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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별 Jun 11. 2024

수줍은 주간 일정

싸우자. 냉정과 열정.

24. 6. 10



우리는 수줍다. 누군가는 아니기도 할 테지만. 타인의 이야기로 달려들기에 게으르고 수줍은 나는 겨울잠 같은 고요한 땅속을 익숙하다 말하며 애증하고 만다. 살가죽에 닿는 것은 한동안 햇볕을 쬐지 못한 흙뿐인 이 서늘함을 사랑할지 증오할지 정하지 못했으므로.


길을 걸을 때에도, 지하철 안에서도, 책을 읽을 때도, 글을 쓸 때에도, 그림을 그릴 때도 빛나는 화면을 눈에서 놓지 못하는 평범한 요즘 세상 사람. 덧붙여 듣고 싶은 소리로 귓구멍을 덮고 세상의 소리를 노이즈로 분류하여 미련 없이 캔슬해 버리는 쿨한 현대인. 뜨끔함을 느껴야 할 일은 아니지. 이것은 '힙'이다. 모르면 말을 마시라.


그럼에도 쿨타임이 돌았다. 나는 이토록 쿨하지만 때마다 그대들이 궁금하다. 습한 여름날의 기운이 어떤 시절의 향수를, 언젠가 만났던 당신에 대한 그리움을 자아내기 때문에. 진득해진 공기의 계절감이 피부에 닿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찝찝함. 그것에 덩달아 무언가에 질척이는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에. 환절기엔 탓할 것이 많다. 콜록. 기침이 나지 않는가. 아, 여름이지.


언제 눈이 내렸냐는 듯 후덥해지는 세상의 노력에 감읍해 나도 집어먹었던 겁을 게워내 본다. 잠에서 깨어나 집을 나선다. 사람을 만난다. 사랑하는 것들을 앞세우긴 해야겠지. 있는 그대로 유려하게 타인 속을 유영하기엔 너무도 서투른 사람이니. 사랑의 힘에 기대어 본다.



월요일. 사랑하는(사랑하기만은 어려운 순간이 더 많지만, 그런 순간마저 사랑하고 싶은) 연기를 앞세워 사람들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나를 알아가고 싶어 미쳐버린 사람들. 그저 사랑스럽다.


(실은 뭣도 아니지만) 데뷔를 한 배우라는, 그저 그 사실은 솔직하기에 부담스러워지기도 한다. 방긋, 하고 돌아선 자리로 파격세일 코너처럼 평가와 비교를 위해 무신경하게 뻗어대는 손길이 몰려들 것만 같다. 사장님이 미쳤어요. 저도요, 사장님.


줄지어선 의자들. 중간 언저리쯤 앉았는데 내 옆에만 좌도 우도 비었다. 그저 우연이길 빌어본다.


 화요일. 사랑하는 활자 뒤에 숨어 글 쓰는 사람들 속에서 손가락을 풀어본다. 말로 하기 수줍은 것들은 글로 써보세요.라곤 하지만 글을 내보이는 건 또 다른 수줍음이다. 수줍은 사람들. 하지만 기어이 수줍음을 내보여야 할 것 같은 충동에 빠진 이들은 안쓰럽고 아름답다. 늘 서툴지만 늘 풍요롭다. 무언가 흘러넘쳐 비워내고야 만다.

 

수요일. 사랑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가운데 나도 말없이 하고픈 말을 내가 만든 문자로 그려낸다.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은 배가 불렀거나 허덕이는 영혼을 가진 이들일 테다. 그중에서도 그리기를 멈추지 못하는 사람은 그리면 그릴수록 비어 가는 마음. 이것을 어찌할 줄을 모른다. 그래서 그린다. 어찌할 줄을 모르니.


사람을 그리고 싶다. 움직이고, 멈춰있는 사람들. 부드럽고 뻣뻣한 사람들. 어떤 표정과 질감을 가진 사람들. 어떤 것이 어떤 것인지는 상관없다. 사람을 그려야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그제야 나도 사람인 것만 같다.


목요일. 말하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인다. 녹음된 나의 목소리가 어떤가요. 물으면 대부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를 울리는 진동을 빼버린 나의 소리는 인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것에 기꺼이 익숙해지려는 사람들. 나를 객관화하려 애쓰는 사람들. 시각에 너무나 의존하는 우리는 청각의 우선순위를 얼마나 미루고 있었나. 얼굴을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을 내보이는 사람들을 얼마나 쉽게 그림자 속으로 밀어 넣었던가. 외형은 이미지를 만들지만 소리는 아우라를 만든다. 외형을 감싼다.


금요일. 움직임을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땀을 흘린다. 움직이면 떠오른다. 단호한 규칙을 따를 때 완성되는 아름다움이. 동시에 자유를 연호하는 몸의 아우성이. 구부려도 보고 펴도 본다. 뻗어도 보고 움츠려도 본다. 같은 것을 향해 가는 모두의 각도가 다르다. 마음이 놓인다. 당신들과 함께 당신들을 의식하지 않으며 움직이는 연습. 그러나 당신이 나의 거울이다. 자유를 갈망하는 자들의 몸에서 뚝뚝 떨어져 흐르는 것은 미끈한 위로를 준다. 단순하고 빠르다. 그리고 적당한 여운.


토요일. 사랑하는 책을 앞세워 이야기 속으로 뛰어든다. 처음 본 이들과 체홉과 그의 글에 대해 이야기한다. 체홉이 글로 당신을 보여주었듯, 우리는 체홉을 앞세워 우리를 이야기한다. 우리.라고 하는 것은 공간 또는 행위로 묶은 카테고리일 뿐, 가진 것 혹은 생의 유사함이 아니다. 나는 많이도 웃는다. 마주한 이들 안에 떠오른 것들이 나와 다를까 두려워했으면서.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덧붙여지는 나. 생소하지만 기다려왔다는 직감.


 일요일. 묘하게 남겨진 온기에 한기를 실감한다. 온기를 갈망하며 한기에 털어놓는 안정감. 두터운 공기로 만든 벽을 튜브처럼 끼우고, 튕겨나가는 것들을 끝없이 밀려나는 물길에 떠내려가는 비치볼처럼 무력하게 바라본다. 하나로 묶인 일곱 개의 날들을 돌아보며 너무 자주 입꼬리를 끌어올렸다는 수줍음에 이미 빨개진 얼굴로 후. 있는 힘껏 입술을 끌어모아 튜브에 공기를 불어넣어 본다. 빵빵해진 허리춤 주위로 흩뿌린, 가라앉지 않으리라는 안도의 한숨에 일순간 출렁이며 그려진 포물선이 예상보다 크다. 뒤집어질 듯.


  

발이 닿지 않는 물속에 둥둥 떠있는 위태로움이 타인 속에 표류하게 되는 나의 수줍음 같다. 보송하게 살고 싶으나 이내 젖어버리는 일상에 투덜대며 뭍을 찾지만 젖은 옷을 벗지 못하는 결정장애. 수줍은 우리는 번뇌가 잦다. 수줍음은 번거롭다. 가끔은 좀스럽다. 자기 연민도 자의식과잉도 쉽다. 우스운 결론을 내린다. 뻔뻔하게 살기는 싫다. 취소한다. 웃을지 울지 정하지 못했다. 떠밀리듯 n번째 월요일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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