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계속되는 훈련으로 글을 못쓰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예전에 [병영문학상]에 응모했던 글이 입선하게 되었습니다
겨우 입선이지만, 어딘가에 응모해서 처음 받아본 타이틀이라 공유하고 싶어 올립니다.
올해 병영문학상
단절, 단결
경험해보지 못한 일상의 불편함
우스갯소리로 “2020년은 코로나가 먹었어”라는 말이 떠돌고 있는데, 웃으라고 하는 소리에 웃음이 나오지 않는 것은 코웃음 치던 우리가 아직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는 우리의 모든 행동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사고와 감정의 자유까지 박탈하였다. 감염병에 뒤따르는 우울증과 갈등은 질병의 치사율을 뛰어넘는 위력을 발휘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접촉과 대면을 바탕으로 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눈을 마주 보고 신뢰를 쌓아왔다. 하지만 눈이 녹고 봄이 오면서 우리가 알던 모든 규칙이 바뀌었다. 누가 감염되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만들어나가기 어려워졌다. 안전에 대한 욕구는 사회적 욕구보다 한 뼘 더 높은 그곳에 있었나 보다. 사회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감염되었다. 내가 마주해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모든 일상이 불편해졌다.
초반에는 군대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모두 혼란스러웠고 뭐가 뭔지 정확한 상황 파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당장에는 부하들의 불만과 실망이 쏟아져 나왔다. ‘다음 주’만 바라보며 휴가 준비를 하던 많은 이들의 마음이 무너졌다. 그래도 ‘1-2주 정도 연기'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던 것이 낭패였다. 용사나 간부를 가릴 것 도 없었다. 모두의 이야기였다.
심리전의 전선에서 파구가 형성되며 전열이 흐트러졌다. 이번 주였던 것들이 다음 주가 되었고, 다음 달이 되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그리고 그게 가을까지 와 버렸다. 이제는 '보통'의 상황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것들이 점점 익숙해져 가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새로운 보통의 것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속에서는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자꾸만 과거를 돌이킨다. 걸음이 떼이지 않는다.
당장에 모든 부대 일정이 바뀌고, 기본권이라고 생각되었던 다양한 것들이 통제되기 시작하면서 혼란은 고립감과 답답함으로, 그리고 또 좌절과 불안감으로 모습을 바꾸며 엄습하기 시작했다. 그 끝을 모르기 때문에 더 곤란하고 예민해져 갔다. 적진에서 안갯속을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었던 우리에게 새로운 적은 교묘하고 조용하게 포위망을 좁혀왔다.
옆에 있는 누군가가 사래가 들어 기침이라도 할라치면 모두들 긴장했고, 기피했으며 불안해했다. 단 한 명이라도 확진자가 생긴다면 지금의 제한적인 자유마저도 모두 멈춰서 버릴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에서 긴장감이 돌았다. 위축이 거듭되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우리 부대를 포함해 대부분의 군인들은 훈련과 병영생활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제대로 된 훈련을 못한 지 몇 달이 흘렀는지 모른다. 사기도 떨어지고 전투력도 떨어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 무겁고 비슷한 하루하루들이 모여서 쌓여가고 있었는데, 사실은 '우리가 새로운 전투를 하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전투
전장이 바뀌었고 적이 추가되었다. 방역을 위한 각개전투가 시작되었다. 총성 한 번 없었지만, 각개전투뿐 아니라 총동원령이 선포된 것과 같이 모두의 전쟁이 되었다.
외부로의 출입이나 외부인과의 접촉이 철저하게 관리/통제되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바깥으로부터 바이러스의 유입은 대부분 저지되었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위생과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등의 생활 에티켓은 기본 예의 아닌 군사작전이 되어가고 있었다.
모든 시설의 방역 책임자가 지정되었고, 손 소독제와 위생 체크리스트가 붙었으며, 수시로 소독과 환기가 이뤄졌다. 확실히 우리 책임지역 내에서는 바이러스가 생기기 어려운 환경설정이 된 것이 분명히 보였다.
전장과 적이 새롭게 세팅된 환경에서, 지휘관을 구심점으로 세심한 환경설정이 반복되었다. 코로나 사태 발발 직후에 하달되었던 두쪽 짜리 단순한 지침은 이미 세분화와 구체화를 반복하였고 오류를 개선하며 수십 쪽짜리 야전교범이 되어가고 있었다.
교범대로 되지 않는 우발상황에 대처할만한 전술적 지식과 전투 경험도 충분히 축적되고 있었다. 뉴스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K-방역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물론 군대도 그 일부겠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군도 성공적인 방역작전의 8부 능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한쪽 팔에 태극기를 달고 국가대표 격 방역을 하고 있었다.
우리만 모르는 사실
이런 철저한 방역으로 지금까지 우리 부대에서는 단 한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우리의 능력과 상황을 이해하는 사람은 우리 안에는 없었다.
발 앞에 놓인 끊임없는 전투를 수행하는 군인이 몇 미터의 땅을 점령했는지 줄자로 재고 있지 않는 것처럼, 포탄이 떨어지는데 도대체 몇 발이 떨어졌고 몇 발을 피했는지 헤아리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성과를 계산하며 따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눈 앞에 놓인 적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내가 '우리의 현실'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전 일이었다. 코로나로 걱정하고 있을 부하들의 부모님들을 안심시켜드리기 위해 이따금씩 돌리던 전화에서 한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그래도 군대가 제일 안전하잖아요. 아들은 크게 걱정 안 합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부대가 제일 안전했다. 코로나 이후 7개월, 울타리 안에서 아직 단 한 명의 확진자가 없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지휘관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지휘, 군수보급체계의 우수함, 끊임없는 방역 관련 지침의 구체화, 모두의 실천 노력이 합쳐진 결과였다.
단 한 번도 마스크나 손소독제가 떨어진 적이 없었고, 방역 관련 물자들은 언제나 적시에 적절하게 보급되고 있었다. 환절기가 두 번이나 지나고 있지만, 그 흔한 감기환자조차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모두가 건강했고 평화로웠다.
외부로의 출타는 여전히 다소 제한되었지만, 오히려 그렇게 해서 생겨난 여유와 평온함 속에서 망중한을 찾는 장병들이 생겨났다. 90년대생과 함께 밀물처럼 몰려들었던 개인 주의화되었던 군대에 다시 사람 사는 소리가 들려왔다.
퇴근 후 술자리를 갖던 간부들은 부대에서 부하들과 수시로 삼겹살 회식을 하거나 단결활동을 했다. 주말에도 함께 공을 차거나 체육활동을 했다. 외출 외박을 나가서 PC방이나 노래방으로 향하던 용사들의 발걸음은 부대 내 서원이나 북카페로 향했다.
단절에서 단결로
단절로 인한 많은 어려움과 제한사항들이 생겨났고, 새로운 환경과 규칙 속에 스트레스가 생겼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비단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병으로 인한 변화가 아니더라도 군대라는 조직은 주어진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늘 새로운 환경과 조건 속에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은 로마 본토를 공격하기 위해 코끼리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었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괴멸 수준의 수군을 이끌면서도 수많은 해전으로 왜군을 대파했다. 6.25 전쟁에서 난 생처음 T-34 전차를 마주한 선배 전우들은 수류탄과 박격포탄을 들고 육탄으로 전차를 저지하기도 했다.
모두 다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환경에서, 특히 어렵고 제한되는 여건 속에서 이뤄냈던 성과들이었다. 군대가 원래 그런 집단이다. 수많은 마찰과 변수들이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임무를 달성해내어야 하는 조직이다.
우리가 2020년에 만난 코로나와 그로 인한 모든 것으로부터의 '단절'은 우리에게 새로운 작전을 부여한 것이다. 그 작전에서 우리는 '유사시를 대비한 전투력 보존'이라는 임무를 훌륭히 달성하고 있다.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단절을 극복하고 내부적으로 더 공고해질 수 있는 '단결'을 이뤄내고 있다.
혹자가 우려하는 것과는 다르게 전투력과 사기는 떨어지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단순히 야외 전술훈련 한 번, 전술행군 한 번 덜 했다고 군대가 못쓰게 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단절을 넘어서서 단결하고 있으니, 이다음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또 한 번 극복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매일매일의 작은 승리들을 이어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해야 한다. 지금처럼 함께 힘을 모으고 단결해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힘차게 붙이는 경례구호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오늘도 기분 좋게. "단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