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의 결, 사람의 틈 _ 모레노 빙하 미니트레킹

세상의 끝에서

by 딸리아

오전 7시 40분.

미니버스를 타고 호텔 몇 곳을 들른 뒤, 대형버스로 갈아탄다.

가이드는 스페인어와 영어로 안내 방송을 하고,

버스는 국립공원 입장권을 끊기 위해 잠시 멈췄다가,

30분쯤 더 달려 화장실에 들른 후, 다시 배로 갈아탄다.


옆자리 사람들은 가족인 듯,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부녀지간일까.

한쪽은 조용히 이해와 사랑을 건네고,

다른 쪽은 투정을 부리다 어느 순간 멈춘다.

이런 관계야말로 ‘둘만의 여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가족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일방적으로 쏟아붓고, 또 받아내는 게 가능할까.


오랜 시간을 함께 해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충분히 모른다.

익숙한 울타리를 벗어나면 자기 통제의 끈이 풀리고,

안전한 테두리를 벗어나면 자기 방어의 끈이 조여 온다.


내 몸을 감싸는 이 긴장된 끈들 속에서,

나는 지금도 여행 중이다.


관계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강은 전략가다.


그녀는 잔혹한 역사 속 인간의 상처를

감정에 기대지 않고,

서사 안에 조용히 녹여낸다.


과잉 없이,

단단한 결로 체화된 고통을

독자에게 천천히 흘려보낸다.


“어떻게 기억시킬 것인가.”

그녀의 문장엔 그 물음이 언제나 배어 있다.


나도 쓰고 싶다.

사람 사이의 감정과 얽힘,

그 미묘한 결들을.


날것의 흐름이 아니라,

정제된 진심으로.

구조와 전략을 입힌 이야기로.




수천, 수만 년의 시간이 만든 빙하는,

묵직하고 단단했다.

햇살과 더위 속에서도

쉽게 녹아내리지 않았다.


그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

나는 찰나의 인생과

‘나’라는 존재의 무상함을 느낀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꼬불꼬불한 얼음길을 오른다.

깊게 갈라진 틈 사이로

시간의 단단함이 드러난다.


크리스털처럼 빛나는 작은 웅덩이,

그 안의 날 것 같은 아름다움.


빙하 언더락 위스키 한 잔으로

트레킹을 마무리한다.


모든 것이 끝났다.


현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을 때,

나는 다시 그들을 보았다.


그들은 부녀가 아니었다.

부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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