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쓰기

사람은 고쳐쓰는거 아니야

by 아빠 민구


주전자 고쳐쓰기

생도 때 맛을 들였던 드립 커피가 생각나서 고성에서 군생활을 하면서 커피에 입문했다. 다양한 생두를 구해다 로스팅, 그라인딩하고 핸드드립을 포함한 다양한 방법으로 커피를 만나기 시작했다.


당시에 샀던 주전자를, 어제 떨어뜨렸다. 그리고 주전자가 바닥에 닿는 순간 손잡이가 저리로 날아가 버렸다.


"9년 썼으니 이제 바꿀 때가 된 건가"라는 절호의 구매 찬스를 잡았다고 생각했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순간접착제로 붙여보니 너무 강력하게 붙어버렸다.


이렇게 해서 주전자를 고쳐 몇 년 더 쓰게 되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야

주전자를 고쳐 쓰다가 같은 사무실 옆 자리에 앉은 '인간'이 생각났다. 이 인간은 술을 워낙 좋아하는지 꿀벌처럼 매일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며 술을 마신다.


주량껏 먹는 거야 뭐라고 할 일은 아니지만, 술 마시고 와서 오전 내(혹은 종일) 숙취에 시달리거나 자다가 일어나서 컵라면을 먹고 골동품 경매 방송을 본다. (소리를 크게 틀어놓는 게 포인트)


그것 말고도 밉상인 행동들이 많지만, 우선 저 모습에서 참 조직에 피해가 많다. 여러 차례 경고성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교정되지 않았다. 한 조직에만 20년 넘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업무와 현황 파악에 정통하지 못한 그 사람.


난 그 사람을 고쳐보려 했다. 난 열정이 있었으니까. 열정은 전염시킬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몇 차례 부딪쳐 보고서 생각했다. "답이 없는 사람이구만"


애초에 자기 방식대로 업무를 해왔던 사람을 내가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 사람은 업무에 정통하고 열정을 쏟는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형님 동생'관계를 맺은 다음, 일이 생기면 아는 형님과 동생들에게 전화를 걸어 일을 해결하는 식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그와 대화를 해볼수록 내가 바꿀 수 없는 [고정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맞는지, 그가 맞는지, 둘 다 틀린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도 국민의 세금으로 녹봉을 받는 군인으로서, 동시에 성실하고 투명한 납세자로서, 최소한 내 세금이 그런 식으로 쓰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갈등의 점화

더 화가 나는 것은, 나는 정신없이 바쁘게 일을 하고 있는데 술이 덜 깨 경매 방송을 보고 있는 그 모습에 더해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나에게 부탁하거나 전가하는 식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원래 [거절]에 부담이 없는 나는 매번 단 칼에 거절을 했으나, '그 사람' 입장에서는 나이도 어리고 군생활도 더 짧게 한 '내'가 '그까짓 것 하나 못해주나'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은 저녁마다 꿀벌이 되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에 대한 험담을 하고 다녔고, 열이 받은 나는 공공연하게 그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리고 갈등이 '점화'되었다.





말싸움

나에게 "너무한 거 아닙니까"라고 따져 묻는 그에게 몇 가지 사실을 나열하니, 그는 더 열폭을 한다. 마치 내가 잘못을 하고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말싸움을 하기로 작심한다. 그리곤 다양한 팩트를 언조와 표정을 버무려 쏟아내었다. 10여분 간의 일방적인 공격이 끝이 나고, 그 사람은 "말 안 하겠습니다"하고 입을 닫았다.


원래 살면서 거의 져 본 적이 없다. 말싸움은 논리도 논리지만 기세가 반영되는데, 전혀 위축되거나 긴장하지 않는 성격에다 목소리까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객관적으로 잘잘못을 따졌을 때 전혀 불리한 점이 없었다.


이제 상급 지휘관의 개입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그는 사무실에 출현하지 않고, 나는 일이 늘었으나 더 편하게 일하고 있다. 아마도 그는 팩트로 맞는 자리가 좀 아픈 모양인지 며칠째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출근 이후에 사라졌다가 퇴근 즈음 나타나서 컴퓨터를 끄곤 집에 간다.





갈등의 관리

조직의 갈등은 풀고 가는 게 정석이지만, 가끔은 기강을 유지하기 위해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고, 이것 역시 하나의 갈등 관리라고 생각한다.


소통을 통해 서로가 양보하고 합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경우에 그렇다. 꼬인 매듭을 풀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들이고 속을 썩이고 결국엔 해결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단 번에 싹둑 잘라 버리는 편이 낫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던데, 이런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 사람이 주전자 만도 못한 것인지 생각해봤으나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주전자처럼 고쳐지면 물이나 따르는 용도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비가 내리고 내리고 내리고 내리다 이대로 세상이 끝나지 않는 것처럼. 언젠가는 비가 그치고 하늘은 더 맑은 파란색을 보여주게 되어있다.


보란 듯이 비가 잠시 멈추고 파란 볼을 보여주었다.

(산 머리에 휘핑크림 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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