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그래도 군인은 집 나오잖아

여러분이 말하시는 그 집

by 아빠 민구



아내와 동기 부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이제는 어디 가서 군 가족으로서의 고충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얘기하면 뭐해요. 아무리 친구라지만 이해해주기보다 집 나오는 것에 대해 못마땅해하거나 그래도 공짜니 불만 가질 필요 있냐고 하는데요. 어차피 군인이나 군인 가족이 아닌 이상 이해할 수 없을지 몰라요. 그래서 이제는 친구들한테 우는 소리 안 해요."


집 값이 하늘 모르고 치솟는 가운데, 하사든 소위든 임관만 하면 나오는 [집]은 부러움의 대상, 다른 한 편으로는 불만과 못마땅의 대상인 것 같았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을 봐도 그렇고 집 값은 삶을 유지 운용하는 비용 중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집. 그런데, 유독 [군인]들에게만 제공되는 [집]이라는 극강의 복지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는 점과 그 집을 받는 것이 그렇게 유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민간인]은 많지 않다.


무료로 [집]을 보급받는 군인들마다 집에 얽힌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차고 넘친다. 그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친한 동기들의 사례만 해도 다 소개할 수 없을 지경이다.


뭐, 내가 글로 풀어낸다고 하더라도 브런치 구독자분 중 100여분이 읽어주실 뿐이지만, 어제저녁 아내의 집에 대한 푸념을 들으며 "한 번은 써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군인들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있다. 당신이 상상하는 그 어느 곳에도 혹은 상상하지 못하는 어떤 곳에도 말이다. 당연히 강원도 산속에도 있고, 남해안 바닷가 마을이나 원자력발전소에도, 시청이나 구청에도 고층 빌딩이나 대학교, 청와대에도, 공항이나 터미널에도 말이다.


그런 군인들은 언제나 [명령]에 의해서 새로운 곳을 다니며 정착하고 임무를 수행한다. 부사관의 경우에는 그 순환의 주기가 비교적 길다고 할 수 있지만, 장교의 경우에는 보통은 1-3년 정도를 주기로 새로운 곳으로 이동한다.


'보통은'이라고 표현했듯, 직업군인의 순환 주기는 대중이 없다. 나만해도 9년 6개월의 짧은 군생활 동안 대충 세어봐도 12번의 이사를 했다. 그중 가족과 함께 움직인 경우도 4번이다. 친한 동기는 부대가 통폐합되고 이전하면서 올해에만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


그런 대중없는 시기와 낮은 예측 가능성으로 인해 기본적으로 [전세][월세] 계약 자체가 어렵다.


"사장님, 저 이 동네에 한 1년 반에서 3년 반 정도 살 것 같은데, 혹은 육 개월 있다가 옮길 수도 있고요, 적당한 전세 집 있을까요?"라고 부동산에 가서 물어볼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래도 그런 부분은 특별히 문제가 없거나 본인이 강력한 의지만 가지면 어느 정도 정례화해서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변수는 아직 남았다. 배치 부대에 따른 복무 지역도 대중없다.


당장에 다다음주면 교육을 수료하고 부대에 배치를 받아야 하는 군인들이, 배치받을 부대가 나오지 않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심정을 생각해 보았는가. 독신이라면 전혀 문제없다.


나 같아도, 드라마 속 유시진 대위처럼 당장 헬리콥터 타고 어디로 데려가더라도, 며칠 뒤에 파병을 가더라도 문제없다. 단, '결혼하지 않고 독신이었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식구가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혼자의 경우에는 집도 구하고 학교도 학원도 이사 청소도 알아보고 준비할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닌데, 당장 다음 주에 강원도 화천으로 갈지, 전남 진도로 갈지, 경북 영천으로 갈지 결정되지 않았다면 그것 만큼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요소는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나름 괜찮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공짜 집]이 자대 배치와 동시에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거짓말이나 과장 하나도 안 보태고) 나만해도 A부대에 발령을 받고 관사가 안 나와 독신자 숙소에서 6개월을 혼자 지내다, 결국 둘째 출산이 임박해 민간 아파트에 전세를 찾아서 들어갔다.


그리고 정확하게 17년 4월에 신청했던 그 집과 관련해서 그 보직을 마치기 얼마 전인 19년 1월, 혹한기 훈련 중에 전화를 받았는데, "입주가 가능한데, 10일 이내에 들어갈 수 있겠나? 불가능하다면 다음 대기자에게 넘기겠다"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쪽 지역이 유독 관사 대란이긴 하지만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적시적으로 [보급]되지 않는 관사로 인해 겪는 군인가족의 정신적 어려움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유랑민처럼 이산가족처럼, 남편은 독신숙소에서 살면서 출퇴근하고 가족들은 남편 떠난 관사에 홀로 남겨져있거나 친정 신세를 지는 수밖에 없다. 3개월 정도면 다행이다.


도시지역이라면 내가 전 부대에서 했던 것처럼 다른 집을 구할 수 있는 [선택지]라도 있지, 혹시 시골로 간다면 민간 아파트를 구할 수 있는 선택지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언제 어디로 보내질 지 모르는 군인에게 [집] 제공은 호화롭고 과도한 복지가 아니라 필수적인 복지인 것이다.




(여기서부터가 진짜인데) 결정적으로 그렇게 해서 받은 [공짜 집] [공짜]에 걸맞은 수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정말 큰 문제다. 물론, 수많은 예산과 사업을 통해 개선된 관사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살만한 집' 보다는 '처참한 집'을 만날 확률이 더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이름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은 집들이 대부분이다. [통일 아파트] [충정아파트] [개나리아파트] [오호리 관사] [철마 아파트] [진격아파트] 이름만 들어도 '군인 관사'라는 티가 팍팍 난다.


이름이야 뭐 어떻든 집만 괜찮으면 상관없다. 하지만 집의 상태가 아무래도 처참하다. 공통적으로는 단열이 제대로 되지 않는 집이 많고 보통은 산자락 근처에 한 두동만 덩그러니 놓여있기 때문에 결로현상이 심하고 습기가 충만하다.



곰팡이가 없는 집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린 시절 지하 셋방을 전전하고 9년 간 군 관사를 전전하던 나의 경험치에도 불구하고, 지금 사는 관사를 받았을 때 충격이 남아있다. 문을 열자마자 곰팡이에 눈이 매워서 두 걸음 내디뎠다가 바로 나와버렸다. (나는 화생방에도 방독면 없이 들어가는데!!! )


우리 집은 정북향에 뒷 베란다 5미터 뒤에 산이 둘러쳐 있는 1층 집이다. 하루에 해가 1분도 들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니, 겨울철 난방비도 많이 든다. 나는 선인장을 참 좋아해서 많이 기르는데, 지난겨울에 절반이 얼어 죽고 말았다.(원래 선인장은 가을부터 물을 끊으면 어지간해서는 얼어 죽지 않는다.)


단열과 방풍이 잘 안되고, 기름보일러를 쓰는 집들에서는 뽁뽁이도 붙이고 베란다를 비닐로 막 아치면서 충분하지 않게(입김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간신히) 난방을 하는데도 유류비로 매월 3~40만 원을 우습게 쓰기도 한다.


집이 틀어져 방문이 안 닫히는 집, 집이 기울어서 바닥에 구슬을 놓으면 한쪽으로 굴러가는 집, 온갖 벌레가 창궐하는 집 등등 친한 동기들 사연만 모아도 끝이 없다.


그런 [공짜 집]을 정성껏 수리하고 꾸며 보기 좋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논 밭 가운데 군인 아파트 독채만 덩그러니 서서 광활한 평야에서 혹은 산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버티고 서있다면. 어떨까.


그런 집이라도 나오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그런 집에 살면서 산부인과에 갈 일이 생기거나 응급실이라도 갈 일이 생긴다면 난감하기 그지없다. 마땅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찾는 것도 어렵다. 이마트 트레이더스를 갈지, 코스트코를 갈지가 아니라 하나로 마트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놀이터에 투자되는 예산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지내기에는 이만큼 안 좋은 환경이 없다. 놀이터는 보수되지 않고 흉물스럽게 있거나 그것도 보기 싫어 철거되어 한쪽 구석에 방치되는 경우도 많다. 아예 놀이터가 없고 민간인들의 시설과 도보로 연결이 안 되어있는 곳들도 많다. (운전 못하는 가족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라고 하는 것인지)


후줄근한 군인아파트에 사는 애들하고는 '놀지 말라'라고 하는 지역사회 부모들도 많다. 아이들이 받는 서러움과 그 부모가 느끼는 미안함은 말로 표현하기 참- 어렵다. 지금이야 아주 깔끔한 단지로 탈바꿈한 XXX 군인 아파트가 있었다. 재건축 전(한 삼 년이나 됐으려나), 관사 주변으로는 으리으리한 신도시가 둘러치고 있었는데 그 동네에서는 그렇게 관사 사는 아이들을 따돌리는 게 흔한 일이었다.

아빠가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고, 군인이라는 이유로 명령에 의해서 살게 된 그 관사. 그 [공짜 집]에 사는 아이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학교나 학원 친구들로부터 차별을 받는다.


가뜩이나 이사를 반복하며 오래된 친구를 만들기 어려운 군인의 어린 자녀들에게 그런 성장환경은 '아빠(혹은 엄마)가 군인이라는 이유로 받는 [벌]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친구들을 만나면 우는 소리가 목젖까지 차오르지만, 얘기해 봤자 돌아오는 것은 공감이나 격려가 아니기 때문에 군인의 아내들이 어디 가서 하소연하지 않는 것이다.


군인가족만 아는 그런 고충으로, 다른 친구들보다 군인 가족끼리 만나서 얘기할 때 서로서로 공감해 줄 것도 많은 것이다. 종종 그런 이야기 꽃은 밤을 새워 정원을 이룬다.


하고 싶은 말은 끝이 없지만.

한 숨 한 번 쉬고, 침착하고, 글을 접고.

너무 길어지는 글을 다음 연재로 넘긴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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