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장 54+

by 아빠 민구



내 군생활은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했다.


소초장 1년을 마치고 나서 대대 군수장교를 했었는데, 당시에는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던 시절이었고, 인권이네 기본권이네 하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바쁠 때는 하루 300통 넘는 전화통화를 한 적도 있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oo과장이라는 사람은 주변에 있는 나 같은 중-대위들에게 하루 종일 욕을 퍼붓기 바빴다. 당직근무는 중위 세 명이서 평일 근무를 돌아가며 섰는데, 셋 중에 하나는 휴가를 가는 날도 있고 하다 보면 일 년 내내 한 달에 8-9번 당직근무를 섰다. 당연히 근무 취침 같은 건 없었고, 그냥 점심시간에 10분 정도 자는 게 전부였다. 그 10분 마저도 확보하기 위해 밥 먹으러 뛰어가서 마시듯 밥을 먹고 부대 내 독신숙소에 가서 10분 허리 펴고 눈을 감고 있다가 또 부리나케 뛰어서 사무실로 올라오는 상황이었다.


당시 체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는 버틸 수 있었지만, 누군가의 지시와 통제 속에서 자율성 없이 '소모'되고 있다거나 '오용',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군수'업무 자체가 나의 성향과는 너무도 맞지 않았기 때문에 속으로 다짐 또 다짐했다.

"앞으로 군수업무는 하지 말아야지! 군수를 떠나서 참모는 하지 말아야지!! 앞으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지휘관'만 했으면 좋겠다!!!"

물론 내 생각이었으니 그대로 될 이유는 없겠지만, 신기하게도 그 뒤로 참모는 한 번도 안 하고 계속해서 지휘관만 이어갔다. 심지어는 교육기관에 가서도 학급장을 하는 등 마치 참모를 못하게 되는 마법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중대장 54개월은 시작되었다.


밖에서는 어떻게 볼지 모르겠다. 군대가 편하다거나, 할 일 없으면 군대에서 말뚝이나 박으라고 한다거나, 군대는 무슨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고, 철밥통을 가진 사람들이 온갖 나태와 비리를 일삼는 그런 곳으로 비치는 것일까. 다들 군대에 가는 병사들은 걱정하지만 그 병사들을 데리고 있는 직업군인들에 대한 걱정은 듣기 힘들다. 하지만 실제로는 교권이 무너진 것과 마찬가지로, 일선 지휘관들은 업무 부담과 더불어 병력 관리에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다. 부대에 있는 동안, 모든 책임이 지휘관에게 쏠리기 때문이다.


당장 내 애 둘 키우기에도 벅차다는 생각이 들지만, 100명이 넘는 중대원과 20명이 넘는 간부들을 책임지노라면, 정말이지 단 하루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다. 손 베이는 놈, 차사고 내는 놈, 대포통장 사기당하는 놈, 축구하다 발목 다친 놈,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고 울고 있는 놈, 서로 싸우는 놈, 과식으로 배탈 나는 놈, 외출 나가서 술 마시는 놈, 머리 안 자르겠다고 버티는 놈, 방독면 잃어버린 놈, 몽유병으로 밤마다 사라지는 놈, 햇빛 알레르기 있는 놈, 맨날 감기몸살이라고 누워있는 놈, 행군 시작하자마자 배 아프다고 하는 놈, 힘들어서 죽겠다는 놈, 심지어는 죽으려고 시도하는 놈 등등등..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압박감 속에서 중대장 직책을 수행한다.


늘 머리맡에 휴대전화를 두고 자는 나를 두고, 아내는 잘 때는 휴대폰 좀 저 먼치 치우고 자라고 하지만, 언제 무슨 전화가 걸려올지 모르는데 그게 그렇게 마음 편하게 되는 일은 아니다. 남들은 18개월, 한 번만 하기도 하는 중대장을 그렇게 세 번이나 하면서 54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사관학교에서 배운 가치와 시대에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지나온 시간들이었다. 큰 사고도 없이, 또 좋은 성과도 거두며 지나갔던 세 번의 중대장 임무수행을 통해 나 스스로도 많이 배우고 느끼고 깨닫게 되었으니, 정말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야 그 무거운 녹색의 견장을 떼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그 초록색 헝겊조각을 떼어내자 "휴-" 한 숨이 찬찬-히 삐져나왔다. 그렇게 이젠 한 발치 떨어진 책상 위에 전화기를 올려두고 마음 편히 잠이 들 수 있게 되었다. 불필요하게 평소부터 날카롭게 곤두서지도 않고, 누구와 누구의 고민거리를 어떻게 해결해줘야 하는지 고민하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두 다리를 쭈-악 펴고 잠을 청한다. 그렇게 자려고 누워 가만히 있어 보자 하니 그동안 잘 따라와 주고 도와줬었던 부하들 중 몇몇 도 생각나고, "사고뭉치였던 녀석들 지금은 어디서 뭐하고 사나"하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사고 없이 마친 54개월에 대한 '감사'와 '안도'의 마음이 온몸을 간지럼 태운다.


자 그럼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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