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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별 Jul 11. 2024

쌀밥


대한민국에서 밥보다 빵.이라고 하면 야유를 받을까. 허나 자신 있게 나의 길을 가겠다. 빵이야 가끔 먹으면 좋지만 그래도 밥에 비할 것은 아니지.라는 말은 인정할 수 없다.


맛이야 둘째 치고, 나는 쌀밥이란 게 조금 얄밉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뻔뻔스러운지. 또 어쩌면 이렇게 의존적인지. 쌀밥만 우걱우걱 먹을 수나 있나. 우리는 밥을 위해서라면 도둑도 반긴다. 밥도둑. 도둑의 맛에 기생해 살아가는 주제에 밥도둑을 비롯해 아침밥, 저녁밥, 밥심, 밥친구, 혼밥, 집 밥, 밥은 먹었어? 밥밥밥. 우리네 식사의 모든 용어에 안부 인사까지 섭렵해 버린다. 밥은 뭘 먹었어? 나는 샌드위치. 나는 라면. 나는 국수. 나는 파스타.라고들 할 거면서(이틀에 한 번은).


밥에 뜨끈한 국을 내오면 아니 국밖에 없어! 소리를 듣는다. 여러 찬을 내와도 국이 없으면 아니 왜 국물이 없어! 조물조물 싱싱한 나물을 몇 가지나 무쳐와도 고기가 없으면 아니 찬이 이게 뭐야! 나물이 없으면 밥그릇을 싹싹 비우고는 아이 느글거려! 김치가 없으면 김치도 없네! 김치밖에 없으면 김치밖에 없네! 아이고. 게다가 찬이 남지 않으면 서운하단다. 밥에 물을 말면 아, 사람이 짠해진다.


3첩이니 5첩이니 7첩이니 진수성찬이니 상다리가 휘어진다느니. 상다리가 휘기 전에 허리가 휘도록 고생부터 해야 면이 선다. 7첩 반상을 스스로를 위해 차리는 걸 본 적이 있나.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누군가의 자랑거리가 된다. 흰쌀밥을 먹기 어려워 갓 지은 따끈한 밥 한 공기가 여유로운 집안사정의 상징이던 시절을 산 세대는 아니지만, 쌀밥에 깃든 반지르르한 유복함의 기운은 일부 여전하다. 따듯한 가정, 화목한 집안의 기운도. 밖에서는 혼밥을 해도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밥을 먹지 않는다고 하면 즉각, 너네 집 너무한다.라는 눈빛을 보내온다. 한데 나는 한 상 가득한 대형 식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아침식사를 하는 그런 광경은 실로 일일드라마에서나 봤다.


맛있는 밥을 해주는 엄마는 좋은 엄마. 다양한 찬을 해주는 아내는 좋은 아내. 건강한 상차림을 내오는 며느리는 좋은 며느리. 밥을 해주는 것은 아무튼 좋은 것을 상징. 하지만 ’밥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아무튼 좋게만 받아들일 수 있는가. 밥을 주는 이에게 정말로 진심 어린 감사를 해본 적이 있던가. 당신이 고생했다는 인사보다는 내가 잘 먹겠다는 인사를 건네고, 가끔은 당연하다는 듯 말 한마디 없이 날름 받아먹진 않았는지. 집에서 밥만 하면서,라는 말은 왜 이렇게 익숙한 건지.


밥을 챙겨 준다는 것은 희생. 차마 희생을 대신할 자신 없는 불효자식은 익숙하게 밥 차리는 인생을 보는 게 싫다며 빵봉지만 부스럭거린다. 자식의 얼굴을 보면 밥을 차려주지 못해 안달이 나는 부모는 냉장고에 빨려 들어갈만치 허리를 숙이고 달그락거린다. 서로의 바스락 거림이 서운함 되어 돌아가는 엇갈림이 사뭇 서운하다. 밥이네 빵이네 영원히 맞물리지 않을 고집을 부리며 사는 우리네 밥상. 아웅다웅. 찬이 없어도 진수성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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