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얼굴들
사막은 적막했다.
자동차, 바람, 모래먼지.
눈앞조차 분간할 수 없는 흩날리는 모래 속을 우리는 달렸다.
볼리비아의 낮은 GDP, 광활한 국토,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엉성한 호텔.
그 곳에서 맞이한 밤.
별이 쏟아졌고, 은하수가 흘렀다.
별빛의 크기와 고도가 만들어낸 숨 막히는 장면.
나는 그 속에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되묻는다.
젊은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재를 발산한다.
능력, 기회, 자기계발, 즐김.
그 속엔 취하려는 치열함과, 놓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함께 있다.
능력과 경제력은 여전히 삶의 필요충분조건일까,
아니면 그저 부분집합일까.
연령도 배경도 다른 참가자들 속에서 나는 지금, 이중적인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여전히 덜 여문 내 모습,
그 안에 실망과 부끄러움,
그리고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뒤섞인다.
혹시, 나는
나의 미래를 미리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모습은 쓸쓸했고, 때로는 안타까웠다.
한 사람의 삶이 ‘그저 그런 이야기’로 정리되는 순간의 허무함.
‘그래도 잘 살아왔다’는 자부심이
‘그게 뭐 대단하다고’ 하는 허탈한 웃음으로 바뀌는 시간.
열심히 살아온 삶이 한순간 일반화되어버렸다.
그들이 말하는 성공은
멋진 할아버지, 책임 다한 남편.
경제적 여유로 떠도는 쿨함 속에
왠지 모르게 더 짙은 외로움이 깃들어 있다.
나만의 만족이
점점 나를 작게 만들고 있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
나로 산다는 것,
주제를 찾는다는 것,
이 셋은 반드시 ‘=’ 성립하지 않는다.
이제 나는 ‘나이가 든다’는 것을
나만의 언어로 다시 정의한다.
경제적 역할은 충분히 해냈다.
‘생산성’의 관점에서, 나는 조금씩 벗어나려 한다.
이제는 나만의 속도를 받아들일 때다.
나는 ‘나로 산다’는 것을
나만의 언어로 다시 정의한다.
사회적 관계도 충실히 감당했다.
‘관계성’의 틀을 내려놓고,
이제는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주제를 찾는다’는 것을
나만의 언어로 다시 정의한다.
무대의 주인공이었던 시간은 충분했다.
이제는 ‘쓰임 편안한 언어’로,
내 삶을 표현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