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의 전쟁 같은 매일이기 때문에, 비단 군인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제시할 수 있는 한 조각 피칸파이 같은 생각을 드립니다.
맛있게 드세요.
든 생각
군인은 많다. 무려 50만이 넘고 매년 전역하고 새로 입대한다. 군인이거나 군인이었던 모든 사람을 합하면 온 국민의 1/3은 되지 않을까?
그렇게 많은 군인들 중에 군인을 꼽으라면 누가 될 수 있을까. 가장 높은 계급으로 진급한 4성 장군일까. 혹시 자기 자리에서 정말 맡은 바 역할을 다 하고 있는 이름 모를 소령이나 중사 중에 진짜 군인이 있을까.
흔히 [참군인]이라고 한다. 진짜 군인다운 사람 말이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하면서 당연히 군인도, 군대도 변하고 있다. 진정한 군인을 누구로 지칭하느냐의 문제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것은 5년여 전부터이다. [병영문화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군대 내 문화가 급진적으로, 또 획기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 주목받고 있는 90년대생이 밀물처럼 입대를 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까라면 까
"까라면 까- 인마"라는 말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군대라는 조직에서 암묵적으로 '군인 다움', '남자다움'으로 포장되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하던 일들에 대해 물음표가 붙었다.
새로 밀려든 90년 대생들과 시대적 요구, 불미스러운 몇 건의 사건으로 촉발된 [병영문화 혁신]은, 그렇게 지금까지 당연시되었던 문화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다시 접근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과학기술과 무기체계의 진보에 따라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다는 것은 병영의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 가장 합당한 근거가 되었다. 바뀌지 않으면 이길 수 없고, 이길 수 없으면 존재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바뀌어야만 했다.
하지만 2007부터 생도생활을 시작했던 나 조차도 (더 선배들이 보셨을 때는 '요즘 것'에 속하겠지만) 새로 들어오는 군인들에 대한 적응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젊은 꼰대였다. 모든 행동이 못마땅하고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군의 가이드라인과 지침에 따라 새로운 문화에 따갈 수밖에 없었다.
절대복종
육군의 군인들이 아침저녁으로 점호 때마다 외치는 [육군 복무 신조]에는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한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절대'라는 단어가 빠졌다. 상관의 명령이라고 무조건 배를 깔고 받들지 않게 된 것이다.
즉, 명령에 대한 수행에서 수명자가 '사고'라는 과정을 거쳐 행동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그렇게 기조가 바뀌고 5년 여가 지난 가운데, 가장 말초 단계의 실무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현상은 일상적인 '말대꾸'가 생겼다는 것이다.
초급간부나 병사라고 해서 바보처럼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 이미 학력 수준이나 지적능력이 과거에 비해서 현저하게 높아진 군인들은 '자신의 생각'을 임무에 투영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명령의 논리가 약하거나 그 논리에 대한 전달력이 떨어지는 경우 역풍에 직면하게 되는 상급자들이 생겨났다.
추풍낙엽
찬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는 것과 같았다. 시대에 맞춰 생각하지 못하는 군인들에게는 자의든 타의든 '전역'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단 나이가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형성된 '꼰대 문화'는 젊은 초-중급 간부들에게도 장착되어있었고, 그들은 낙엽이 되었다.
바뀐 날씨에도 견딜 수 있는 적응력 있고 유연한 군인들이 침엽수처럼 살아남았다. 내가 존경하는 A 중령님도 본인은 혁신 이전의 군 문화 속에서 20년 넘게 군생활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새로운 흐름에 올라타셔서 혁신적인 생각으로 군생활을 하고 계신다.
시대가 바뀌었다. 사람도 무기도 바뀌었고 전략과 전술도 바뀌었다. 그렇게 침엽수 같은 군인들은 [구식이 되어버린 군 문화]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문화] 속에서 군생활을 이어가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정말 군인
그렇게 적응해나가는 군인들을 보면서 존경심과 함께 "[참군인]은 누구일까"라는 자문을 하게 된다. 예전처럼 '까라면 까는 사람'이 참군인이 아니라는 것은 명확해졌다. 그렇다고 자기 생각만 내세우는 사람도 당연히 참군인이 아니다. 조직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술을 잘 마시고 축구를 잘하는 군인도. 혹은 (물론 외적 자세는 매우 중요하지만) 군화를 번쩍번쩍 닦고 경례자세를 완벽하게 하는 사람도 군인다운 군인의 조건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앞에서 말한 조건들을 가지고 있지만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전쟁에서의 승리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필요가 있을까. 결국에 중요한 것은 '살아 남고', '싸워 이길 수 있는'사람이 가장 군인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직접 해본 것은 아니지만, 전사를 공부해보면 전쟁은 마찰의 연속이다. 언제나 계획을 세우지만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다'에 가깝다. 그 계획이 구체적이고 많을수록 마찰은 더 커진다. 그 마찰 속에서 순발력 있게 대처하면서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전쟁을 승리고 이끌지 않을까.
이런 것들을 생각해 봤을 때, 군인다운 군인은 '변화에 적응하고 승리에 집중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그때 떠오른 한 마디가 있었다. 육사 졸업을 앞두고 있는 어느 마지막 수업. 전역을 앞두고 계신 한 명예교수님께서 우리 전공생도들에게 당부의 말씀으로 한 가지를 강조하셨다.
Agility
교수님은 '애자일'한 군인이 되라고 하셨다. 딱딱하기만 하게 4년 동안 수련된 생도들에게 Agile 한 군인이 군에 필요하다고 역설하셨다.
'민첩함', '재빠름', '영민함'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Agility]는 수많은 마찰을 넘어 군인을 승리로 이끄는 '열쇠'같이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육사에서 4년간 튼튼한 집을 짓고 멋지게 인테리어를 하고 전기와 수도와 가스를 연결했는데, 그 마지막 출입문에 대한 열쇠를 받은 느낌이었다. 당연히 그때는 몰랐다. 그때는 흘려들었다.
유연하고 기민하고 민첩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면, 군생활을 하면서, 전쟁을 하면서,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너울 속에서 좌초되어 가라앉을 것이다. 그렇게 가라앉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지자 [Agility]가 확실히 군인다운 군인을 찾아내는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래서 누구
기준이 설정되었다. 이제 그 기준으로 누가 가장 군인다운 군인이고 참군인인지 가려내기만 하면 될 일이다.
유명한 군인 들을 머릿속에서 한 장씩 넘겨보았지만, 피상적으로 자서전이나 몇 줄 읽고서는 그들의 성격이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내 고민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다음으로 동기나 선후배들을 그려보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훌륭한 사람들은 정말 많았지만, 딱히 기준에 적합한 사람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후배 한 명이 떠올랐다. 쉽게 생각하고 쉽게 적응한다. 상급자에게도 거침없이 의견을 개진한다.(때론 '뜨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눈이 땡그래 질 정도로 발언을 한다) 그 친구가 떠오르자, 고개가 끄덕여졌다.
앞에서 설정한 기준에 따르면 기민하고, 민첩하고, 순발력 있는 그 후배가 참군인이다. 그 참군인은 곧 전역을 앞두고 있는데, 자신의 그런 Agility가 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직까지 혁신이 완성되지는 않았나?
그렇게 참군인이 선정되었다.
전역이 결정되었고 말을 거침없이 하지만 눈치가 빠르고, 할 땐 하는 후배. 좀 웃기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전쟁이 났다고 생각하니 또 이런 친구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개똥철학도 일리가 있구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