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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별 Jun 18. 2024

어찌어찌 집으로 돌아오는 춤

스텝 1. 발리


쨍하게 날아든다. 공의 위치를 간파해 달려가 자리를 잡은 뒤 스윙, 그런 여윳 시간은 없다. 애석하게도 지금 나의 위치는 테니스 코트 정 중앙. 널찍하게 비어버린 등 뒤로 공을 넘겨줄 순 없다. 공이 상대의 라켓을 박차고 나오는 순간 나도 박치기 준비. 스텝 한 번. 단박에 끝내야 한다. 발리를 배운다.


앞서 배운 나의 백핸드에 아직 익숙함 비슷한 것도 스미지 못한 얼떨떨함 뒤로 슬쩍 비쳐 보인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다음 스텝, 다음 스텝, 다음 스텝들이! 막막함이 엄습한다. 아, 그만두고 싶다.


버둥거리는 수고를 더할수록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주기가 밭아지는 건 왜인지. 이쯤 되면 가만히 가라앉는 것이 편안함에 이르는 길이라 믿고 싶어 진다. 편안함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으나, 나를 속이고 진심을 외면하면 끝나는 단순한 문제다. 참고로 꼴에 눈이 높아 지팔지꼰을 하는 거 아닌가 물으신다면 멋지게 홈런을 날리는 기대 따위의 것들은 언짢은 고지서처럼 대충 접힌 채 어딘가에 처박혀버린 지 오래라 하겠다. 죽기 전에 탱탱볼 한번 재미지게 튕겨보고 싶습니다.라는 중얼거림을 이놈의 세상은 페더러 뺨치는 우아한 플레이를 마스터하겠다는 말로 오해를 하는 것 같다. 세상과 나는 늘 오해가 깊다. 나의 세상이 아닌 듯, 쉬는 숨이 그저 살고 싶다를 뜻한다는 간단한 소통에도 통역이 필요하다. 여지없이 시작된다. 둥둥 떠있기에 급급한 하루가.




이쯤 되면 올 때가 됐는데. 일주일이 넘도록 엄마의 전화가 없다. 몸속에 나를 품다 낳아준 이와 연락이 닿았을 때 오랜만이다,라는 처참한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나 역시 먼저 전화를 걸지 않았다는 뜻이겠다. 탯줄로 연결돼 있던 시절은 없었던냥 통화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무얼 먹고, 무얼 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는 그녀와 내가 되었다.


그 사이 그녀는 내시경을 받고, 세 개의 용종을 떼어내고, 이것이 더 큰 불행의 씨앗인지 결과를 기다리며 약을 달고 사는 중이라 했다. 자식 둘을 낳은 몸이라면 한번 더 뱃속의 고통을 얼싸안는 것 따위는 무엇도 아닌 것이 되는 건지. 우스울 정도로 덤덤한 서술. 이로써 (내가 아는 한) 두 번째다. 소식 없이 몸속의 무언가를 떼어낸 것이.


얘기해서 뭐 해.

그냥 그럴 나이가 됐지.


그래. 얘기해서 무얼 할까. 그녀는 강인한 척에 능하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 모든 사실이 원망스럽다는 것은 사치다. 그녀가 잦은 엄살에 능한 이였어도 나는 감당치 못했을 테니. 그녀가 그럴만한 나이가 될 동안 변해버린 세상의 한 조각도 감당하지 못하는 나의 처지만이 변함없다. 매일밤 잠을 청하는 곳. 그 네모난 제곱미터의 여전한 숫자처럼 나의 처지는 변함없이 모났다. 낡아버린 마음처럼 그 안에서 낡아가는 물건들만이 시간의 흐름을 깨닫게 한다. 얼마나 삭아버렸나, 쌓인 먼지의 두께가 얼마인가 하는 것들이 나의 측량법.


일언반구 말도 없이 저 혼자 새롭게 태어나겠다며 리모델링을 위해 문을 닫아버린 황당한 일자리를 뒤로한 채 또다시 누군가의 포켓몬이 되려 성실한 당신의 00몬이 되겠다는 다짐의 이력서를 뿌리고, 거부된 대출이 전혀 당황스럽지 않은 나는 떠오르는 문장들을 쏟아낼 힘도 없이 벙어리인 체. 괜히 신발만 본다. 바로 걷는데 자꾸만 휘청거려 보인다는 나의 걸음이 신발 탓인가 하여. 적당치 않은 것을 내 것이라 착각하며, 혹은 박박 우기며 걸어왔는가 확인하려 수 없이 고개를 떨궈야 한다.




불안해하지 마세요. 앞선 스텝이 어느 정도 만들어졌다면 자꾸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야 더 빨리 늘 수 있습니다.


이건 모든 스텝이 익숙한 코치님의 말이고,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인다. 두려움을 애써 무시하며 한 단계씩 자세를 익혀본다.


100번 연습하고 가세요. 생각보다 금방 끝납니다.


그건 백만번은 더 연습한 코치님 말이고, 금방 안 끝난다. 나의 새로운 첫날들이 늘 그랬듯. 그래도 숫자를 채운다. 날아오는 시련 같은 공을 아직은 쳐내지도 못해 그저 허공을 가르는 설픈 연습. 그러나 현재의 최선. 또다시 다가올 벽이 그릴 포물선을 머리에 새겨 넣으며 있는 힘껏 쳐내는 상상도 해본다. 이제야 조금 익숙해진다 싶기가 무섭게 또 다음 스텝이 기다리고 있겠으나, 하나씩 밟아가며 살아가야 할 테다. 어디든 밟지 않으면 제자리. 제자리가 익숙해질수록 한 발을 떼어내기란 점점 힘에 부쳐올 테니.


세 걸음에 꼭 한 번은 내 발을 지르밟는 스텝에 초라해지지만 그저 한때의 불행. 삼보일배의 심정으로 춰 나가는 결연한 인생의 춤에 발이 좀 밟히면 어떠하리. 비웃음을 사는 것 정도야. 나의 춤은 얼핏 형편없어 보일 뿐, 성실하다. 상처를 곱씹지도 저주의 방언을 퍼붓지도 않는다. 또한 정직할 게다. 우울을 들이밀고 슬픔을 선물할 만큼 뻔뻔하지 않으려 한다.


오늘도 어설픈 스텝. 그래도 집으로 돌아왔다. 어찌어찌 한판 춤을 추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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