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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여행자 Mar 23. 2021

딱 그만큼이었던

사랑이라는 기억들을 걸러내며

바야흐로 봄이라서. 봄이 왔으니까. 봄이기때문에. 또 한번 훑고 지나가야하는 그 주제 ' 사랑 ' 

참으로 떡볶이의 힘은 크다. 한동안 또 열어보지 않았던 메일함을 열어봤다. 별볼일 없는 광고 메일 사이로 

어느날문득이라는 닉네임?! 아이디를 가지신분이 장문의 메일을 또 보내오셨다. 

앞선 글에서 한번 언급을 해드렸지만 브런치라는 공간에 개인적인 일상을 담는 것에 나는 큰 의미는 없었다. 

지구별여행자라는 필명을 가지고 작가라고 브런치에 글을 쓰는 나로써는 나에대한 간략한 소개 정도 그리고 작가의 성향이 보이는 정도의 일상 글을 통해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전부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그렇지. 제 3자의 입장에서는 이혼 후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니 결혼에서부터 출산 그리고 헤어짐의 그 모든 일들이 1년에 이루어졌다는 그 이야기가 통째로 궁금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언급하기 힘든 그리고 하고싶지않은 기억도 있기때문이라고 이해해 주신다고 생각했고 나의 아픔이 상대방에게 가십거리가 되게끔 만들지 말자는 취지도 있었는데, 이 주제로 이야기 한번 써달라는 메일에 멈칫 했던건 나의 사랑이야기를 쓰고 싶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이 지나갔다고 해서, 다시 사랑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론, 아이의 아빠라는 그 사람에게서 뜨거운 사랑을 느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했던 그 모든 과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찌보면 그도 피해자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나는 불우했던 가정을 탈출하고 싶었고 여동생도 만나던 남자친구과의 결혼을 서둘렀고, 집에서는 언니가 먼저 가야한다는 옛날 사고방식을 고집하여 등떠밀리듯 아이아빠와 그냥 얼떨결에 결혼식이라는 것을 상견례 포함 한달만에 결혼식까지 모든 것을 치뤄버렸다. 

결혼 직후, 낯선 곳으로의 이사. 적응. 그 모든 과정들이 그에게 버거웠겠지. 연고지도 아닌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 어디 쉬웠을까. 그도 나도 각자의 가정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뿐 우리는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에게 더이상 상처를 주지말고, 태어난 아이에게도 내가 겪은 가정의 불화를 겪게 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단호한 선택과 그의 무기력함과 무능력함이 마음을 돌려 단단히 굳혀지게 했고, 아이가 태어나고 3박4일간 병원에서의 생활 동안 출산직후인 나에게 병원비를 해결하라는 그때 당시 남편의 말은 내가 그를 놓았어야만 하는 마지막 말이 되고 말았다. 


별게 아니었다. 만삭의 몸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와, 나와 아이를 위해 뭐라도 하려고 발버둥 쳤어야 했던 그를 기대한 그 시간 사이에서 나는 나와 아이의 삶을 택했던 것 뿐 어떤 것도 없었다. 

더 긴 이야기들은 차차 기회가 되면 또 이어지겠지만, 사랑이 있었다면 달랐을거라는 생각은 아이가 백일쯤 지나고부터 스스로 내 기억의 조각을 끼워맞추며 그 상처에서 나 스스로 털고 일어서게 했다.

애초에 사랑이 없었다. 나는 마음 속에 담고 있던 선배의 죽음으로 힘들었고, 그런 나를 보며 연민의 감정을 느낀 그 사람을 내가 그냥 밀어내지 않았던 것뿐 교제를 하면서도 단 한번의 마음을 교류한 적은 없었다. 

물론 주변에서는 당장 헤어지라고 할 만큼 그 사람의 말과 행동과 여러가지 면이 보였음에도 나 역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시간을 보내다 결국엔 서로의 상대가 아님을 알면서도 감행했던 인륜지 대사 앞에 그 모든 상황을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았었다. 


사랑이 있었다면 지키고 싶었을 상황들이었다. 결혼이라는 선택도, 어려운 시작도 아이도 새로운 도시에서의 삶도 모든것을 서로 의지한채 이겨냈어야 했던 시간들이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그때는 나만 불행했다 생각한 시간들이 어느 쯤에서는 아이아빠라는 사람 역시 불행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 보기 보다는 지금 내 마음이 힘듦에 초점을 맞췄고,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짐이 되고 힘이 들었던 시간들이었다. 

사랑이 꼭 희생일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내가 상대방을 위한 삶을 산다고 해도 그 시간과 마음이 전혀 아깝지 않음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아팠다. 그 시간들에 대한 기억의 오류같은 결이 아닐까 싶었는데도 우리가 꼭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가 없었음에도 결국엔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었던 욕심이 가져온 결과였다. 

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돌파구. 터널같은 내가 자유롭고 내가 숨을 쉬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그냥 그렇게 서로를 선택했던 것의 오류. 그게 다였다. 


그렇게 끝난 것 같은 시간들에 사랑은 찾아왔다.  조금 더 노력하고 싶고 나로 인해 조금 더 편안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처음이었다. 무언가 내가 조금 덜 갖는다고, 덜 욕심낸다고 해도 전혀 마음의 동요가 생길 것 같지 않은 이상한 마음들이 생겼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주길 바라는 과거형이 아닌 서로에게 좋은 기억이 되어주는 현재형으로 살고싶은 마음. 세개를 가지고 두개를 줘도 아니, 남은 하나마저도 준다고 해도 아깝지 않을 것같은 마음이 그냥 사랑인 것이다. 

내가 아닌, 상대를 위해 살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 시간 속에 함께라는 마음이 그냥 사랑이었던 것. 

그거였다. 


사랑은 별게 없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게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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