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4편> 너는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
봄이 끝나가는 어느 5월 밤, 네가 근무를 끝냈다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너는 우리가 함께 알고 지내던 사람 중 너를 잘 따르던, 남자아이를 만나 술을 마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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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 아이를 알기 때문에,
그 자리가 경계가 안 되는 것이 아닌 오히려 경계가 된다. 나랑도 꽤나 친하게 지내는 사이인 그 남자아이는, 평소 나와 술을 마시면 둘 다 무식하게 마시고 취하곤 했다. 그래서 사실 네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네가 그 사람을 탐탁지 않아 한 게 아니라, 내가 그 아이와 술자리를 갖는 것을 싫어했다.
그 아이는 우리가 연인이라는 사실을 몰랐는데, 괜스레 그 아이가 널 맘에 두는 것만 같다. 너에게 플러팅을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그 아이가 평소 이상형을 이야기할 때 들어보면.. 그게 너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몇 달 전 네게 그 이야기를 했을 때, 너는 전혀 신경도 안 쓰는 듯이 시큰둥하게 무시했다.
사실 나는 반 오버한 것도 있기도 했고, 네가 진짜로 관심이 없어 보였기도 했으며, 그 아이가 어떻든 간에 네가 쉬운 다른 데 가서 허튼짓할 것 같지는 않았어서 그다지 걱정되지 않았다.
근데, 단 둘이 술자리를 가진다고 하니.
네가 아니라 그 아이 때문에 걱정이 된다. 하지만 할 말은 없었다. 나도 이성친구와 단 둘이서 술을 마신 적이 몇 번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할 말 없이 그렇게 너를 술자리에 보냈다. 나는 오늘 당직이어서 근무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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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연락이 안돼?’
‘아무리 내가 아는 아이여도, 걱정될 수 있잖아.’
‘연락해.’
중간중간 너에게 연락해 보지만 네가 연락을 주지 않았다. 한숨을 푹 쉬었다. 근무 시간에 휴대폰을 잘 보지도 않는 데, 애가 탄다. 일하다가도, 움직이다가도 휴대폰을 들여다보지만 나의 연락들에는 네가 읽고 답이 없거나 읽지를 않는다.
‘이 친구랑 있어서 휴대폰 못 봐.’
너에게 간신히, 새벽 세시쯤 연락이 왔다.
‘그래도 연락해 줘야지. 얼마나 마셨어?‘
나는 재빠르게 답했다. 네가 빼도 박도 못하게 내 연락을 읽어버리게 해야 답장을 할 것 같다.
‘왜? 넌 괜찮은 줄 알았지. 신경 안 쓰는 줄 알았는데.‘
너에게 답장이 왔다. 이거, 복수인가? 머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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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당직일을 마치고, 8시쯤 집으로 향했다. 너에게 추가적으로 와있는 연락이 없다. 너는 의도적으로 읽고 답장하지 않는 것 같았다. 몇 달 전 네가 술자리에서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셨음에도, 그 무의식 중에도 내게 연락을 했었는데 지금 이렇게 읽고 답을 안 하는 것은, 네 성향상 의도한 바일 것 같다.
일단.. 그럴 정신이라도 있다는 생각에 안도해야 하나-. 혼란스럽다.
도어록을 열고 들어가자, 네가 보이지 않는다.
폭발한 나의 감정으로 네게 전화를 걸었다. 네가 옆에 누가 있든, 우리가 비밀연애를 하지만 그 친구가 네 이름을 보든 말든. 난 지금 미쳐버리겠다.
하지만 네가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는다. 두 번째 전화를 걸고 오랜 시간 신호음이 울리고 그제야 너의 작은 음성이 들려왔다.
‘여보세요?’
“야. 왜 없어.”
‘옆에 있어서 통화 길게 못해. 금방 갈 거야. 피곤할 텐데 먼저 자.‘
나는 애가 탄다.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은, 네가 만취상태는 아니라는 것.
“언제 올 건데. 도대체 몇 시까지 마시는 거야. “
‘금방 가. 끊어, 끊어.‘
네가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황당한 마음, 상처받은 마음-
머릿속에 노이즈가 가득 차는 기분이다. 나는 침대 매트리스 위에 멍하니 앉아 너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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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가량이 지나 네가 돌아왔다.
너는 운동복 차림이었는데, 내가 가장 좋아라는 운동복이었다. 화장을 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인지, 눈이 간지러워 눈을 긁다가 그렇게 된 건 지. 너의 눈화장이 희끗희끗 지워져 있다. 네 맨 얼굴은 나만 볼 수 있는 거였는데. 기분이 좋지 않다.
“왜 이제야 와? 뭐 했어 지금까지?”
“뭘 뭐 해. 술 마시고 왔지.”
“왜 이렇게 늦게 와. 단 둘이 마시러 가서.”
“너도 이 친구랑도, 다른 사람들이랑도 밤 새 술 마시고 연락 안 되잖아. 그래서 내가 그래도 신경 안 쓸 줄 알았지.”
“아무리 그래도 걔도 남자잖아.”
“너는 여자랑 술 안 마셨어?”
“단 둘이서 마셨잖아.”
“내가 너처럼 연락이 두절이 되길 했어? 아니면 플러팅 할 사이였어? “
“.. 그래도.”
분명 내가 화가 나있는 상황인 건데, 네게 말리고 있다.
“어때 기분이?”
“뭐가?”
“가서 연락도 안되고, 옆에 사람이 볼까 봐 연락 못한다, 그런 핑계나 대고, 늦게까지 술 가득 취하니까 어떠냐고.”
“.. 별로야. “
“심지어 나는 예전에 회식 때 남자친구 있냐고 해서 노코멘트한다고 얘기해서 적어도 얜 내가 남자친구 있는 걸 알아. 근데 너는? 다 없는 척 속이고 마시러 가서 연락 두절되잖아.”
“.. 그래도 허튼짓 안 하고 집에 들어오잖아.. “
나는 괜스레 억울했다. 지금 누가 봐도 내가 화가 나야 하는 상황 아닌가? 그리고 나는 결론적으로 너에게 잘못한 건 없지 않나. 바람을 핀 것도 아니고, 집에 잘 들어왔는데, 늘.
“나는 뭐 허튼 짓해?” 억울하단 생각도 잠시, 그 얘기를 듣던 너의 눈가가 그렁그렁하다.
“너는 가끔 다치니까..”
“..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잖아..”
네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눈에서 눈물이 투두둑하며 흘리다 엉엉 울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무슨 일이 있고 없고 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방 마음이 불안하지 않게 배려해 달라는 거잖아.. 여태껏 네가 그 불안함을 느낀 적이 없어서.. 그래서 안 고쳐지는 것 같아서, 일부러 네가 나한테 한 행동 그대로 한 거라고.. “
네가 그냥 취해서 연락 안 되어 놓고, 내가 화낼까 봐 미러전이다 역지사지다 핑계 대는 것 아닌가? 그래도 괜찮아. 너니까. 이해할 수 있어.
너는 내 표정을 보더니 작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너의 가슴팍을 꾸기다 테이블 위를 주먹으로 쳤다.
“너무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아. 왜 역지사지를 느껴보라고 똑같이 행동해도 느끼지 못해..”
그러다 너는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나는 네가 내 마음을 진심으로 알아줄 때까지, 계속할 거야.. “ 너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이야기했다.
“알겠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나도 기분 나빴어. 안 그럴게. 너도 그러니까 그러지 마..”
괜찮아. 넘어갈게. 그러니까 울지 마. 난 널 이해할 수 있어. 사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