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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뜰살뜰 구구샘 Jan 27. 2024

한국인이 한국말을 하는데 자막이 필요해?

나는 한국인이다. 부모님도 한국인이다. 조부모님도 한국인이다. 더 타고 올라가면 외국인이 나올지도 모른다. 나의 두툼한 눈꺼풀을 보니, 조상님 중에 한 분은 백퍼 북방계였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최근 3대로 한정하면 나는 영락없는 한반도 사람이다.


유튜브 영상을 편집할 때 가장 짜증 나는 건 자막 입히기다. 기술적으로 어렵진 않다. 그냥 귀찮을 뿐이다. 근무 시간에 일하는 게 '노동'이라면, 영상에 자막 다는 건 '로동'이다. 그만큼 거부감 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자막은 달아야 한다. 한국인이 한국영상 보는데 왜 자막이 필요하냐고? 두 가지 이유가 있다.


1. 소리 끄고 유튜브 보는 사람 많다.

2. 내 말 못 알아듣는 사람도 많다.


먼저, 소리 끄고 유튜브 보는 사람이 많다. 육아하는 사람이면 다들 공감할 거다. 애기를 재울 때 이불 위는 소리 없는 전쟁터가 된다는 사실을. '일촉즉발'이라는 말이 딱 맞다. 양육자가 살짝이라도 움직였다가는 바로 총알 날아온다. 자녀님이 렘수면에서 깊은 수면으로 빠지기 전까진 부동자세 필수다. 위병소 앞 헌병처럼.


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 스마트폰이 한반도에 상륙한 게 10년이 넘었는데? 도파민 팡팡 터지는 2024년에 부동자세를? 아니 될 말씀이다. 이럴 때 등장하는 스킬이 있으니, 바로 '이불 덮어쓰고 유튜브 보기'다. 다들 해본 적 있쥬?


만일 유튜브 영상에 자막이 없다면? 이런 수요층을 죄다 포기하는 거다. 나도 마찬가지다. 자막 없는 영상은 바로 뒤로가기 키 누른다. 그러므로 유튜버는 영상에 자막을 달아야 한다. 수요자를 배려해야 하니까.


둘째, 내 발음 문제다. 나는 국어 교사(였던 사람)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발음 교육을 받았다. 오죽하면 '참되다'를 "참뙤다"로 읽는다. 국어사전에서 '참되다'를 찾아보라. 놀랍게도 [참뙤다/참뛔다]로 발음해야 한다.


나름 발음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네이티브 경상도민이라는 것이다. 사투리가 문제라는 거다.


나는 평생을 PK(부산경남)에 살았다. 대학도 영남에서 나왔다. 대학 시절, 서울에서 내려온 동기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야, 한 학기 동안 교수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반도 못 알아 들었어."

"머라꼬? 그니까 퍼뜩퍼뜩 공부를 해쓰야지."

"아니, 쉽고 어려움의 문제가 아니야. 교수님 사투리 때문이라고. 한국말인데 50%도 못 알아듣겠는걸?"

"...설마 내가 금방 한 말도 즐반은 몬알아뭇나?"


그렇다. 경상도민은 표준어를 100% 알아듣는다. 하지만 그 반대는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자막으로 갭을 메워야 한다. 엉엉. (조상님 왜 신라 쪽에 터 잡으셨어요. 한강 유역 모르셨던 겁니까 엉엉)


한국인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국 유튜브에 한국말로 영상을 올렸다. 그런데 자막을 달아야 한다. 내가 외국어로 말하는 것도 아닌데 이게 뭐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자막은 필수다. 그게 내 영상을 봐주시는 분에 대한 예의다.


영상 편집을 할 때 자막을 달면 품이 많이 든다. 하지만 걱정 없다. 저번 화에서도 말했지만 우리에겐 '갓도비'가 있으니까. 어도비는 외계인을 고문해서 프리미어프로를 만든 게 틀림없다. 자막 다는 것쯤이야 이 프로그램으로 다 해결된다.


여태까지 신나게 타이핑을 했다. 이제 브런치 글 발행만 하면 된다. 이건 영상도 아니고 글자다. 설마 이 글에도 내 '사투리'가 녹아든 건 아니겠지? 저기요... 제가 쓴 글의 90%는 이해하셨죠...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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