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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뜰살뜰 구구샘 Jan 13. 2024

갓생 브이로그, 도대체 이걸 왜 봐?

유튜브는 콘셉트가 명확해야 한다.


다른 유튜버를 살펴볼까? 자동차를 리뷰하는 사람은 자동차만 언급한다. 자동차 리뷰하는 채널에서 갑자기 먹방을 하진 않는다. 주제가 아주 선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칼로 예를 들어 보자. 기름 지글지글한 웍에 넣을 돼지고기를 썰 땐 두툼한 중식도를 써야 한다. 허리를 요리조리 접으며 펄떡이는 활어의 배를 가를 땐 회칼을 써야 한다. 알록달록 색종이를 자를 땐 커터칼을 써야 한다. 세상에 두루두루 통하는 만능은 없다. 목적에 맞게 도구도 선명해야 한다.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색깔이 분명해야 한다. 흐리멍덩한 건 그냥 일기장일 뿐이다. 이건 내가 블로그라는 운동장에서 놀아봤기 아주 잘 알고 있다. 모를 수가 없다.


'잡탕 블로그'라는 말이 있다. 블로그 주인장 마음 내키는 대로 콘텐츠를 올리는 곳을 말한다. 하루는 서평, 또 하루는 맛집, 그다음엔 여행... 수요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구성이다. 머릿속엔 오로지 자신뿐이다. 공급자 중심의 마인드로 똘똘 뭉친 블로그 주인 말이다.


이걸 왜 이렇게 잘 아냐고? 내가 그렇게 해봤기 때문이다. 나는 블로그를 잡탕으로 운영했었다. 그리고 처절한 실패를 맛봤다. 아무도 내 블로그에 찾아오지 않았다. 심지어 사랑하는 아내도 내 콘텐츠를 클릭하지 않더라. 비참했다.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도서관에 찾아갔다. 책꽂이에 있는 블로그 책을 죄다 읽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잘못하고 있었다는 걸.


책을 읽은 뒤 블로그를 싹 다 고쳤다. 우선 주제를 선명하게 바꿨다. 닉네임에 맞게 '알뜰살뜰'을 제외한 건 죄다 비공개로 돌렸다. 그랬더니 마법처럼 방문자 수가 늘어났다. 세상에, 이게 된다고?


이제 유튜브 차례다. 유튜브 주제를 뭘로 정할지 고민했다. 블로그에 있는 걸 그대로 옮겨올까? 내 블로그에는 교사에게 도움 되는 경제 정보가 꽤 많다. 하지만 이걸 유튜브로 퍼오긴 싫었다. 왜냐고? 유리 천장에 내 손으로 대못을 박는 느낌이었으니까. 수요가 한정적이라는 뜻이다. 전국에 있는 선생님이 다 봐주셔도 얼마나 되겠는가? 나는 '교사'라는 제한된 수요보단 '대중'이라는 넓은 수요를 잡고 싶었다.


대중이 좋아하는 콘텐츠에는 뭐가 있을까? 먹방? 게임? 예능? 아쉽게도 그것들은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다. 내가 즐기지 않는다면 절대 꾸준히 업로드할 수 없다. SNS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은 '꾸준함'이다. 꾸준함이 알파요, 오메가다. 이거 없으면 끝이다.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러면서 대중도 좋아하는 거? 독서가 떠올랐다. 내가 꾸준히 하는 거다. 그런데 이건 문제가 있다. 대중이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당장 주위를 둘러보자. 친구 열 명 중, 책을 꾸준히 읽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대한민국에서 독서는 비주류 중에 비주류다. 이건 일단 패스.


답도 안 나오는 고민을 계속했다. 얼굴에 죽상을 썼다. 집구석에서 인상을 쓰니 아내가 내 걱정을 해준다. 그리곤 이렇게 말해주더라.


"갓생 브이로그는 어때?"


갓생 브이로그? 이게 뭔 말인가? 브이로그는 대충 알겠다. 비디오로 기록한다는 뜻일 거다. 그런데 갓생은 뭐지? 네이버에 검색해 봤다. 대충 하루를 열심히 산다는 뜻인가 보다. 세부 항목은 이렇다.


-새벽 기상

-운동

-독서

-글쓰기


뭐야 이거, 내가 이미 하고 있는 거잖아? 아침에 일찍 일어난 지는 오래됐다. 왜냐고? 그때 아니면 시간이 없다.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 키워 보면 알 거다. 따님께선 나에게 자기계발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새벽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운동, 독서,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예전부터 꾸준히 하고 있는 거다. 이걸 그냥 브이로그로 남기면 된단다. 엥? 이게 콘텐츠가 된다고 여보?


이해가 안 됐다. 남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왜 보는 거지? 그거 볼 시간에 자기가 책 한 권 더 읽으면 되지 않나? 특히 이해가 안 되는 건 '공부하는 모습이 타임랩스로 나오는 브이로그'였다. 아니 도대체 남 공부하는 모습을 왜 보는 걸까? 그 시간에 그냥 열람실 가서 직접 공부하면 되잖아?!


나는 무지랭이었다. 영상에 딸린 조회수를 보니 입을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수십만 대군들이 그 영상을 시청했더라. 그런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다. 나는 대중의 취향을 전혀 몰랐던 거다.


아내 말로는 이쪽 시장도 꽤나 좋다고 했다. 여기서 승부를 보려면 두 가지를 기억하란다.


-영상미가 있든지

-아니면 진짜 꾸준함으로 승부보든지


아내가 영상미 있는 클립을 보여줬다. 와! 정말 아름다웠다. 유튜버가 예뻤다는 뜻이 아니다. 촬영하는 구도, 샤랄라 들어오는 빛, 적재적소에 놓인 소품들... 하나의 작품이었다. 이 영상 하나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은 영상을 찍었을까? 나는 엄두가 안 났다. 이거 따라 했다간 내 루틴 다 망가질 판이었다.


그래서 나는 꾸준함 쪽을 선택했다. 영상미 따위는 없다. 샤랄라 조명도 없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어차피 초반에는 내 영상 아무도 안 봐준다. 그러니 겁먹을 게 없다. 부딪혀 보자!


크리스마스날 아침,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책을 읽었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었다. 스마트폰을 들어 워치 화면을 영상으로 찍어놓은 거다. 지금이 몇 시 몇 분인지 찍었다. 사이클을 얼마나 돌렸는지 기록했다. 이건 거짓말을 못 한다. 늦잠 자면 끝이다. 시간을 과거로 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소 루틴이었던, 남들이 갓생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을 남겼다.


갤러리에 영상이 10개 정도 쌓였다. 이제 이걸 편집해야 될 차례다. 편집이야 자신 있었다. 나는 초등교사니까. 코로나 원격수업이 나를 단련시켜 줬다. 영상 편집 정도야 무섭지 않지!


하지만 이건 나의 오만한 착각이었다. 문제는 내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사진: Unsplash의Pablo Heimpla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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