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우리 사정을 잘 아시는 여단장님 사모님께서 보일러를 지글지글 켜 두시고 아내와 아이들을 집으로 부르셨다.
예전 군대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선배들의 "라떼는 말이야"에 의하면 정말 사모님 집에 가서 김장도하고 그랬다고 하는데, 우리 부대 사모님들은 평소부터 너무나 우리 가족을 잘 챙겨주셨다. 텃밭도 같이 일구면서 비료도 모종도 수확한 채소들도 나눠주셨고, 철마다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주셨다. 수십 포기 김장을 하셔서 김치도 나눠주셨다.
그리고 이사 당일 아침에는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 아침밥을 차려주셨다.
그 덕에 나는 걱정 없이, 아저씨들과 함께 짐을 해치워나갔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나는 채워지는 트럭을 보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큰 가구 몇 개가 남았는데, 자전거도 남고 자잔한 짐들도 남았는데 5톤 카고의 적재함은 거의 다 차 버렸기 때문이다. 이대로 5톤 이사의 목표가 좌절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럽게 사장님께 물어봤다.
"사장님, 이거 다 안 들어가겠는데- 괜찮을까요?"
"아 뭐, 한 번 해보죠"
역시 전문가는 달랐다. 아저씨들은 이리 쌓고 저리 쌓으며 결국 5톤 트럭의 마지막 1인치도 남기지 않고 수직으로 짐을 채워 넣으셨다. 적재함을 100%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마치 이렇게 트럭을 채웠다
"아 뭐, 한 번 해보죠"라고 말하던 아저씨의 스웨그를 잊을 수 없었다. 마치 베테랑 군인이 "아 저 고지 뭐, 한 번 점령해보죠"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힘들겠지만 할 수 있다는 꼬리뼈에서부터 올라오는 자신감.
아직 영하 13도, 아저씨들은 요 앞에서 사다 드린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드시고 대전으로 출발하셨다. 텅 비고 발자국만 남은 집에 나 혼자 남았다.
마지막으로 청소가 미흡했던 화장실과 베란다, 부엌을 청소하고 남겨놓은 것은 없는지 확인 후 추운 날씨 동파방지를 위해 수돗물을 쫄쫄 틀어놓고 창문을 잠갔다. 우선 남양주에서의 푸닥거리는 끝이 났다.
이 집에서 소쩍새도 만나고, 가재도 키우고(가재는 전날 밤 아파트 주민에게 분양했다), 진급도 하고, 쌍둥이도 생긴 것들이 생각났다. 감사하고 아쉬웠다. 현관문을 닫으며 추억도 잠깐 닫았다.
이제 가족들을 태우고 얼른 아저씨들을 따라잡아 대전에서 짐을 푸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사모님 댁으로 가 아내를 불러내려 문을 두드렸으나, 사모님은 내 팔을 잡아끌고 들어가 산적 같은 나에게 돼지갈비 김치찜을 산적 밥처럼 쌓아주셨다.
"와 맛있겠다-! 근데 사모님 좀 많아요. 남기면 다시 못 먹으니까 좀 덜어주세요"
"아녀, 다 먹어- 다 먹을 수 있어- 든든하게 먹고 가야 또 일하지"
아내는 거실에서 아이들과 따듯하게 쉬고 있었고, 사모님은 내 옆에 앉아 매 숟가락질 젓가락질마다 갈빗살을 발라 앞접시에 얹어주셨다. 맛이 정말 좋았고, 산적 밥 같이 쌓여있던 갈빗살들을 모두 먹고 나니 사모님은 가면서 마시라며 더치커피 한 잔을 큰 종이컵에 만들어주셨다.
군대가 좋아진 건지, 좋은 분들이 군대에 계신 건지. 폭풍 같은 대접과 감동을 받고 운전대를 잡았다. 창문 너머로 작별인사를 하는데, 사모님은 아이들 맛있는 것 사주라며 용돈 봉투까지 건네셨다.
항상 좋은 사람들과 군 생활하는 것에 대해 깊은 감사가 피어났고, 이렇게 매년 부대를 옮겨가며 헤어지는 인연에 대한 아쉬움과 새롭게 만날 좋은 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솟아났다.
마지막으로 아파트 입구이자 부대 위병소 앞에서 기념으로 사진을 한 장 남겼다. 다시 찾아오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지난 1년 5개월에 대한 추억들과 그에 대한 감정이 스쳐 지났다.
짐꾼 복장 민구와 쌩얼 여사님
새로 산 차의 엉뜨와 열선 핸들을 잡으니 몸이 노곤노곤- 졸음이 몰려왔다. 큰일이었다. 내비게이션에서는 세 시간이 나오는데 말이다.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가는데 눈이 천근 만근이다.
오후가 되면서 선루프로 햇살이 쏟아져 내려왔고,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기온도 따듯해졌다. 미리 준비한 에너지 드링크와 사모님이 챙겨주신 더치커피를 마시는데도 기절하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결국 마지막 한 시간은 아내가 운전했다.
역시 운전은 나보다 아내가 한 수 위인 것 같다. 아내의 부드러운 드라이빙에 본격적으로 난리를 치던 아이들도 어느새 잠들었고, 나도 기절하듯 한 시간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북대전 IC를 지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안전히 대전에 도착했다.
언제나처럼 새로운 집, 새로운 동네, 새로운 사람, 그리고 당장에 새로운 미션이 우리를(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