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악의 「그리움」
우리 문학 이렇게 읽기(21)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우에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 이용악(李庸岳, 1914-1971), 「그리움」 전문
사사로운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열거된 시어의 뜻을 해석하는 게 아니라, 심장을 때리는 수만 톤 쇳덩이 같은 회한에 세상이 캄캄해진다. 온몸으로 스며드는 칼날 같은 ‘그리움’에 차라리 겨울은 더 이상 춥지 않다.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남쪽은 어민들의 생존이 걸린 치열한 그물질의 비린내를 넘어 코발트 빛 바다와 산호초가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미는 이국정취로 다가온다. 하지만 북쪽은 아직 동토(凍土)와 미답(未踏)의 인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절망이 ‘북쪽’에 세밀화로 그려져 있다.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백무선 철길, 연달린 산과 산 사이에 ‘너’를 남기고 온 사람은 시인만이 아니다. 이산가족만이 아니다. 새터민만이 아니다. 그리움에 사무치는 모든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두고 온 ‘너’를 기루어한다.
이제는 학생들이 널리 읽는 작품이기에 두 가지 마음이 생긴다. 어쩌자고 청년들에게 시린 그리움부터 가르치는가. 어쩌자고 우리의 자식을 그리움도 못 느끼는 얼치기 냉혈로 키우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