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부터 몇 년째 적성검사에서는 가장 적합한 직업에 '군인'이 빠지지 않았고, 가정형편은 어려웠다. 선택지는 선명했다.
그렇게 '군인을 하겠다.'라고 마음을 먹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어쩌면 이런정도 느낌이었을까. 그땐.
사교육이나 부모님의 입시지원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진로에 대한 정보를 찾고 공부를 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친구들과 게임이라도 하러 PC방에 가면 '군인이 되는 방법'에 대해서 검색하고 알아봤다. 내 상황에선 사관학교에 가는 것이 여러모로 가장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안 어른 중에 군인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좀 더 정확하게 상황 파악이 됐을 텐데, 우리 집 일가친척 중에는 간부 출신은커녕 그 흔한 의무복무 군인 조차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나라에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니, 내가 할 것은 성적을 만들어 사관학교에 입학하고 몸 바쳐 내가 좋아하는 '군인'을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케이. 군인이다.
재수 끝에 생도가 되었다. 하지만 생도가 되어도 모든 게 막연했다. 동기 중에는 하나하나 정확히 계산하고 따지며 이미 대위-소령 때까지 진로를 계획하는 친구들도 있는 반면, 나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나 구체적 계획 하나 없이 생도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집과 연금은 당연히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히 그 [집]과 [연금]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얼마 전, 전역을 결정하고 가족들 앞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밝힌 자리가 있었다. 거의 모든 가족들이 만류하셨고 특히 대기업에서 임원까지 하셨던 외삼촌께서 잘 타이르며 말씀해주셨다.
외 : 지금 봉급 수준이 어떻니?
구 : 네, 연봉으로는 0000만 원이고 매 월 실수령액은 000만 원 정도 됩니다.
외 :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네. 대기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견기업 00급 월급하고 비슷한 것 같은데
구 : 네 넉넉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 않게 먹고살 수 있는 수준입니다. 복지도 좋고요.
외 : 무엇보다 군인은 연금이 있잖아. 외삼촌은 평생 국민연금 최고 수준으로 납부했는데도 월 수령액이 000만 원 정도거든. 주변에 군인 친구들 보면 연금으로 두 세배씩은 받는 것 같던데. 연금 그거 무시 못한다.
맞다. 많은 군인들이 [연금] 하나 바라보며 군 복무를 이어간다. [고진감래]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한 평생이다. 많은 민간인들은 연금이면 다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연금이 다른 직군에 비해 다소 높게 책정되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 군인의 연금이 오로지 세금으로 지출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부드러운 시선으로 볼 수 없다. 외삼촌 말씀하신 대로 전역 후엔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을 받게 된다.
사람들은 [공짜 집]과 같은 접근 방법으로 [공짜 연금]에 대해 안 좋은 부러움과 시샘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연금에도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는데, 그 연금은 결코 [공짜] 라거나 [과도한 세출]은 아니라는 점이다.
군인은 세상과 한 걸음 떨어져서 살아간다. 설령 양재동에 근무하거나 도시에 있는 대학교 학군단에서 근무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항상 유니폼을 입고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뿐만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밥 먹고 자야 한다.
벙커나 잠수함 생활을 하는 군인들에겐 일조권이라는 개념조차 없다. 거주이전의 자유라든가 집회 참여도 제한된다. 정치적으로도 중립을 유지해야 할 뿐만 아니라, 겸직이 금지되어있기 때문에 봉급을 수령하는 것 외에 별다른 수익을 창출할 수 없다.
전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잦은 이사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심적, 물적 부담은 기본이다. 군인의 절반은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격오지에서 근무한다. 문화생활이나 편의시설로부터 이격 되어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항공기 파일럿이나 엔지니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군인들은 애매한 나이에 전문적인 기술 없이 짧은 정년을 마치고 사회로 나와야 한다.
군대 다녀와 본 사람들은 안다. 전쟁도 없는 나라에서 군인들이 뭐하나- 싶어도, 군대라는 곳은 생각보다 바쁘고 어려운 일들이 많고 스트레스 수준도 높다. 그렇기 때문에 "연금 줄테니까 군 복무 20년 이상 하자"라고 말 해도 대부분의 남자들은 특별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할지언정 열에 아홉은 손사래 칠 것이다.
"야, 할 거 없으면 군대 가서 말뚝이나 박으면 되지"라는 말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 군인이나 군인의 가족은 안다.
군에서 복무를 오래 하면 연금이 나온다는 사실은 이미 전 국민이 알고 있는 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고 한 평생 이름 모를 곳을 전전하며 헌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혹시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렇게 군인으로 20년 이상 복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타적인 가치관을 바탕으로, 군에 관심이 있고 건강한 사람이 군인이 될 수 있고, 그중에서도 군생활에 적응한 사람만이 군 복무를 지속할 수 있다. 또 그중에서도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또 그중에서 아무런 사고 없이 개인의 잘못이나 부대의 문제없이 세월을 이겨낸 사람들이, 무엇보다 개인과 가족의 희생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복무할 수 있는 것이다.
군인연금은 이런 불편함과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군인들이 복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인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이 무너지면 군인들은 본질적인 차원의 집중을 하기 어렵게 된다. 국방도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한 바탕 돈을 주고 고용하는 용병이 아닌 [국민의 군대]가 전시와 평시를 가리지 않고 정상 작동하게 하는 밑바탕인 것이다.
저 푸른 야전
군인들은 젊음과 무릎관절과 세상 물정과 가족들의 희생을 대가로 연금이란 보상을 받는 것이다. 그 마저도 20년 이상 복무를 하면서 개인 기여금을 납부해야 수령할 수 있다. 그렇게 기여금으로 납부하는 금액도 적지 않은 금액이다. 대등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국민연금의 일반적인 본인부담금이 4.5%인데 비해 군인연금의 개인기여금은 7%로 훨씬 높다.
즉, 더 많이 내고 많이 돌려받는 시스템인 것이다. 물론 개인의 기여금만큼 국가에서도 납부를 하기 때문에 국민연금에 비해서 기금의 크기 자체가 커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이마저도 직종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인식하며 전액을 국가에서 보전하는 선진국과 비교한다면 과도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만일 군인 연금이 과도하다면, 그 과도한 메리트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군에 유입되어야 하지만 현 상태를 놓고 보자면 '과도하지 않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다만 복무에 비해 연금이 부족했을 때 군 내부에서 나와야 하는 목소리는 군인들의 특성상 나오지 않을 뿐이다. 군인들은 국민정서를 거스르거나 대열에서 삐져나와 의견을 개진하는 것에 매우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만일 열과 성을 다해 군 복무하고 있는 군인에게 집이 나온다는 이유로, 연금이 나온다는 이유로 비뚤어진 시선을 보내거나 날 선 말을 한다면 군인들의 사기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았을까. 당장 침공한 적과 총을 쏘며 대치중인 것은 아니지만, 군은 그 존재 자체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존재인데 말이다.
"저기 군인아파트 사는 애들하고는 놀지 마"라고 하는 부모들의 그 좋은 아파트도, "군인 연금은 과하다. 국민연금 수준으로 조정해야 맞다."라고 말하는 그 사람들의 국민연금과 연금이 투자된 금융시장도 군인들이 지킨다. 결국 전쟁이 났을 때 전장으로 뛰어 나갈 것은 모두 현연과 예비역 군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들도 있는데, 군인들의 관사와 연금이 과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서 국민 전체 삶의 수준을 높일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는 위를 향해야 한다. 하향 평준화 말고.저 위.
대한민국은 우리가 자부하고 자랑하는 세계 최상위권 경제대국이고 선진국이다. 경제는 물론이고 의료도 방역도 문화도 할 것 없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한 참 앞서 있는 대단한 나라에서, 지금의 군인 연금이 과한 것일까.
"42년간 45번의 이사를 했고, 동생들 결혼식에도 한 번도 참석 못했다. 이것이 분단 상태인 조국을 지키는 대한민국 군인의 숙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