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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현이 모여 하나가 된다

예술 노마드의 향유 #09

by 딸리아 Nov 30. 2024

윌리엄 월튼의 현악사중주 가단조는 섬세함과 강렬함을 넘나드는 곡으로, 노부스콰르텟의 연주를 통해 그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한 켜씩 쌓아 올리며 클라이맥스를 향해 내달리다가 돌연 항해를 멈추는 듯한 결말은 묘한 여운을 남겼다. 처음 듣는 곡이었음에도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 1악장에서는 산이 보였고, 3악장에서는 들판이 펼쳐졌다. 4악장에서는 네 사람이 함께 출격하듯 내달리며 압도적인 파워를 보여주었다. 네 사람은 서로의 눈빛으로 강약의 신호를 주고받으며 완벽히 호흡을 맞췄다.


네 명이 만나 연주하는 동안 이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이들이 함께한 세월을 생각하면 서로의 결이 달라 갈등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다. 실력의 높낮이로 갈등이 생기지도 않을 듯하다. 아마 곡에 대한 해석이 달라서, 강약의 포인트가 달라서, 혹은 그날따라 재수 없는 말투나 기분 탓으로 약간의 충돌이 있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이렇다 할 갈등은 없을 것 같다. 다만 더 나은 연주를 위한 의견의 대립 정도가 갈등이라면,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나겠지.


팀을 이끈다는 것은 상당히 예민한 작업이다. 팀원에게 요구하는 것과 팀원이 생각하는 바를 맞춰가며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원하는 방향'은 무엇일까? 내가 원하는 방향일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방향이 대중이 원하는 방향일까? 

일반적으로 리더십은 팀원의 실력이나 생각을 조정하고 끌어올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과정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내가 보기에 최상의 실력이 아니더라도, 팀원들이나 대중이 만족한다면 그것을 최선으로 믿어야 한다. 나의 욕심을 채우지 못한 것에 화를 내기보다는, 즐겁게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지 못한 것에 화를 내야 할 일이다. 팀이라면 '함께 가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지, '최상의 품질을 이루지 못한 것'에 실망해서는 안 된다. 당장 없는 실력으로 안 되는 것에 실망하고 힘들어하기보다는, 그것을 인정하고 천천히 즐겁게 견디며 실력을 쌓아나가는 것이 팀이다.


노부스콰르텟이 수년 동안 팀을 유지하며 실력 있는 콰르텟으로 인정받고 지금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을 보며, 팀의 어려움과 지속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팀이 결성된다는 것은 단지 실력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이 아니라, 함께할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할 사람들이 서로의 목적을 위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팀이 만들어진 후 팀원들을 하나씩 훑으며 실력이 어떻다느니 하며 당장의 산출물을 타박하는 것은 아마추어의 행동이다. 산출물이 없거나 형편없는 품질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견디는 것 또한 리더의 몫이다. 형편없는 품질을 끌어올리겠다고 혼자 밤새워 수정해 보기도 했지만, 그런 방식은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 그것은 팀원들의 책임감과 의욕을 꺾는 행위이기도 하고, 이후에도 리더 혼자서 수정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믿음, 인정, 합의, 공유, 협력, 책임. 이런 단어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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