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유튜버를 살펴볼까? 자동차를 리뷰하는 사람은 자동차만 언급한다. 자동차 리뷰하는 채널에서 갑자기 먹방을 하진 않는다. 주제가 아주 선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칼로 예를 들어 보자. 기름 지글지글한 웍에 넣을 돼지고기를 썰 땐 두툼한 중식도를 써야 한다. 허리를 요리조리 접으며 펄떡이는 활어의 배를 가를 땐 회칼을 써야 한다. 알록달록 색종이를 자를 땐 커터칼을 써야 한다. 세상에 두루두루 통하는 만능은 없다. 목적에 맞게 도구도 선명해야 한다.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색깔이 분명해야 한다. 흐리멍덩한 건 그냥 일기장일 뿐이다. 이건 내가 블로그라는 운동장에서 놀아봤기 아주 잘 알고 있다. 모를 수가 없다.
'잡탕 블로그'라는 말이 있다. 블로그 주인장 마음 내키는 대로 콘텐츠를 올리는 곳을 말한다. 하루는 서평, 또 하루는 맛집, 그다음엔 여행... 수요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구성이다. 머릿속엔 오로지 자신뿐이다. 공급자 중심의 마인드로 똘똘 뭉친 블로그 주인 말이다.
이걸 왜 이렇게 잘 아냐고? 내가 그렇게 해봤기 때문이다. 나는 블로그를 잡탕으로 운영했었다. 그리고 처절한 실패를 맛봤다. 아무도 내 블로그에 찾아오지 않았다. 심지어 사랑하는 아내도 내 콘텐츠를 클릭하지 않더라. 비참했다.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도서관에 찾아갔다. 책꽂이에 있는 블로그 책을 죄다 읽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잘못하고 있었다는 걸.
책을 읽은 뒤 블로그를 싹 다 고쳤다. 우선 주제를 선명하게 바꿨다. 닉네임에 맞게 '알뜰살뜰'을 제외한 건 죄다 비공개로 돌렸다. 그랬더니 마법처럼 방문자 수가 늘어났다. 세상에, 이게 된다고?
이제 유튜브 차례다. 유튜브 주제를 뭘로 정할지 고민했다. 블로그에 있는 걸 그대로 옮겨올까? 내 블로그에는 교사에게 도움 되는 경제 정보가 꽤 많다. 하지만 이걸 유튜브로 퍼오긴 싫었다. 왜냐고? 유리 천장에 내 손으로 대못을 박는 느낌이었으니까. 수요가 한정적이라는 뜻이다. 전국에 있는 선생님이 다 봐주셔도 얼마나 되겠는가? 나는 '교사'라는 제한된 수요보단 '대중'이라는 넓은 수요를 잡고 싶었다.
대중이 좋아하는 콘텐츠에는 뭐가 있을까? 먹방? 게임? 예능? 아쉽게도 그것들은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다. 내가 즐기지 않는다면 절대 꾸준히 업로드할 수 없다. SNS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은 '꾸준함'이다. 꾸준함이 알파요, 오메가다. 이거 없으면 끝이다.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러면서 대중도 좋아하는 거? 독서가 떠올랐다. 내가 꾸준히 하는 거다. 그런데 이건 문제가 있다. 대중이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당장 주위를 둘러보자. 친구 열 명 중, 책을 꾸준히 읽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대한민국에서 독서는 비주류 중에 비주류다. 이건 일단 패스.
답도 안 나오는 고민을 계속했다. 얼굴에 죽상을 썼다. 집구석에서 인상을 쓰니 아내가 내 걱정을 해준다. 그리곤 이렇게 말해주더라.
"갓생 브이로그는 어때?"
갓생 브이로그? 이게 뭔 말인가? 브이로그는 대충 알겠다. 비디오로 기록한다는 뜻일 거다. 그런데 갓생은 뭐지? 네이버에 검색해 봤다. 대충 하루를 열심히 산다는 뜻인가 보다. 세부 항목은 이렇다.
-새벽 기상
-운동
-독서
-글쓰기
뭐야 이거, 내가 이미 하고 있는 거잖아? 아침에 일찍 일어난 지는 오래됐다. 왜냐고? 그때 아니면 시간이 없다.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 키워 보면 알 거다. 따님께선 나에게 자기계발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새벽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운동, 독서,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예전부터 꾸준히 하고 있는 거다. 이걸 그냥 브이로그로 남기면 된단다. 엥? 이게 콘텐츠가 된다고 여보?
이해가 안 됐다. 남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왜 보는 거지? 그거 볼 시간에 자기가 책 한 권 더 읽으면 되지 않나? 특히 이해가 안 되는 건 '공부하는 모습이 타임랩스로 나오는 브이로그'였다. 아니 도대체 남 공부하는 모습을 왜 보는 걸까? 그 시간에 그냥 열람실 가서 직접 공부하면 되잖아?!
나는 무지랭이었다. 영상에 딸린 조회수를 보니 입을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수십만 대군들이 그 영상을 시청했더라. 그런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다. 나는 대중의 취향을 전혀 몰랐던 거다.
아내 말로는 이쪽 시장도 꽤나 좋다고 했다. 여기서 승부를 보려면 두 가지를 기억하란다.
-영상미가 있든지
-아니면 진짜 꾸준함으로 승부보든지
아내가 영상미 있는 클립을 보여줬다. 와! 정말 아름다웠다. 유튜버가 예뻤다는 뜻이 아니다. 촬영하는 구도, 샤랄라 들어오는 빛, 적재적소에 놓인 소품들... 하나의 작품이었다. 이 영상 하나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은 영상을 찍었을까? 나는 엄두가 안 났다. 이거 따라 했다간 내 루틴 다 망가질 판이었다.
그래서 나는 꾸준함 쪽을 선택했다. 영상미 따위는 없다. 샤랄라 조명도 없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어차피 초반에는 내 영상 아무도 안 봐준다. 그러니 겁먹을 게 없다. 부딪혀 보자!
크리스마스날 아침,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책을 읽었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었다. 스마트폰을 들어 워치 화면을 영상으로 찍어놓은 거다. 지금이 몇 시 몇 분인지 찍었다. 사이클을 얼마나 돌렸는지 기록했다. 이건 거짓말을 못 한다. 늦잠 자면 끝이다. 시간을 과거로 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소 루틴이었던, 남들이 갓생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을 남겼다.
갤러리에 영상이 10개 정도 쌓였다. 이제 이걸 편집해야 될 차례다. 편집이야 자신 있었다. 나는 초등교사니까. 코로나 원격수업이 나를 단련시켜 줬다. 영상 편집 정도야 무섭지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