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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별 Jul 02. 2024

신념으로 가는 춤

스텝 3. 스플릿 스텝


전방 주시. 가볍게 무릎을 구부린다. 상대의 공이 라켓에 닿는 순간 점프. 이 제자리 뛰기가 스플릿 스텝. 밸런스를 유지하여 어느 쪽이든 빠른 방향 전환을 가능케 하기 위한 준비의 스텝이랄까. 있어 뵈는 이름에 긴장했으나 막상 보니 만만한 첫인상. 냉큼 방심해 준다. 아, 쉽다.


포핸드, 백핸드 하나씩 번갈아가며 가볼게요.


생의 고난이 이토록 따스하게 날아와 준다면 기쁨의 눈물을 흘리리라. 그러나 따스함 뒤섞인 신기루 같은 고난은 고난이라 부르지 않을 터. 메마른 사막의 현실로 돌아오라!  눈앞의 저놈이 어디로 시련을 날려올지 재빨리 파악해 내달려야 한다. 친절하게 엉덩이며 어깨를 토닥여주던 단계는 순식간에 막을 내리고, 남은 것은 랜덤게임. 약 오르지, 알아서 잘 쳐내 봐. 방심하다 얻어맞지 않으려면 제자리라도 뛰어야 한다.


손도 발도 꼬인다. 물론 머릿속도. 백핸드 그립을 쥐고서 포핸드를 친다. 때로는 반대. 지금 내 몸의 신경은 뒤죽박죽. 사방으로 튀는 공처럼 난리가 났다는 말이다. 이 와중에 매번 이놈의 스플릿 스텝이라는 걸 밟으랴 더더욱 정신이 없다. 급해 죽겠는데, 나아가지도 못하고 그저 제자리에서 툭. 의미 없이 죽죽 힘을 앗아가는 과정인 것만 같다. 나의 라켓이 공에 가 닿을 수 없게 하는 원흉으로 점찍겠다. 무의미함의 반복이 아닌가. 달리는 호흡에 불만이 치솟는다.

첫인상의 소회를 취소한다. 사람은 신중해야 한다.




점프. 준비. 점프. 준비. 점프, 점프. 준비, 준비. 점프, 점프, 점프. 준비, 준비, 준비.


끝날 줄을 모른다. 언제까지 준비의 과정 속에 있을 건지. 잔 스텝 정도는 건너뛰고 멋진 걸 하고 싶다. 일확천금의 꿈 하나쯤 가진 것, 인지상정이 아닌가. 그렇다면,


자, 지금이에요. 뛰세요!


멈칫, 몸이 굳는다. 언제까지 나를 준비만 시킬 거냐, 내보내달라 읍소하던 것들이 말을 바꾼다. 아직은 준비를 끝내지 못했어요. 시간이 더 필요해요. 두려움 앞에서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신파의 한 장면. 뻔하다. 지겹고. 무의식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질질 눈물을 떨구고 말겠지만.


너 다운 걸 해보지 않을래. 않을래. 너답게 살아보지 않을래. 않을래. 않을래. 속절없이 메아리치는 뼈아픈 권유에선 눈을 피해버리고 싶다. 나 다운게 뭔데! 네가 나를 그렇게 잘 알아? 드라마 전용 대사이자 나의 방어기제 전용 대사로 맥락 없이 버럭, 화를 내고는 밑도 끝도 없는 눈물로 상황을 마무리 짓는다. 지겨우리만치 잦은 신파를 늘어놓는 세상. 눈물이 나잖아요. 울라고 등을 떠미는 세상을 촉촉한 눈가로 바라보며 사는 것, 잘못인가요.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공주님 같은 대사(아, 요새는 공주님들도 공주님 나름이다.)에 뒤따라오는 부끄러움은 신념의 몫이다.


실체 없는 신념. 믿기 어렵다. 적립이 불가다. 얼마나 애써왔든 밀어붙이기를 멈춤과 동시에 사라져 버리고 만다. 허무하게도. 그런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 말하고, 그 호소가 우스워지지 않을 만한 행동으로 끊임없이 존재를 증명하지 않으면 그런 신념을 갖지 않은 사람이다. 쉽지 않은가. 이리 휙, 저리 휙,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대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가진 적 없던냥 태세전환하며 살아도 궁지에 몰렸던 과거, 무릎 꿇은 자존심을 아는 이 없을 테니 쪽을 팔일 또한 없다는 것이다. 범죄도 아닌데 어떠랴. 그래, 죄짓지 않고 사는 것만 해도. 어찌 됐든 사는 것만 해도... 머리는 이렇게나 변명을 늘어놓아 주는데, 가슴팍은 왜 눈치도 없이 화끈해지는지. 신파극을 본 것도 아닌데.




상경하던 날, 비가 왔다. 습기에 질린 곱슬머리, 지하철역  출구를 몸집만 한 캐리어를 끌고 올라 부동산 문을 여는 나의 행색 덕에, 비 오는 날 이사하면 잘된다던데. 하는 뻔한 위로를 획득했다. 그래. 나도, 잘 돼야지, 하고 떠나왔다. 태어나 처음 나의 세상이 된 곳, 부모의 품, 익숙한 모두를. 그리 떠나 왔으나 잘 된다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니, 명확해지기 어려운 것들을 죄 안고 온 듯싶다. 이제와 애처로워진 희망이란 것으로 가득 뒤덮여 쉽사리 닫히지 않던 나의 캐리어. 무엇이 현실에 닿음직하고 무엇은 영원히 꿈속에 있을지 구분이 석연찮을 만큼 한껏 부풀어 있던.


언덕을 올라 당도한 나의 새 보금자리는 마치 죽기 직전의 늙은 고래. 현관은 물을 게워내는 아가리처럼 콸콸 비를 쏟아내고 있었다. 옆을 돌아보면 좌르륵 줄 지어 세월에 해진 건물들이 약속이나 한 듯 꾸르륵 빗물을 토해낸다. 여기선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안도하며 계단을 오를 때마다 찰랑이는 물소리를 들었다. 내 발걸음이 가지 않아야 할 곳을 향해 가기에 그저 차오르는 물이 억울하게도 찰박거리다 양말을 적시는 찝찝함의 죄를 덮어쓰고 만 것이 아닐까. 빗물을 머금고 주인을 기다리던 나의 짐꾸러미처럼 시작도 전에 불어 터진 나의 꿈을 찬찬히 말려내는 매일의 첫날.


억울함에 허덕이는 삶, 사랑하는 이들을 원망하는 삶, 꿈꾸던 일을 탓하는 삶, 나를 가로막는 자들을 저주하는 삶을 살지 않기를. 몇 년이 지나왔는지는 모르겠다. 빗물 머금은 자취방에서 시작된 오랜 나의 기도. 희망의 보자기에 싸들고 온 해맑은 그것들은 아니지만 어엿한 나의 신념.




준비가 되면 떠나야지. 야심 차게 달력을 꺼내 들고 32일, 33일, 34일... 없는 숫자만 들쑤시게 되는 건 왜인지. 나름의 신념으로 걸어가는 나의 스텝이 현실을 밟고 있는지, 뒷걸음질만 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감이 엄습한다. 모두가 능수능란. 날아오는 공에 맞서 마땅한 방향으로 달려가 손쉽게 퉁. 고난을 쳐내는 장관. 나만 다른 모국어 가진 이방인 같다. 익숙한 듯 유려하게 동시대를 살아내는 몸짓을 단박에 이해할 수 없다. 실은 모두가 의아한 눈으로 시간 위를 걷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곁눈질로 보는 세상은 늘 화려함의 극치다.


어찌 됐든, 달력은 넘어간다. 준비의 점프를 반복하며. 반복은 결국 익숙함을 선사한다. 가빠오는 숨에 투덜대고 싶은 순간에도 몸은 관성을 타고 움직인다. 무의미해 보이는 제자리 뛰기의 반복이 발을 꼬이지 않게 해 주었음을, 어떤 모양새를 취해 어디로 내달릴지 판단할 시간을 주었음을 안다. 필요한 준비란 이토록 간단하며 뛰쳐나갈 기회의 시간은 길지 않다. 이것으로 될까, 이 정도로 효용이 있을까 하는 의심만이 달리기까지의 시간을 늘어뜨릴 뿐.


가벼운 스텝일지라도 신념을 담아 발을 떼어냈다면, 두 발이 떨어진 찰나의 공중 위에서 다가올 미지의 공포를 견뎌냈다면, 번거롭겠으나 매 순간 이 제자리 뛰기를 성실하게 해내고 다음을 이어갔다면, 이 하찮고 무용해 보이는 스텝을 지겹게 밟으며 수많은 달력을 넘겨왔다면.


우리는 신념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값은 못 받아도 박수를 받을만한 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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