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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린 Mar 20. 2022

스위스에서 내가 얻은 것과 잃은 것

학사와 건강

먼저 스위스에서 내가 얻은 것은 학위다. 학위를 목표로 간 것이니 초기 목표는 달성했다. 내가 다닌 학교에서는 그 학교만의 학위는 전문대 학위까지였고 학사는 영국의 학교와 계약을 맺어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다. 마지막 1년은 영국의 대학 교수들이 와서 직접 수업도 진행하고, 논문도 쓰고 통과하면 학사를 받는 것이었다. 학교 생활 1-2년은 꽤 즐겁게 할 수 있었다. 수업도 크게 어려움을 느끼진 않았고 실습도 있었기 때문에 재밌게 했다. 그런데 왠걸?! 마지막 3학년은 너무 맞지 않았다. 정말 매주 제출해야했고 분량도 그 전에 비해 2-2.5배는 늘어났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껴있는 시험까지. 이 중에 하나라도 통과하지 못하면 3학년을 반복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생활은 불규칙의 끝을 달렸고 수업시간는 졸려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1-2학년 땐 기본적으로 8시부터 수업을 시작하거나 아침 실습이 있는 경우는 아침 6시에도 시작하는 날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3학년 땐 수업이 그렇게 까지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업하나 참여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 정도였다. 과제하나 제출해야 하는 날이면 마지막 날엔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24시간 내내 과제를 작성했던 것도 아닌 것이 문제였다. 그냥 딴 짓을 할 뿐, 막상 정말 쓰고 있던 시간은 정말 얼마되지 않았다. 기숙사 방밖으로도 거의 나가지 않았고 거의 매일 콜라만 마셔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산책이라도 나갔으면 참 좋았을텐데 왜 그랬나 싶기도 하다. 같은 학년의 언니 오빠들도 끊었던 담배를 피우던 사람도 있었고 피부가 뒤집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학교에서 보이던 풍경

거의 물 대신 콜라를 마시곤 했는데 그러다보니 많이 먹게 된 건 바로 맥도날드였다. 어찌나 맥도날드를 먹어댔는지 지금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였다. 학교에서 제공되던 음식은 건강하게 먹고 싶다면 충분히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그렇지 않아서 물과 오렌지 주스가 제공되면 거의 주스만 마시곤 했다. 스테이크에는 소스를 듬뿍 뿌려 먹고 버터도 듬뿍 올려먹었다. 특별한 노력없이 항상 마른 몸을 유지하던 나는 살도 엄청찌기 시작했다. 앞자리가 무려 두 번이나 바뀌었다. 그리고 생리를 언젠가부터 안하기 시작했다. 건강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데다가 귀찮아 죽겠는 생리를 안하니 사실 좋았다.. 그만큼 무지했고 살이 찌니 피부는 왠걸 더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겨우겨우 졸업을 하고 한국에 귀국을 했다. 실제로 이때 겨우 졸업하고 나니 다시는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아졌다. 




비행기를 10시간 넘게 타도 붓지 않던 다리가 복숭아뼈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탱탱 부었다. 슬리퍼를 신고 나갔는데 발이 너무 부어 발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마중나온 엄마는 날 첫 눈에 알아보지 못했고 알아보고 나선 심각한 얼굴로 살찐 건 둘째치고 뭔가 이상해보인다며 병원에 가자고 했다. 동네 내과에 피검사를 받으러 갔다. 며칠 뒤 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결과를 들으러 갔더니 큰 병원을 가보란다? 갑상선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그리운 스위스 기차


생리 안한다고 걱정보다 좋았던 무지한 나에게 갑상선 항진증은 외계어 수준이었다. 당시 난 이미 외국 호텔에 매니지먼트 트레이니로 취업까지 된 상황이었고 비자를 위한 서류를 제출하기 직전의 단계였다. 큰 병원에서 한번 더 검사를 하러 갔는데 기본적으로 하는 혈압검사에서 수치가 엄청 높게 나왔다. 당시 내분비내과는 2층이라 엄마와 나는 걸어 올라갔는데 간호사 분은 뛰어올라왔냐며 1분 쉬었다가 다시 재보자고 하셨지만 그래도 같은 수치가 나올 정도였다. 의사선생님은 해외에 당장 나가는 것은 미뤄야겠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도, 공부도 하지말라고 했다. 가만히 있는데도 심장이 1분에 170회가 넘게 뛰었다. 지금은 운동을 조금씩은 하는 사람으로서 분당 170회의 심박수란 내가 현재 러닝을 할 때 최고치를 찍는 횟수다. 갑상선 항진증 자체는 몸으로 ‘아프다’는 느낌을 받지를 않아서 그런지, 당시 내가 또 워낙 아무생각이 없었어서 그런지 ‘그렇구나’하는 정도였는데 한참 지나고 나니 아찔하다. 


스위스발 한국행 마지막 비행기표


대신 또 이 경험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건강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는 것이고 운동을 자발적으로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약을 그만 먹기 시작한지 이제는 10년이 다 되가는 이 시점 나는 매우 건강하다. 다만, 절대로 그 때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과 두려움은 있다. 그런데 그 정도 두려움은 가지고 살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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