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1부)

입덧 임산부와 어린이집 안 다니는 두 아이를 데리고

by 아빠 민구


몇 번째 이사였을까.

살면서 이사를 참 많이 한다.


어려서는 집안 형편이 안 좋아 거의 매년 이사를 다녔었다. 생도 시절에는 6개월마다 방을 옮겨 다니며 이사했고, 여름마다 하계 군사훈련으로 몇 주씩 훈련소들을 다녀왔다.

임관 후에도 유난히 부대 이동이 많았던 터라 10년 간 14번의 이사를 했고, 결혼 이후만 따져도 이번 이사는 다섯 번째가 된다.


혼자 다니는 이사는 할 만했다. 따블백 하나 들쳐 메고 언제라도 이사할 수 있었다. 그 정도 짐 싸서 옮겨 다니는 것은 늘 있었던 일이고 그만큼 익숙한 일이다.


사실 '이사'라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참 많다. 그래서 나에 '이사'는 생각보다 유쾌한 일이다.


[새로운 곳]으로 가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을 선별하고 우선순위와 용도에 따라 [물건을 분류]하는 것도 참 실용적이고 재미있는 일이다. 그렇게 옮겨진 [새로운 곳]을 둘러보고 적응하고 새로운 단골집이며 지름길 같은 [루틴]을 만드는 것도 생각보다 재미있다.


[새로운 곳]에서는 늘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에서 오는 [새로운 생각][새로운 마음가짐]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대체로 내가 즐기는 것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터를 옮기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번엔 이야기가 좀 달랐다.

아내는 쌍둥이 임신과 입덧으로 늘 지쳤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코로나 사태가 터진 1월 말부터 어린이집을 가지 않고 있었다. 하루 종일 밥과 간식을 해먹이고 집안일을 하고 중간중간 아내 마사지와 말벗이 되는 것까지 모두 나의 일이었다.


그러니 아이들을 키우면서 급격하게 늘어난 짐을 정리하고 줄여나가는 것은 온전히 일과시간 외에 편성된 나 혼자만의 외로운 작업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알아줄 필요도 없는 그런 일.


아침엔 출근 전에 아이들 밥과 간식을 지어놓고, 부대에 가서 일을 하고, 퇴근하면 아이들과 아내 저녁을 해 먹이고 놀아주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애들 목욕에 책 읽어주기에 재우기까지,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들이 모두 끝난 23시나 넘어야 이사 준비가 시작되었다.


이사 전 이주쯤부터 계획에 따라 정리를 해나갔다.


우선, 중요한 미션이 있었다. [5톤 트럭으로 이사하기]가 그것이다.

기존에는 [네 식구가 20평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이제 이사를 가면 [여섯 식구가 18평 집]에서 지내야 한다. 어떻게든 짐을 줄이고 간소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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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저녁 졸린 눈을 부비며, 브런치 글을 참으며 짐을 정리했다.


기능이 중복되는 것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것들, 낡은 것들, 꼭 없어도 되는 것들, 실용성 대비 부피가 크거나 무거운 것들을 추려내고 또 추렸다.


뒷베란다부터 시작해서 앞 베란다, 화장실, 거실, 옷방, 거실, 주방, 신발장을 거치며 순서대로 격파해나갔다. 그리하여 버릴 것은 기부하거나 나누거나 팔았고, 살릴 것은 콤팩트 하게 포장해서 수납공간에 넣었다. 그 외에 가지고 갈 것들은 일상생활을 위해 모두 앞 베란다로 빼놓았다.




이사 전날,


사실 남은 일이 산더미였지만, 인성 바른 아내 덕에 놓칠뻔한 중요한 일을 하게 되었다.

감사한 이웃과 선후배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과일이라도 한 박스씩 사다 주는 일이었다.


친구 없는 아내에게 친구가 되어주셨던 여단장님 사모님들과 윗집 부대 동료, 산책로에 강아지까지.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니 22시가 훌쩍 넘었고, 아이들을 재우니 역시나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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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도 늦은 시간, 아내가 잠이 들고 최후의 작전이 시작되었다.

움직일 수 있는 한 최대로 빠르게 움직이고 동선을 효율적으로 운영했다.

영하 18도의 새벽이었고 베란다는 시베리아였지만, 등에서는 땀이 흘렀다.

시계를 수시로 보며 '더 빨리', '좀 더 빨리'를 외치며 스스로에게 채찍을 날렸다.


"이대로면 이사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 것은 새벽 네시 반이었다.

이삿짐센터에서 7시에 오기로 했으니까 얼른 자면 두 시간은 자겠다고 생각을 하고 얼른 샤워를 했다.


이미 밤을 지새우며 잠이 달아난 터라 곧바로 잠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잠을 자야 내일 또 장거리 운전에 이삿짐 정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잠을 청했다.

잠으로 넘어가는 그 경계선의 어느 언저리, 새벽잠을 설치는 첫째 아이가 깨었다.

"아빠-"

소변을 누이고 물을 먹이고 잠을 재우고 시계를 보니 다섯 시 이십 분이 지나고 있었다.



급하게 자리에 누워 잠깐 눈을 감았는데, 벌써 세 번째 알람이 울리고 있었다.


"헉! 여보, 여보, 여보!! 여섯 시 오십 분이야!!!"

이제 십 분만 있으면 아저씨들이 도착할 터였다.


우리들은 잠옷바람이었고, 여섯 시에 일어나서 아이들에게 죽이라도 먹이려고 했던 계획은 강을 건넜다.

(다행인지) 아저씨들이 집으로 오시는 초입에서 길을 조금 헤매셨고, 일곱 시가 좀 넘어 집 문을 뜯었다.



- 2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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