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존재 _ 야닉 네제 세갱을 쫒아서

세상의 끝에서

by 딸리아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장소를 향해 가는 여정엔 얘깃거리가 넘친다. 길 위의 크고 작은 사건, 예상치 못한 불상사조차 재미있는 이야기로 바뀐다.


이번 여행의 끝자락에 나를 또 한 번 설레게 하는 일이 생겼다.

1월 15일,

'야닉 네제 세갱'이 이끄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잡혀 있다.


지금 나는 리오 데 자네이로를 포기하고 필라델피아로 향할까 고민 중이다.

고민은 곧 설렘이고, 설렘은 나를 웃게 만든다.

이럴까, 저럴까. 마음이 자꾸 저울질하게 만든다.


우선, 현실적인 조건을 따져보면,

한국에서 야닉 네제 세갱의 공연을 보는 건 정말 어렵다.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내한 공연이다.

티켓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고, 값도 만만치 않다. 최소 100달러에서 300달러까지.

그런데 여긴 다르다. 공연 티켓이 138달러 이하.

비행기 값은 4-500달러로 생각보다 감당할 수 있는 선이다.


문제는 날짜다.

1월 15일.

이과수 폭포 일정이다.

한때는 ‘내 생에 이 폭포를 실제로 볼 수 있으려나’ 했던 곳.

그런데 지금, 며칠 후면 그 꿈이 현실이 된다.

이러니 선택이 어려워진다.

니체의 ‘선택’에 관한 문장들이 떠오른다.

선택은 결국,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야닉 네제 세갱을 처음 본 건 2017년이었다.

그의 지휘를 보며 떠오른 수많은 단어들—열정, 정열… 그런 뻔한 말이 아니었다.

그 순간, 나는 그에게, 그 시간에 온전히 빠져 있었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브먼트, 그 에너지를 기억한다.


그리고 2024년, 그는 다시 한국에 왔다.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와 함께.

그때 그는 더 부드러워졌고, 더 여유로워진 움직임으로 새로운 감동을 주었다.

곡에 따라, 오케스트라에 따라 달라지는 그의 리딩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커튼콜에서 그의 방향만으로도 진심이 느껴졌다.

그의 작은 감사 인사가 관객에게 전해지고, 우리는 환호로 답했다.

그 마음이 고맙고, 예쁘다.


공연이 확정되고, 티켓팅을 하고, 그날을 기다린다.

멀리서 바라보며 음악을 듣고, 그가 음악의 전부인 듯 해석하며 그 시간을 즐긴다.

그리고 다시, 언제 볼 수 있을까 아쉬워하면서 검색을 반복한다.


이게 공연인가, 상품인가. 마케팅인가.

지금 우리는 한 사람이 곧 브랜드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단지 ‘야닉 네제 세갱’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나는 리오에서 필라델피아로 달려가려 한다.


이름을 날린다는 것.

논문을 쓰고, 책을 쓰고, 유튜브를 찍고, 기록을 남긴다는 것.

기록의 방식이 이미 바뀐 지금, 나는 어떤 도구로 나를 기록해야 할까.

지금 이 고민조차, 아마도 나의 기록이 되겠지.


#칠레 파타고니아의 푸에르토 나탈레스(Puerto Natales), 바람의 기념비(Monumento al Vie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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