시작했다. 지금도 꾸준히 포스팅을 하고 있다. 어느새 누적 방문자 수는 100만을 넘겼고, 일 방문자도 평균 1,000명 정도 된다. 블로그는 얼굴을 안 까도 된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했다.


다음으로 정착한 곳은 인스타다. 여긴 얼굴 공개하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카드뉴스'형식을 선택한 거다. 블로그에 올렸던 정보를 짧게 가공했다. 그걸 꾸준히 올렸다. 어느새 게시글 수는 100개를 넘겼다. 감사하게도 팔로워 수도 6,000명 정도 생겼다. 신기할 따름이다.


블로그와 인스타가 익숙해졌다. 이제 유튜브를 할 차례였다. 하지만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브런치를 선택했다. 여긴 순전히 글로 승부하는 곳이다. 흰 바탕에 검은 글자. 이 바닥에서 얼굴 공개하는 작가님들은 거의 없다. 나도 역시 그랬고. 그래서 마음이 편했다. 신나게 1년 정도 글을 썼다.


블로그, 인스타, 브런치... 이제 습관이 잡혔다. 하지만 계속 마음 한편이 아렸다. 가장 중요한 녀석을 건드리지 않아서이다. 바로 유튜브다. 마치 수능 치겠다면서 언수외는 건너뛰고 탐구영역만 열심히 들이 판 느낌이었다. 이젠 똑바로 마주 볼 시간이 됐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유튜브를 해야 했다.


마침 그때 읽은 책이 자청의 <역행자>다. 이번이 3회독이다. 이 책은 정말 신비롭다. 읽을 때마다 내 엉덩이를 걷어찬다. "당장 나가서 실행해!"라고 외치는 듯하다.


-1회독: 블로그 방향을 바꿈

-2회독: 인스타 시작함

-3회독: 이래도 유튜브 안 할 거야?


책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비웃는 것 같기도 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날은 12월 24일, 그러니까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나도 애써 웃으며 일단 잠에 들었다. 그리고 눈을 뜨니 12월 25일이었다. 크리스마스 당일이 된 거다.


출근하는 날에는 보통 5시 전에 일어난다. 이날은 빨간 날이라 6시에 일어났다. 침대에 누워 눈만 껌뻑거렸다. 천장에 <역행자> 녀석이 나타났다. 나를 보며 웃었다.


"거 봐, 너 실행 안 할 거지? 순리자 납셨넼ㅋㅋ"

비웃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곧 새해니까 1월 1일 되면 시작할게. 진짜 약속한다. 그때부터 나 유튜버 되는 거야!"

나도 나름대로 방어했다.


"ㅋㅋㅋㅋㅋㅋㅋ"

그 녀석은 그저 웃기만 했다. 열이 살살 올랐다. 그렇게 30분을 씨름했다. 그리고 침대에서 꾸역꾸역 내려왔다. 손목에 있는 갤럭시워치를 바라봤다. 6시 30분이었다. 원래 루틴이라면 그냥 운동하러 가는 시간이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크리스마스 아침입니다..."


스마트폰을 들어 워치를 찍었다. 그냥 오늘부터 하기로 했다. 1월 1일이 아니라, 일주일 빠른 크리스마스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에라 더러워서...


영상 몇 개를 확보했다. 그리고 고민했다.


'이걸 어떻게 편집하지?'


그렇게 영상은 며칠간 갤러리에 잠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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