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과 책을 보다 _ 비글 해협

세상의 끝에서

by 딸리아

펭귄섬은 비글 해협 속, 우수아이아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에 있다.

여름철(10월~4월)이 되면 마젤란펭귄과 젠투펭귄이 이곳으로 몰려와 번식을 한다.

일부는 섬에 내려 걷기도 한다지만, 우리는 배 위에서 멀찍이 펭귄을 바라볼 뿐이다.


배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소셜 관계가 형성된다.

서로 이름을 묻고, 인사를 나누며.

펭귄을 보러 가는 그 시간까지 사람들은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


나는 ‘체 게바라’에 관한 책을 보고 있다.

그가 필사한 시인들의 시를 따라가며,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예전에 읽었던 남미 시집과도 근원이 닿아 있는 듯하다.

책장을 넘길수록, 오래전에 품었던 생각들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체는 ‘남성성’을 수많은 ‘여자’로 표현했다.

사랑하고, 헤어지고.

배가 들어오고, ‘언제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가듯.

그는 그렇게 살고 싶어 했다.

그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였고, 그의 이야기는 지금도 사람들 사이를 떠돈다.


네루다의 '스무 번째 사랑의 시'를 이해할 수 있었던 사람.

여자와 혁명, 시와 죽음을 말할 수 있었던 사람.

체는 네루다를 좋아했다.


피엘 카스트로는 체를 도덕적인 인물로 평가했다.

체는 시를 사랑했고, 군인으로서의 잔인성을 시로 다스렸다.

전쟁과 혁명 중에도 필사를 멈추지 않았고,

자신과 민중을 중심으로 살았다.

외모, 지성, 심성, 도덕성 모두 인정받았던 그는

여전히 수많은 평전과 이야기로 끊임없이 전해진다.


체가 39세에 전장에서 마주한 삭막함 속에서도,

눈빛 하나로 사살자마저 감동시켰다는 이야기는, 믿기지 않지만, 이야기니까 이해된다.


체가 부모에게 쓴 편지에는,

자식으로서의 도리와 진정성, 사명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기서 살아나가면 당신 같은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도록 애쓰겠다’

이런 말을 부모에게 할 수 있다니.

체의 ‘삶을 살아내는 이유’는 너무도 명확했다.


어떤 이들은 체를 예수에 비유하며,

십자가 대신 그의 사진을 걸어두기도 한다.

그들은 체가 걸어간 여정을 이해하고,

그 여정에 기대어 자신들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우리는 살아간다.

살아간다는 건, 결국 살아내는 것이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버티는 것,

그것이 삶이다.


우리가 말하는 이 더러운 세상을 더 살고 싶어 했던 누군가는

그 자손들이 이 더러운 세상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지금 이곳, 펭귄섬 한가운데 선 나는,

그가 남긴 어떤 힘에 기대어

오늘도 조용히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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