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18평으로 더 작아졌고, 리모델링이 되지 않은 오래된 집이었다. 양철샷시가 바람에 철컹거렸고, 벽지는 여기저기 뜯어졌다.스위치와 콘센트들은 30년은 된 듯 누리끼-리 했고 제대로 커버가 달려있는 게 없었다. 그나마 몇 개의 집을 두고 고른 게 이 정도 집이었다.
무엇보다 집이 작았다.
침실과 아이들 방에 장롱이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공부방으로 쓸 방에 옷장 세 짝을 모두 구겨 넣으니 독서실 책상만큼의 자리가 남았다. 베란다에 짐도 정리할 수 없이 한쪽으로 몰아 쌓아 놓았다.
이사 아저씨들이 가고 집을 어느 정도 정리한 후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집을 만들어 집 근처에서 산책하던 아내와 아이들을 불렀다.
물론 집이 '정리'는 되었지만, 아내 눈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많았나 보다. 작아지고 허름한 집이니 당연한 일이다. 나는 아내의 오더를 핸드폰에 받아 적었다. 무엇을 어떻게 언제 손볼지를 다 적은 후 구매리스트를 작성했다. 공구는 있었으나 부재료가 필요했다.
콘센트, 스위치, 문풍지, 도배풀, 실리콘, 배수구 트랩, 커튼봉, 시트지, LED 전등 등을 구매했다.
우선 아이들 방과 주방에 침침-한 형광등부터 갈았다. 침침한 데다 껌뻑껌뻑하거나 흐리멍덩하게 나오기 일수인 등이라 관리사무소에 교체를 문의했으나, 이참에 직접 LED 등으로 갈아버리기로 했다.
LED 등을 사서 갈기 위해 기존 형광등을 제거했다. 제멋대로 몰딩 해놓은 고정판이 시멘트에 매몰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궁리 끝에 중간판을 덧대고 그 위에 LED 등을 달았다. 깨끗했다.
형광등에서부터 느낌이 왔는데, 이 집은 대충 다 이런 식이다. 오래전에 막(?) 만들어놓은 집에 4-6개월 혹은 1년마다 주인이 바뀌는 그런 상황이라 모든 곳이 임시방편이고 대강대충이다.
콘센트를 뜯어보아도, 스위치를 뜯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나도 11개월 후엔 또 이사를 가겠지만, 이참에 새로 갈아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최소한 내 뒤로 몇 년은 깨끗하게 쓸 테니까.
이 아파트 베란다 하수구는 벌레와 냄새로 유명하다. 배수구를 특수용기로 밀봉하고 실리콘 총으로 마감했다.
덜컹이는 양철샷시의 틈새를 문풍지로 막고, 이리저리 헐거워지고 구멍 난 곳들을 글루건으로 채워 넣었다.
천장에서 뜯어져 내려앉은 도배지를 목공풀과 테이프로 복구했다.
외풍이 몰아치는 화장실과 현관, 앞뒤 베란다와 방마다 달린 창문에 커튼을 설치했다.
삐걱거리는 화장실 문도, 내려앉은 싱크대 수납장도, 붙박이 장과 여기저기 찢어진 장판도 모두 하나하나 손을 댓다. 마치 여기 몇 년 살 것처럼.
아이들은 다음 주부터 어린이집에 보낼터였으나 아직까지 집에서 양육 중이었기 때문에 먹이고 놀아주기를 병행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반찬을 하고 국을 끓이는 데는 소홀해진 탓에 며칠간 제대로 된 밥을 해 먹이지 못해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집 정비는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목요일부터 주말까지 4일간 집을 고쳐나갔다. 괜찮은 집이 되었다.
"여보, 난 여보의 영원한 관리소장이야. 더 조치해드릴 곳 있으면 얘기하세요"
"진짜 말해도 돼?"
"있어?? 난 다 끝낸 것 같은데"
"방문, 현관문 하고 몰딩이 회색이라 너무 칙칙한 것 같아- 색 고를 테니까 페인트칠 좀 해줘"
"응.. "
원래 집안일은 끝이 없는 법이다.
특히 이사 전후로는 더욱 그러한 법이다.
더욱이 가족 이사의 경우에는, 그 가족을 데리고 군 관사로 입주하는 경우에는 더더더 그러한 법이다.
게다가 아내가 색감에 민감하고 조예가 깊은 경우에는 추가로 더 그러한 법이다.
이사 후 딱 일주일이 지난 오늘, 나는 케이크 대신 페인트를 주문한다.
뭐 소소한 집 정비야 그렇다 치더라도, 안전하게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주했다. 우리 가족을 지켜줄 아늑한 집이 되었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그래도 앞으로 사계절을 보내게 될 대전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끼고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