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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별 Jun 05. 2024

열두 시는 넘었지만 5월 32일인 걸로

24. 5. 31(실은 6.1 새벽)



밤 11시가 넘어서야 로켓 같은 쿠팡 배송이 도착했다.


요새 카페에 가면 너도나도 노트북을 거치대에 멋들어지게 받쳐 쓰더라. 너도나도에 나도 참전해 본다. 그것이 미덕인 세상 아닌가. 택배를 뜯고 있자니 잠들 준비 중이던 정신이 다시 각성의 길로 방향을 틀고 말았다. 돈을 쓴 덕분에 오늘도 글을 써보겠다던 다짐을 지켜냈다.


거북목의 해방을 바랐으나 벌써 목이 아프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픈 곳이 늘어나는 몸뚱이를 보고 있자면 인간의 신체, 과연 이것이 최선인가요! 묻고 싶지만, 내 한 몸 야무지게 건사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하찮은 나를 살게 하려 쉬지 않고 애쓰는 세포들을 위해 말을 삼킨다. 삶이 젊음을 헤집고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라면 그 속에서 과연 어떤 것을 깨달아야 마땅한 건지. 의문 속에서 죽어버릴지, 마침내 무언가를 얻어낼지.


상반기가 지나간다. 시간은 느리고 또 빠르다. 아무튼 그렇다. 이과를 갔어야 했는데.

  

어리바리하다 초여름을 맞이했다. 기다림 끝에 기다림. 하지만 언제나 '어떻게'가 중요하더랬다. 어떻게 기다리느냐. 기다릴 만큼 기다려 봤으니 기다리지만은 않기로 한다. 데뷔작을 찍으면 사는 게 조금은 쉬워질 거라 기대했었나 보다. 밀도 낮은 기대는 쉬이 보답받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여전한 일상 속에서 다시 무더운 여름이 목전이다.


늘 운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웃긴 건 언제나 내게 필요한 것을 찾을 수 있었던 삶이었다. 운이 좋지 않다고 느끼며 살아온 이유는 필요한 것들을 거저 주지 않아서. 내게 필요한 무언가를 거저 받는 사람들이 사방팔방 보이니 배알이 뒤틀리는 김에 눈을 감아버리는 법을 많이도 배웠다. 그럴수록 감은 눈꺼풀 뒤로 영사기를 비춘 듯 현실이 더욱 선명해지지만  그때는 피할 수 없다. 눈을 감고서는 눈알이 빠질 듯 쏘아보는 상상도 해보고, 껍데기는 가라며 배짱 좋은 척 외쳐도 보고, 그래본다. 눈을 감은 표정은 여전히 수줍지만서도.


넘쳐흐를 듯 반짝이던 것들이 벗겨지고 남은 것들. 영광의 잿더미 속에서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눈꺼풀 뒤의 세상 속에서는 더욱 눈을 부릅 떠야 한다. 한참을 떠돈대도 마주친다면 단박에 알아채도록. 이거야. 나의 기회. 나의 미래. 나의 사람들. 그리고 우리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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